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사이플 10기] 이것이 예배이다 독후감 (최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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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098회 작성일 20-02-24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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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 토저의 《이것이 예배이다》를 읽고
I. 들어가며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51:16-17)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죄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떠나버려 영적으로 죽은자가 되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임한다. 이는 곧 창조의 때가 회복되는 것,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 하나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것이 예배이다》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예배를 위해 태어났고 예배를 위해 거듭났으며 우리가 창조되고 또 재창조된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받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다는 진리는 성경 한두 구절의 교훈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교훈이다.” (39쪽) 이는 한편으로는 쉽게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충격적이다. 인간이 창조된 목적까지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곳에는 “예배”가 있다? 그 어떤 것도 아닌 “예배”를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중요한, 우리의 존재 목적 그 자체인 예배가 왜 2순위, 3순위, 4순위 등 우선순위에서 한없이 밀려나 있는 것 같은지? 평생 교회를 다녔으나 이 “예배”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떠한 깊은 고찰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책의 각 부분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II. “사역 > 예배”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은혜를 베푼다는 착각에 빠져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일손이 부족해 쩔쩔매는 공사감독 쯤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중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필요하다고 착각한다.” (66쪽)
주일성수의 중요성에 대하여, 무엇보다 예배부터 제대로 드려야 한다는 말은 어렸을 때 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만큼 수없이 들어온 말이다. 그러나 “예배”라는 행위에 대하여 나는 종교적 행위 이상의 그 어떤 고찰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껏 수 많은 예배에 참석해왔는데 대체 이 행위는 내게 있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던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가 속한 조직에 대한 소속감이나 연대감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 충족 그 이상의 의미로 예배를 대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에게 있어서의 예배란 단지 “교회 생활”의 일환이었을 뿐, 교회 생활에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 즉 예배보다 우선하는 것은 봉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모태신앙으로 부모님에 의해 시작된 나의 교회 생활. 어린 시절 나에게 있어서의 예배란 봉사/사역의 의미가 가장 컸고, 그 다음은 혹시 모를 징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싫어도 참석해야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출석도장을 찍고, 맡겨진 사역을 감당하며 징벌에 대한 두려움을 씻어 내고, 또 다른 측면으로는 인간적인 성취감 또한 채우는 장이랄까?
“많은 교회에서 끊임없는 종교활동이 곧 봉사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많은 설교를 통해 현대교회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바쁜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이라도 정직해질 수 있다면, 조용한 시간에 우리에게 깨달음이 찾아와 ‘오늘날 믿음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진정한 영적 예배를 찾아보기 힘들다’라고 속삭일 것이다…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214-215쪽) 이는 가장 기본이 되는 예배를 뒷전으로 한 채 “종교활동의 덫”에 빠져 예배자가 아닌 일꾼으로 전락해버린 자들에 대한 저자의 말이다. 그 시절의 나 역시 예배 반주며 주일학교 교사며 여러 부서에서 사역을 하는 와중에 저자의 말 그대로 하나님께 내가 필요하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종교활동의 덫"에 걸려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귀한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것이었지 예배의 초점이 절대 하나님께 맞춰져 있지 않았다. “충만하고 깊은 예배를 드린 후에 일”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그 사역을 그만 두게 되었을 때 금방 교회 생활에 대한 흥미를 잃었던 기억 또한 있다.
III. “환경&사람 > 예배”
예배자로 창조된 인간 창조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보니 교회/예배를 그릇된 잣대로 바라보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어쩌면 필연적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을 떠나 독립한 후,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을 때 등 새 교회를 찾고, 택해야 했을 때 나는 무엇에 눈길을 두었었는지 한 번 되돌아 보며 이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저자가 비판한 “온갖 장식품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교회 (145쪽), “크고 아름다운 성전” (148쪽), “영화관 같은 교회 - 연예오락이 판치는 교회” (151쪽), “대중을 즐겁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교회” (181쪽),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첨단의 조명기구와 기계장치를 뽐내는 교회” (220-221쪽)…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선호하고, 내가 쫓던 모습들이 아닌가. 인간적인 잣대로 보기에 화려하고, 세련된 것들에 취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어느덧 잊고 오로지 환경과 그 안의 사람들에만 몰두하는 우스운 상황. 그러나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른 채 환경과 사람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배의 근본 이유를 망각하고 지내니 예배는 그저 한편의 공연이 되는 것이고, 무대 장치와 그 무대를 꾸미는 배우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교회가 얼마나 흥미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가, 교회 시설은 얼마나 편리하며 신식인가, 교회 구성원들은 사귐을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인가 등등. 소름돋는 점은 이러한 판단 기준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하나님과 가까워졌다 생각되는 이 시점에도 이러한 외향적인 부분에 쉽게 현혹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 그분을 향한 경배에 집중하기 보다 나를 기쁘게 해줄 프로그램, 시설, 구성원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었다. 속마음을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한 없이 세속적이고 약한 나의 마음. 이런 위험한 마음가짐으로 “종교” 활동 만을 반복한다면, 결국 저자가 비판한 무서운 결과에 이르지 않을까. “훈련받지 못하고 준비도 없고 신령하지도 않고 충만하지도 않은 사람이 일종의 야심에 사로잡혀서 무언가 종교적인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거나 (70쪽),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종교 프로그램에 몰두”한다거나 (70쪽), “기도하지 않고 예배도 드리지 않는 집사와 장로와 목사들이 교회를 경영하면서 교회의 나아갈 길을 결정”(149쪽)한다거나,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것임을 잘 보여주지 못하는” 교역자나 평신도로 전락해버린다거나. (215쪽) 즉, 평생 교회를 다녔다 자부하면서도 결국에는 그 모든 시간이 “비극적인 낭비”(187쪽)로 밖에는 평가되지 않는 처절하고도 비참한 결과에 이르지 않았을까.
IV. 맺으며
이 책을 읽으며 가진 첫 느낌은 모든 것의 기초부터 다시금 다져본다는 것이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부실한 기반 위에 위태로이 서있는 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만약 무심히 간과했다면 어느 순간 쉽게 무너져 버리지 않았을까? 기본 중의 기본이지만 너무나도 습관적이고 당연시 되는 부분이기에 오히려 쉽게 간과해왔던 부분들을 세밀하게 되짚어 보며 신앙 생활의 기반을 다시금 점검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안전장치 또한 설치한 느낌이다.
속 마음을 다 벌거벗겨 날 것을 보게 하고 그 타락한 모습을 향해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은 저자이기는 하나, 그래도 그는 독자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데서 만 그치지 않는다. 내 마음의 참 모습을 깨닫고 그 한없이 세속적이고 더러운 모습에 절망감, 무력감, 좌절을 느꼈을지라도 결코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리면 안된다고 격려한다. “당신의 마음이 냉랭한 것을 당신이 알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아직 굳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아직 당신을 거부하신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에 갈망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것을 심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실망시키기 위해 그런 갈망을 심어주신 것이 아니다. 당신이 거기에 부응하여 결단하도록 심어주신 것” (171쪽)이라 말한다. 나는 이 책을 지금 이 시기에 접하게 해주신 이유를 바로 이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늦은 것이 아니다. 오늘 그 갈망을 느꼈다면, 지금 그 차가운 마음을 버리면 된다. 저자의 권면처럼 미지근한 신앙에서 탈피하고, 반쯤 죽은 것 같은 무기력한 삶에서 벗어나면 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주실 것임을 믿는다. 두 팔로 나를 안아주실 그분을 기대하며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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