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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스 7기] 최윤희 -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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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희
조회 3,459회 작성일 19-12-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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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소금과 빛                                                         

최 윤 희

 

제가 오늘 여러분과 나눌 말씀은 마태복음 5장 13절에서 16절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다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십니다. 

이 부분은 지난 둘로스 수업에서 예수님의 산상수훈중 세상에 대한 우리들이 가져야할 책임의 규범이라고 배웠습니다.  교회를 다니다보면 한번 이상 읽어보고 들어본 말씀이어서 이 비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막상 과연 내가 세상에서 ‘소금’이나 ‘빛’으로 살고있나 생각해보면, 항상 부담되고 주눅들게 되는 것이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과연 ‘소금’과 ‘빛’으로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런 삶을 살수있을지에 대해 같이 묵상하고 나누어 보려 합니다. 

우선 소금에 대해서 나누어봅니다.

 

소금 - 은밀한 영향력

모두 잘 아는 것 처럼 소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부패를 방지하는 방부제의 기능입니다. 냉장고도 없던 예수님시대에는 식품을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했었습니다. 생업이 어부였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셨을때 그 의미를 바로 깨달을 수 있었을겁니다.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고, 상처를 소독해서 감염이나 부패를 예방하는 방부제역할의 소금.  제자들도 세상의 소금이 되어 영적방부제로서 그 책임을 감당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공감하는 소금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음식맛을 돋구어 주는 조미료의 역할입니다. 간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비싸고 훌륭한 재료로 만든 요리라도 그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천하의 백선생실력으로도 어쩔수 없습니다. 그럴때 마지막 한 두꼬집의 소금을 넣으면 뭔가 모자르던 요리의 맛이 완성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맛있는 요리의 주인공은 소금이 아닙니다. 이렇듯 조미료로서 소금의 역할은 나를 돋보이게하는 것보다 이웃을, 지체를, 공동체를 묵묵히 도와 전체를 조화롭고 완전하게 만드것에 있기도합니다. 

 

그런데 소금은 방부제가 되건 조미료가 되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점차 그 형태가 사라집니다. 보존해야할 물건이나 요리할 원재료안에 녹아 스며들어 자신의 모양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시각적으로 더 이상 보이지 않게된 소금은 완전히 사라진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소금의 존재감은 그 기능과 맛을 통해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오히려 소금자체로 남아있는 것보다 더 많은, 더 효율적인 일을 해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소금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주장하며 우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안에 용해되어 세상에 속속들이 깊이 스며드는 은밀한 능력의 소금으로 예수님제자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한다는 의미입니다. 

 

빛 - 드러내는 영향력

예수님께서는 또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 (마태 5:14)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빛’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빛의 역할은 조명입니다. 어두움은 우리에게 사물의 모습과 위치를 구별할 수 없게하여 우리의 동선을 제한하고 안전사고를 유발합니다. 건강하던 인지능력와 심리적안정감도 약하게 만듭니다.  또한 영적 어두움은 이 세상의 일반적 선과 악의 경계선조차 교묘하게 지워버려 기본적 인간윤리와 도덕성마저 그 절대치를 잃게 만듭니다. 하지만 조명이 켜지는 순간 모든 것은 다시 그 모습이 드러납니다. ‘빛’은 무엇이 실체이고 허상인지, 어떤 것이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인지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립보서 2:15)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빛’은 등대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모두 잘 아는 것처럼 등대의 역할은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에게 빛으로 길을 안내하고, 신호를 보내 풍랑이나 충돌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의 길을 모르는 사람들, 암흑속에 길잃은 사람들에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는 적극적인 빛의 역할을 해야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에서 예수님제자로서 가져야하는 두가지 책임, 소금과 빛의 역할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며 살고 있는지요?

 

소금과 빛 - 짝퉁 vs 진품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과연 우리는 세상의 소금입니까?  겉모습은 소금인데 혹시 맛잃은 소금은 아닐까요?

