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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라 말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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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CBC웹
조회 1,107회 작성일 22-05-07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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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믿는 삶은 ‘불가능’이 ‘가능’으로 경험되는 삶입니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면 예수믿는 삶은 세상이 불가능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됨을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안에서 경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안에서 가능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불리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침례요한이 헤롯 안디바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 빈 들 즉 벳세다 지역으로 가십니다. 그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고을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긍휼하심으로 모인 사람들의 병들을 고쳐주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남자만 5천 명에 이르고, 여자와 아이들까지 모두 합치면 만 명이 훨씬 넘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배고파 지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을 돌려보내 끼니를 해결하게 하자고 예수님께 이야기합니다.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마 14장15절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도 안되는 명령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마 14장16절


이것은 제자들에게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살 돈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신 주님께서 왜 이렇게 명령하셨을까요? 


주님은 제자들이 예수 안에서는 불가능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주님은 세상이 ‘임파스블’이라고 이야기할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임파스블’을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는 갑자기 당황스러운 주님의 명령에 제자들이 한 목소리로 주님께 대답한 것이 바로….오병이어! 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마 14장17절


예수님께 제자들이 말한 ‘오병이어’라는 말은 “주님! 전체는 만명이상인데 우리가 가진 것은 이 작은 것뿐입니다.” 즉 “이게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불가능합니다”라는 말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현실 파악이 다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내린 결론이 ‘불가능’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들에게는 ‘오병이어’라는 말은 ‘불가능합니다’ 의 동의어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빠르게 현실을 파악하는 일은 꽤 중요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빠르게 파악해야 해결 방법을 마련할 수있기 때문입니다. 롯기를 보면 시어머니 나오미와 그녀의 며느리 오르바와 롯의 헤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남편과 아들들을 잃고 고향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려는 나오미는 이방 며느리들에게 그 땅에 남아 재혼도 하고 잘 살기를 권했습니다.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룻 1장12-13절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은 오르바와 룻은 둘다 소리를 높여 웁니다. 그런데 둘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오르바는 자신의 땅에 남고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쫓기로 합니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  룻 1장14절


이 땅에 남지 않고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는 룻을 향해 다시 한번 나오미가 떠나라고 이야기합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너의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하니  룻 1장15절


이정도 성의를 보였으면 이제 롯도 그냥 떠나도 욕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할 만큼 성의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룻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룻 1장16-17절

현실을 전혀 파악 못합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알지도 못하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현실파악 못한 어리석은 고백이 그를 예수의 조상이 되게합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 4장16-17절


현실을 파악하고 반응한 오르바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세상의 현실이 아닌 하나님께 집중한 롯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주라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설사 주님의 말씀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실 때 하나님 말씀보다 현실을 먼저 파악하고 “오병이어!”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을 신뢰할 때 ‘오병이어’라는 아무 것도 할 수없을 것 같은 우리의 현실 또한 예수님의 손을 통과해 ‘오병이어의 기적’이 되어 남자만 오 천 명을 먹이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잔치로 바뀌는 ‘비현실적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불가능’이 ‘가능’이 되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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