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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 독후감 모음 - 디사이플반 11기 토요일 아침반 (최광원, 서영우, 양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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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준모
조회 4,877회 작성일 21-12-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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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세분의 독후감에 이어 나머지 세분의 독후감을 올립니다.


- 최 광 원 형제님 - 


성경을 깊이 알기 전에 초신자 였던 시절에 죄인 이라는 것은 하나님앞에서 심각한 잘못된 범죄적인 행위를 한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면 알게 될수록 죄인의 정의가 무엇인지 변하게 된것 같다 .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지 않고 내 중심적으로 사는것이 죄인 인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남에게 큰 피해 안끼치고 사회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 하더라고 그것은 하나님앞에 죄인인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제자로 삶을 살기로 선택하는 것은 내 중심적으로 사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사는것이다 . 그것이 복음이 가르치는 중요한 삶의 자세라는 것을 알게 되는 요즘이다 . 헬라어의 퀴리오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노예들이 자기 주인을 가르킬 때 쓰는 말이다. 세상의 중심이 나였던 그 세계관에서 예수님을 퀴리오스로 인정하는 삶으로 변하는 것이 제자된 삶의 핵심인것 같다. 이런 마음의 변화를 이해한다 면 왜 로마시대때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는지도 이해가 간다. 황제보다 예수를 퀴리오스로 인정하는 마음때문에 황제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것이 하나도 이상한일이 아니었던것 같다.


칼마르크스는 종교의 대중의 아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했던것도 이해는 간다. 내 중심적으로 살아갈때 인간은 종교를 심지어 기독교 조차도 나의 인생의 바램을 이루는 도구로 이용하게 될수도 있다. 주님을 퀴리오스로 인정하지 않는 삶이 위험한 이유다. 그런관점에서 칼마 르크스의 비판도 이해가 간다. 주님이 주되신 우리의 삶 그것은 매우 중요한 제자의 태도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을 부르셨다. 하지만 그 다음 주님의 멍에도 함께 메고 배우자고 하셨다. 복음서에서 니고데모나 부자관원은 주님을 만나고나서 주님의 멍에를 메는것에 부담을 느껴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죄인 세리였던 삭개오는 주님의 멍에를 메는것을 선택하고 자신의 죄의 짐도 내려놨지만 자신의 재산도 나눠주는 주님의 멍에를 함께 메었기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구원은 복종이다 그리스도께 무릎을 온전히 꿇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주님께 바라고 자신의 모든것을 무릎 꿇지 못한채 부분적으로만 주님을 따라서는 안된다. 주님께 복종하기 위해서는 무릎을 온전히 주님앞에 꿇어야 한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가 나온다. 누가복음 17 장에서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라는 말씀이 나온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노예제도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노예라는 말의 참뜻을 알고 있는 노예제가 존재하는 사회에 이 말씀을 하셨다. 그들은 자유, 자기 자신의 의지, 심지어 이름까지 없이 동물처럼 매매되던 사람들이다. 주님은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라고 물으시고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 17 장에서 말씀하셨다.


항상 내 삶의 소원이 있을때만 열심히 기도하던 내모습이 참 제자 답지 못함을 또 깨닫는 순간이다. 주님을 주님이라 부르고 노예인 우리는 주님앞에 권리가 없다. 주님 무엇을 할까요? 늘 묻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피로 우리를 사셨고, 위는 모든 것의 주되심이 주님이심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주님나라의 노예가 되는것이 노예제도가 있던 시절의 비참한 노예생활과 같은 것은 아니다. 하나님나라에는 하나님 나라의 산소인 사랑이 있다.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다. 이 새 계명인 사랑이 있으므로서 기독교의 아름다움이 완성이 된다. 사랑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나타나야 할 미덕 중 하나가 아니라 사랑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이 삶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삶에서 사랑이 없다면 뭔가 진정 주님을 만난 사람이 아닌것이다. 성경에서 빛은 사랑이다. 어둠은 개인주의 (Individualiism) 이기주의이다. 빛은 사랑, 교통, 친교이다.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서로를 형제로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 사귐이 있을 것이다. 사랑은 명령이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산소이며 생명이며 핵심이다.


