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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스 7기] 정동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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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동근
조회 3,232회 작성일 19-12-25 14:08

본문

제목: 나를 본받으라
본문 말씀:
빌립보서 3:17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빌립보서 4:9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들어가기전에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설교라는 것이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설교라는 표현보단 그저 제 입장에서 이해하는 대로 말씀을 나누는 것이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말씀 나눔'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섬기다가 뜻하지 않은 일로 지체들 사이에서 사소한 다툼이나 충돌이 생기지 않으셨습니까? 이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은 불편함을 가졌을 테고, 어쩔 때는 극단적으로 교회에서 떠나려는 마음이 품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은 놀랍게도 교회 안에서 하루 이틀 겪은 문제가 아님을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했던 초대교회 시절에서도 교회 섬김 안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다툼과 경쟁 가운데,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잦아서 골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빌립보에서 세워진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에 일어나고 있었던 갈등을 들은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뜻밖에 사도 바울은 대담하게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언급했습니다.  과연 무슨 의도였을까요?

    빌립보라는 지역은 예로부터 은퇴한 군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였는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자세 또한 전투적이었습니다. 얼마나 전투적이었으면 경쟁을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했고 구원을 얻는데 열심을 올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잊은 채, 선한 행위를 통한 영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일부 성도들로 인해 경쟁을 부추기는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옥고를 치르고 있는 사도 바울을 가리키며 그분이 복음을 전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하듯이 빌립보 교회의 몇몇 성도들로부터 지식과 영적인 완벽함을 통해 높여지는 것을 바라며 서로를 경쟁자로 몰아 넣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경계를 하시며 자신을 본 받으라며 예수님의 멍에를 같이 메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혼자서 각자 멍에를 메면 힘이 들고 무겁게만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예수님과 함께 멍에를 메게 되면 저희는 멍에의 무게를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 곁에 묵묵히 걸으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로서 한 명뿐만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모여 형제자매로서 예수님의 멍에를 메게 되면 더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외로워할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보시기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연합이었습니다.  연합하게 되므로 마음도 같이하게 되고 경쟁하지 않게 되므로 오히려 기쁨을 누리고 관용을 베풀게 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이하게 된 마음이 곧 예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빌립보 성도들과는 달리 높여지는 것을 거절하시고 스스로 낮아지시기를 선택하셨습니다.  핍박과 박해로 인한 고난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인정 받으려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높이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메는 멍에는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는 섬김에 쉼이 있고, 그분의 일에 내가 동참하는 섬김에는 나의 의도 나의 공로도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이러하듯이 예수님의 멍에를 메신 사도 바울이 감옥 안에서와 더불어 여러 번 여행하면서 안타까운 일들이 셀 수 없이 있었음에도 기뻐할 수 있으셨던 이유는 옛 시절처럼 자신의 열심으로,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살았던, 자기가 주도하던 삶에서, 이제는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은혜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나의 일이 아닌 오직 그분의 일에 동참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섬긴다면 저희 안에서 경쟁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시기와 질투는 더더욱 동반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다 깨달은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의 몸이 되는 교회 공동체로서 어떠한 일을 하든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어느 것도 쓸모 없이 버리는 지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도 죄성을 지니고 있는 저희로서는 빌립보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으로부터 인정 받기를 원하고 자신이 섬기는 일을 드러내기를 원하는 욕구가 없지는 않을 줄 압니다.  그만큼 저희가 연약하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이것만은 기억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모세와 마찬가지로 동족으로부터 미움뿐만 아니라 목숨을 앗아갈 위협을 받았고, 심지어 복음을 전한 교회로부터 의심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거기에 대해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만은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초대교회보다 훨씬 더 자유롭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 예수님만을 보고 예수님만을 따릅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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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하님의 댓글

장정하 작성일

동근 형제님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교회에서 관계 가운데 마음이 어려운 분이 계실때 위의 구절을 읽어보며 묵상하면 좋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