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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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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시은
조회 1,167회 작성일 22-01-2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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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사이플 화요일 오전 10시
장정하 포이맨 님

존 비비어 ‘순종’ 독후감

“엄마가 해 봐!”
어린 아이들에게 뭘 가르칠 때, 그것이 좀 힘들거나 어려운 경우, 엄마들은 자주 듣는 말이다.
이 말의 진정한 뜻은 “난 엄마 말대로 하기 싫어,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엄마가 내 말 들어!” 이다.
우리는 이렇게 엄마 아빠와 티걱태걱 하다가 안되면 ‘거짓순종’을 배운다.
바로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아주 편안하다. 상대가 내 진심을 알 턱이 없으니까.
거짓말과 거짓정체는 가족들, 선생님들, 친구들, 직장동료들, 남편과 자녀들, 심지어 교인들까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점점 더 견고한 바벨탑을 속으로 세우게 되고, 오로지 내가 하나님이 되어 모든 환경과 사람들을 지배하는 능력을 키워 나간다.

죄란 이렇게 무섭다.
난 내가 아담이요, 아벨이요, 모세이고,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나의 죄를 비추어 주시자, 내가 바로 뱀이요, 가인이요, 불평, 불만, 배은망덕하고 지독히도 말을 안듣는 이스라엘 백성이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바리새인, 사두개인, 빌라도인 것을 깨닫고 얼마나 기가막혀 오열을 했는지...
불순종이 낳은 결과는 참혹하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주인이 아니시면, 그 즉시로 멸망과 사망으로 치닫는 지옥 특급열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베푸신 전적인 은혜로 이렇게 눈이 떠진 것이 매일 매일 너무나도 놀랍다.
억만번의 감사가 그 은혜를 갚을까, 200,000년의 봉급 - 만 달란트- 를 무슨 재주로 갚는단 말인가?
이처럼 무조건 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거듭난 사람에게 전적인 순도 100% 의 순종은 꼭 나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마음에 ‘주님, 99% 만 순종하면 안될까요?’ 이런 생각이 든다면 즉시로 하나님 앞, 바로 회개의 자리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 무시무시한 바벨탑이 내 안에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순종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주신 모든 이들에게 해야 한다.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영역에서의 권위를 인정하고 나의 삶에 직접 적용이 되는 가정, 사회, 교회, 국가에 대한 순종으로, 바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 풍성하심 아래의 순종임을 깨달아야 한다.

존 비비어는 불순종의 예로 아담과 하와, 가인, 사울, 그리고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불순종의 결말은 죽음이란 것을 다시금 상기시켰고 순종의 예로 예수님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주신 아가페의 사랑을 받아 죄를 깨닫고, 믿음을 선물로 받고, 성령님께서 마음에 오시면, 우린 예수님의 순종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순종은 행함이 따르는 보여짐이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받은 만큼만 줌,
내 것 챙기고 남은 것 줌,
기분 내키면 다 주고 아니면 도로 가져옴,
아예 연락 끊고 안 주고 안 받음.

이 어느 것도 예수님께서 주신 것과는 다르다.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의인이라고 혹시 착각하고,
영원한 심판은 없고, 우린 죽으면 그냥 거기서 끝이지 하는 악한 영의 거짓말에 흔들리면서,
심판에 대한 성령님의 강한 깨우침을 받으면 ‘에이... 설마 그럴리가...’ 라고 얼버무린 적은 없나?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우린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이 매 순간 일어나는 실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설마가 사람 잡는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며 성경에 나온 모든 일들은 사실이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도 모두 사실이다.

마태복음 4:17
‘이 때로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의 사랑은 멸망으로 치닫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형벌을 철저한 순종으로 받으신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추악한 죄를 용서받고 썩어 문드러졌던 나의 상처들은 예수님의 피로 모조리 고쳐졌으며, 냄새나고 고름 투성이였던 나에게 의의 옷을 덧입혀 주심을 성령님께서 보여 주셨다.
나의 구원의 옷에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보혈과 함께 얼마전 소천하신 엄마의 피눈물도 묻어 있고, 치매로 무너져 내린 뼈와 썩어가는 살도 묻어 있으며, 아빠의 휜 허리, 그동안 수없이 보내어 졌던 성경말씀들, 수많은 성도님들의 나의 구원을 위한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묻어 있다.

창조주께서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 인간이 되셔서 나의 영생을 위해 목숨값을 대신 치뤄주셨다면 나도 그 누군가의 의의 옷을 위해 아가페의 순종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소멸할 수 있는 것 만큼 영화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

받은 만큼 줌, 노!
내 것 챙기고 남으면 줌, 노!

기분 내키면 다 주고 아니면 도로 가져옴, 노!

아예 연락 끊고 안 주고 안 받음, 노, 노, 노!

주님, 오로지 홀로 세세토록 영광 받으옵소서!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뉴욕에서
이시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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