혹시 우리가 빛이 꺼진 등불은 아닐까요? 

소금과 빛이 그 기능을 잃으면 무용지물이고 존재가치가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존재가치가 확실한 적정염도의 ‘소금’과 적정조도의 ‘빛’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선행을 하고 불의에 저항하며 세상에 유익한 위인이나 의인로 인정받는 삶일까요? 물론 위인은 고사하고 평범하지만 정직하고 올바르게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님에도 우리 주변에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불교신자들중에도 있고, 무슬림중에도 있으며, 무신론자중에게도 의인들은 있습니다.

몰몬교인들이나 여호와의 증인들은 매번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삶의 일정기간을 전도에 할애합니다. 세상속에서도 이들의 정직함이나 성실함은 높히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만 보자면 비록 짝퉁임에도 그들은 진짜 소금과 빛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일단 겉으로 보여지는 선한 행위만으로는 짝퉁과 오리지널을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짝퉁들도 진품처럼보여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니까요.

그래서 루땡땡이나 샤땡 같은 소위명품들은 오리지널같은 짝퉁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품에 속지않기 위한 진품감별법들이 있다고합니다.  그런데도 본 매장에서조차 가품을 진품이라고 확인해주는 실수가 종종 있답니다. 

이렇듯 짝퉁이 때론 진품보다 더 진짜처럼 보이는 요즘 세상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은 분명 그들과는 뭔가 다른 오리지널 ‘소금’과 ‘빛’이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가품이 아닌 진품 ‘소금과 빛’으로 구분될수 있을지 두 가지로 묵상해보았습니다.

 

소금과 빛 - 진품의 조건

첫번째,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달라야 합니다.  

 

우리 힘의 원천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빛이 되어 세상에 빛을 비추는 행위는 우리자신의 계획이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체발광하는 ‘빛’이 아니라 ‘주 안에서 빛’입니다. 

내가 행위의 주체라고 생각하면 그 결과에 대한 염려, 자만, 오만, 실망, 좌절등이 팩키지로 따라 옵니다.

계획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상황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모든 행위의 주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들은 그저 그분의 도구입니다.  도구는 내가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없는 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받을 비난이나 손해를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말고 세상을 향해 당당히 소금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두번째,  우리가 세상을 향해 소금과 빛의 책임을 수행할때 그 행위의 목적과 동기가 달라야 합니다.  

 

어떠한 선한 행위도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거나 자기 만족을 위함이 아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닌 가식이고 위선이라고 예수님은 지적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리라 (마태복음 6:1)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챤으로서의 내 모습과 행동이 혹시 나의 의나 만족, 또는 세상의 칭찬을 받기위한 행위인지 속마음을 세심히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판단할 방법이 없습니다. 나와 하나님사이의 아주 은밀하고 예민한 부분입니다. 항상 기도와 말씀안에 내 안과 밖이 진실할 수 있도록 깨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소금과 빛이 되는 목적은 단 하나,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와 상황들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이렇게 묵상을 했다고해서 갑자기 참된 ‘소금’과 ‘빛’의 삶이 쉬운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제게는 말입니다. 

소금처럼 녹는게 손해인듯 하고 너무 허무하다생각될때도 있고, 세상 어두움의 크기가 너무 커보여 좌절하거나 숨기도 하며, 적당한타협도 시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2,000년전 제자들에게만 주셨던 과거완료형의 말씀이 아닙니다.

시공간을 넘어 지금 이 시간 이땅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한 우리에게도 주시는 현재형의 말씀입니다. 

우리모두 능력주시는 하나님안에서 숨 한번 고르고. 지금부터는 당당한 진품 ‘소금’과 ‘빛’으로, 세상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다하며 살아가는 예수님의 참제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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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일님의 댓글

손경일 작성일

와~ 은혜 받았습니다...우리 모두가 깨닫고 전한 만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임! 승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