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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5기] '제자²'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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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희
조회 2,263회 작성일 22-01-2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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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²는 Francis Chan 목사님의 제자양성교재로 그 목적에 충실한 책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양성에 대한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했다면 아마도 끝까지 막힘없이 읽어가며 제자양성에 필요한 안내와 답변을 찾아 잘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처음 몇 페이지를 읽고서 멈춰야 했다. 계속 책을 읽기 위해서는 ‘어떻게 제자를 양성하냐’가 아닌 ‘왜 제자를 양성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필요했다.

결국 책을 덮은 채 수 많은 질문과 씨름하며 적지 않은 고민의 시간을 보낸후에야 이 책을 끝낼수 있었다.

독후감이라기보다는 그 때의 고민과 두서없던 감정의 기록을 나눈다.  

 

  1. 예수님을 믿는다면 제자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는 부르심에 반응하고 순종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

제자는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정도의 관계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승되신 주님의 삶을 모방하고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주님을 닮아가는 찐 follower다.

예수님과 나는 맞팔하는 관계인가?

예수님은 나를 선팔하셨는데 아직도 나는 예수님의 초청에 대한 대답을 보류하고 예수님의 삶과 예수님의 다른 follower들의 삶을 훔쳐보기만 하고 있는가?

여러이유로 주저하는 마음과 핑계를 내려놓고 예수님을 follow back하기로 작정했다면 이제 나는 예수님의 제자다.

나의 모든 삶은 이제 예수님과 공유된다.   

  

  1. 예수님을 따른다면 제자를 삼으라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인정한다면 제자로서 감당해야할 의무가 하나있다. 

그 의무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유언이자 지상명령 (Great Commission)에 순종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의 승천이 사복음서의 Finale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복음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삼으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의 승천이 기독교의 중요하고 신비로운 사건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부활의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도 제자로 만들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결국 모든 복음서의 Finale 였다.

또한 동일한 이 말씀으로 사도행전은 시작된다. 그만큼 이 것이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 지상명령은 내가 처음 듣는 새로운 말씀도 아니었고 거부감드는 말씀 또한 아니었다.

다만 그 명령이 2000년전 팔레스틴에 살았던 예수님 제자들에게만 주어진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훌쩍넘어 2022년 현재 지구반대쪽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향하고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아니 솔직히 너무나 익숙한 그 명령앞에 수십년간 여전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내 자신이 창피했고 그 이유도 알고 있었다.

변명의 여지없이 나는 그 명령이 항상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제자양성은 커녕 ‘전도’를 위해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애써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읽던 책을 일단 덮고 내 자신에게 질문을 시작했다. 

‘왜 제자를 만들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을 제자를 삼는다는 것 또는 복음을 전하는 전도행위의 당위성을 나는 충분히 공감하고 있나?’ 

‘공감한다면 왜 나는 다른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에 미온적이고 소극적일까?’

‘전도는 부담스런 의무가 아닌 기쁨의 자발적 행위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에게는 그런 복음에 대한 기쁨과 나눔에 대한 열정이 있나?’

실망스럽게도 나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다.

나의 신앙상태가 이런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 그런 행위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답답하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1. 왜 (나도) 제자를 만들어야 하나? 

솔직히 ‘왜 제자를 만들어야 하냐’는 질문의 진짜 의도는 ‘왜 나도 제자를 만들어야 하냐?’ 일것이다.

제자양성의 필요성에 대해서 단 한번도 의문을 가져본적이 없지만 정작 제자양성은 목회자나 선교사님들 같은 전문 종교인들의 몫이며, 나는 그저 뒤에서 기도와 후원으로 양성을 도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자양성, 선교, 전도같은 금기어가 나오면 펄쩍 뛰면서 그런 콜링받은 적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예외없이 모든 제자들에게 주어진 콜링이라고 한다.

개인의 선호도나 선택사항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한 제자들의 의무이기때문이다.

제자들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와 계획에서 분리될 수 없다.

기억하자 나는 예수님의 맞팔 follower다.

 

  1. 제자 만드는 방법 - 나만 믿고 따라와 사람낚는 어부 

예수님의 유언을 따라 제자삼을 의지가 생겼다면 이제 제자를 어떻게 만들어야할까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제자²의 저자는 올바른 교회의 모습과 성경말씀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제자양성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내용은 모든 기독교인이 숙지해야하고, 또 이대로 제자양성에 적용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제자양성자가 될수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먼저 우리의 본이 되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제자를 만드셨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확실하지 않을까?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9) 

예수님이 처음 갈릴리호수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을때도 그물을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셨고, 부활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갈릴리호수에서 만나셨을때에도 물고기를 잡게 하셨다.

두 번 모두 제자들이 빈 그물의 헛수고에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물론 그들의 생업이 어부이다보니 ’제자삼으라’는 명령을 한 번에 이해시킬수 있는 클리셰로 사용하셨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빈그물이 물고기로 꽉찬 그물로 바뀌는 순간 제자들은 엄청난 catch의 희열을 느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 느낌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제는 물고기가 아닌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셨고 제자들은 그렇게 예수님께 낚.였.다. 

‘낚였다’라는 표현은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의 말을 신뢰하게 되어 그들 말대로 행동했을때 쓴다.

신천지나 다단계 혹은 보이스피싱에 낚일 수도 있지만 제자들은 정말 운좋게 예수님한테 낚였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가 너희도 낚는 자로 만들겠다고 하신다.

이제 예수님에게 낚인 그들에게도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같이 하자고 하신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자신이 낚인 것 처럼 장차 다른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어 또다른 제자²들을 양성해낸다.

제자들이 제자양성하는데는 다른 뾰족한 묘수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저 본대로 배운대로 예수님의 삶을 닮아가며 말씀의 그물을 던지고 씨를 뿌릴뿐 그 결과는 하나님께 두는 것이었다. 

어부는 그물을 던지고 낚싯대를 던지지만 가두리 양식장이 아닌 이상 캣취에 대한 컨트롤이 없다.

기상여건도 큰 몫을 하고 무엇보다 ‘어복’이 있어야 한다는게 강태공들의 넋두리이다.

가끔은 초보가 대어를 낚기도 하고 고수가 피라미 한 마리도 못잡는다.

그렇기에 내가 어디서 어떻게 낚시를 하나 또는 어떻게 해야 많이 물고기를 잡을까라며 고민만 하는것은 별로 의미없는 일이다.

어쨌든 무조건 낚시대를 드리우고 그물을 던져봐야 한다.

나는 낚시터에 와서 낚시와 그물은 가방에 넣어둔채 몇십년을 물고기를 쳐다만 보면서 지낸것은 아닐까? 

월척아니면 의미없다고 핑계대며 버팅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 내가 해야하고 할 수 있는 일은 내 삶속에 예수님을 닮아가고 따라감으로 세상에 그물과 낚시를 던지는 것 뿐이다. 거두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이 책을 끝내며 미끼끼는 법도 모르는 낚린이인 나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 ‘나만 믿고 따라와, 사람낚는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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