후안 카를로스 목사의 교회가  성장할때 주님이 그에게 하신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성장에 있어서 교인이 100명에서 600명으로 늘어가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다. 영적 갓난아기를 그냥 600명 거느렸을 뿐이다. . 나의 삶 또한 단순히 훈련받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살이 쪄가는 것이라면 어떡할까? 생각해 봤다. 영적 갓난아이 상태에서 살만 쪄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진정으로 주님안에서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에베소서 4장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진정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디사이플 제자반을 한것이 얼마나 잘한 선택인가? 그리고 여기에서 나는 진정한 성장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주님안에서 자라야 한다. 영적 갓난아이를 청산하고 스스로 준비된 제자가 되야 한다. 나아가 다른이들이 하나님나라를 알도록 단단한 영적 음식을 섭취해야겠다. 그리고 나서다른 제자를 양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할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주님 안에서 새마음과 새능력을 받고 진정한 제자가 되고 또 진정한 제자를 양육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 서 영 우 형제님 (PT) - 


제자입니까를 처음 읽기 시작하며 끝낼때까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말씀은 갈라디아서 2:20이었다.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박힌 나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것임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순종과 사랑이 내 삶 가운데 있을까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산다는 것은 많은 고민과 많은 실패와 경험, 그리고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을 이룬 후에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한다. 어떠한 경험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될까? 어떠한 물질이, 소유가 나와 내 가정에 좋을까? 이런 고민과 간구가 내 삶 가운데 넘치지만, 나와 내 가정이 얼마나 주님께 기쁨되는지 같은 수고를 하고 있지는 않다. 돌이켜 보면 신앙적 고민을 깊이 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오르티즈 목사님이 책 가운데 이야기 하는 것처럼 고민을 해도 항상 같은 고민이다. 햇수와 신앙의 성숙함이 정비례하지 않음을 내 모습을 돌아봤을 때 잘 알 수 있다. 


가장 내 마음을 무겁게 한 부분은 내 신앙관이 참으로 개인주의적인 것이다. 언제나 내 신앙의 방향성, 내 신앙의 성숙함, 내 신앙의 깊이만을 생각한다. 얼마나 자주 공동체의 성숙함과 나눔을 위해 기도하고 고민할까. 기도자리에서 입술을 열어 몇마디 내뱉음으로 내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신앙이 지금 내 삶의 자리에 팽배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내 모습 어디에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도 없고 순종도 없고 감사와 기쁨도 없다. 그저 게걸스레 스스로만을 높이려드는 기형적인 종교적 가치관만 있을뿐이다.


입술과 글로 내 잘못을 고백하지만 책에서 오르티즈 목사님이 이야기 하는 것처럼,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내 삶 가운데, 내 가정의 모습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순종의 모습만이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 양 준 모 형제님 (포이멘) - 


오르티즈 목사님의 제자입니까를 세번째 읽었습니다. 9년전쯤인가 디사이플반을 통해서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어나가면서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야고보서 1:22)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됩니다. 15여년전에 처음으로 읽던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야고보서 2:18)라고 꾸짖이던 하나님. 그리고, 그 말씀에 겁에 질려 무엇이라도 해 보려 했던 그 모습이 기억되었습니다.

 

제자입니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교인이 아닌 제자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해 주는 책입니다.    오르티즈 목사님은 책을 통하여 제자됨의 많은 부분들과 행동 강령을 보여주고 계신데 , “하나님과 나의 관계그리고 이웃과 나의 관계에서 제가 간과하기 쉬웠던 부분들을 간략하게 돌아볼까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마음을 다하고 목숩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어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쨰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이운을 네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39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은혜주시고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만을 생각하고 강조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됨을 잊게 됩니다. 오르티즈 목사님의 책을 읽으며,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리고 사도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종이라는 표현을 수없이 썼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분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에게 무엇을, 아니 나의 전부를 드리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깨닫고, 깨달음이 이웃을 사랑함으로 연결되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도는 얼마나 채워져 있는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기도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웃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함으로 또한 그들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기쁨 함께 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가? 나의 말과 행동은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같이” (요한복음 13:34) 이웃을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종됨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함을 위해 성령님께서 마음을 주장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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