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멘 8기] '제자 제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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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5회 작성일 25-04-01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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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과정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읽게 된 제자2 책은 구약과 신약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아우르고 정리해 볼 수 있는 아주 시의적절한 책이었다. 다만 이 제자2 이 단순히 유명한 목회자님의 성경 해설집이나 요약집이 아니라 ‘나가서 제자 삼으라!’라는 목적으로 쓰여졌다는 데에서 상당한 부담감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아니, 이건 이제 목회사역을 시작하시는 사역자나 제자를 만드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이 당연히 있을 것을 예상이나 한듯 저자는 첫 챕터부터 ‘예수님을 믿는다면 제자다’, ‘예수님을 따른다면 제자를 삼으라’ 라는 주제로 나같은 이들을 겸연쩍게 만든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예수님이 주신 대계명은 몇장 몇절? 대사명은?? 이라는 퀴즈에는 시키기도 전에 손번쩍 들고 대답할 수는 있으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주신 마태복음 28장의 대사명이 평신도인 나와는 좀 거리가 먼, ‘목회자나 선교사에게 혹은 특별한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에게 주신 대사명’ 이라고 상당히 각색된 생각으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베풀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평신도에게는 상당히 버거운 말씀인 것은 사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평신도가 주님 주신 대사명이라고 순종하겠다며 제자삼겠다, 세례주겠다 나서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찔하기까지하다. 특별한 사역을 담당하는 몇명을 향한 명령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제자에게 한 명령이라면 나는 이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그 전에 특별히 ‘제자’라는 단어가 내게는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시절,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애정을 쏟았던 14명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각각의 성격과 성향, 무엇을 고민했고 무엇에 행복해했는지 세세히 기억할 수 있다. 그 아이들과의 관계는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선 특별한 애정과 사랑을 주고받은 관계였다. 그들이 환경에서 얻은 상처에서 벗어나 행복하길 바랬고 괜찮은 어른이 되기를 바랬다.
그 경험은 내게 '제자'에 대한 답을 알려주었다. 한편으로는 허무하게 들리고 너무 흔하게 사용되는 단어일 수 있겠지만, 그 핵심은 바로 ‘사랑’이다. 때때로 어떤 단어가 그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있다. 그것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말씀의 능력일 수 있겠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게 의미를 가진 순간, 제자2는 더 이상 단순한 지침서나 요약집이 아니라, 나에게 깊은 영감과 깨달음을 주는 책이 되었다.
저자 역시 이 본질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책을 덮고 물러나라고 말한다. 사랑이 없는 제자 양육은 죽은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제자 양육은 단지 가르칠 학생을 모은다는 의미가 아니다. 진정한 초점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랑하는 데 있다. 궁극적으로 제자 양육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따르며, 그들을 충분히 사랑하여 그들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들을 구세주께 인도하고, 주님이 그들을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제자로 변화시키는 일이 제자 삼는 일이다. 더 나아가 그들 역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가르칠 제자들을 세우는 것이 제자 삼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제자라는 뜻이다. 제자는 스승이신 주님을 닮아가며, 주님의 사역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 사역을 통해 주님을 닮아간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다면, 나도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바라본다면,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망으로 달려가는 영혼에 애끓지 않을 수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대학내내 이론을 배우고 두 번의 실습을 하고 수많은 연습을 하고 학위를 따고 고시를 보아야 한다. 몇월 몇일자로 요이땅! 을 시작한다. 하지만 주님 주신 대위임 명령의 제자삼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여 주님 앞에 데려다 놓는 것이 유일한 희망임을 깨닫는다. 그것이 바로 제자된 마음이고, 제자를 삼는 일이다.
물론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한 인간이고 죄인이기에, 끊임없이 말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특별한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머리로 모시고, 진리의 반석 위에 단단히 세워져야 한다. 우리는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이 혼자만의 다짐과 신앙, 변화와 간증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하나님은 동료 크리스천과 함께 ‘연합’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그분을 반영하는 존재로 지으셨다면, 아담과 함께 일하셨던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인적인 경건만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연합이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과 나, 나와 나 자신, 나와 동역자와의 유기적인 관계가, 그 사랑의 파이프라인이 아름답게 형성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교회가 우리의 축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폭탄처럼 되어버린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지만, 교회의 목적은 폭탄이 아닌 등대여야 한다. 세상을 압도하는 공동체인 교회가 되어, 이웃이 교회의 특별함을 알아채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우리의 역할이다. 또한, 그것이 지역을 넘어 온 열방에 미치기 위해 우리는 복음을 들고 떠나는 데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이 세상을 부패하게 만든 죄의 역사를 역전시키려는 광범위한 계획이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해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하나님의 선언으로 끝난다. 책에서 정리된 구약과 신약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실패와 아픔, 치열함을 본다. 왜 그렇게 오래 참으시고, 왜 새롭게 하시려 하시는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과 부활이 날마다 우리 삶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 과제는 깨어진 세상과 우리의 삶의 모든 구석에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치유가 스며들게 하는 것이었다. 주님이 오신 것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언젠가 주님은 다시 오셔서 이 사명을 마치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에게 완성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에게 주신 기술과 관계, 자원을 가지고 신실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발견되기를 기도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예수님이 주신 대사명에 대해 의문과 인간적인 제한적인 질문들이 많았지만, 주님께서는 대계명으로 그 모든 질문에 답해 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장 37-40절)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 13장 35절)
Key는 결국 '사랑'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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