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로스 6기 금요일 저녁반 독후감 - 래디컬 > 제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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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스 6기 금요일 저녁반 독후감 - 래디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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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oonmin
조회 3,819회 작성일 19-04-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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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디컬이라는 책을 접하고 내가 제일 처음 한 것은 사전을 찾아 뜻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근본적인, 급진적인”이란 뜻을 가진다는데, 나는 이 상반된 두 단어가 좀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왠지 Cynical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예수님께 순종할 것인가? 라는 두 질문에 나는 별 생각없이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었으나, 곧 내가 얼마나 깊이가 없이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대중의 시선을 끄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목사님은 급진적인 메시지를 전해야 하고, 성도인 나는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주일 예배에서, 수요 찬양예배에서 때때로 나의 마음 가운데 급진적으로 말씀을 후욱 넣어주시면, 헉 하고 물러나는 나, “하지만 예수님… “하는 나를 부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철저하게 순종하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안주하지 않을지 두려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만으로도 기뻐하실 거야”라고 합리화하는 나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에 소개된 아시아 지하 교회 사람들의 이야기에 지구상에 이런 사람들이 실재한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들의 복음에 대한 갈망, 말씀만 있으면 모든 것이 충분히 만족되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이들의 삶이 진정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근본적인 자세인데 이것이 너무나 급진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더욱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주님을 따르려면, 제자가 되려면 나를 버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을 버리고 무조건적으로 믿고 순종해야만 하는 것임을 머리로만 알 뿐, 마음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함을 다시 한번 회개할 수 밖에 되었다. 나는 영적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심령의 생기를 회복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인하고 다시 고백할 뿐이었다.   

 

고난 주간 새벽 예배에서 보여 주신 눈물 흘리시는 예수님의 사진과 책에 묘사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묘사가 겹쳐지면서 내 마음속 깊이 파고 들었다. 하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얼굴에서 땀과 피를 뚝뚝 떨어뜨리시며 그토록 고뇌하고 고통스러워하셨던 예수님의 마음.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한 잔을 할 만하시거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히 구하는 예수님의 마음. 쇠못이 예수님의 손과 발을 뚫고 들어가는 참혹한 상황에서 인간의 죄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진노, 분노와 심판이 주님의 심령을 파고들어 그리스도 위로 쏟아지는 것을 묵묵히 견디시고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하신 예수님의 마음. 이것이 복음이기에 나는 겸손히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무엇이길래, 그 아픔과 고통을 감수하시고, 인간의 죄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셔서 그분을 믿는 자들이 하늘 아버지와 영원히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여신 것일까? 십자가의 그 사랑을 알게 해달라고 구하지만 답을 받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 긍휼하심을 절실히 느끼게 하심은 이것이 천국 열쇠인 것 같았다.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신, 나사로에게 풀고 돌아다니라 하신 예수님, 이것이 바로 고난이 passion 인 이유가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단 한번의 결단이나 동의만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 주님의 명령이나 기준, 영광은 간과하고 실제로는 넓은 문을 따라가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천국에 이르는 좁은 길을 걷고 있다고 착각하는 독실한 신앙인을 냉소적으로 지적하였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 떄에 내가 그들에게 밝혀 말하되,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근본적으로 십자가의 그 사랑을 증거하는 복음은 우리에게 저마다 제 몫의 십자가를 지며,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때때로 상황에 따라 문화에 따라 변질된 복음을 편하게 취하려고 하기에 더욱 급진적으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심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라는 선물안에서 이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이므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구원의 목적이고 따라서 하나님을 갈망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권능은 자연과 인간, 사탄을 모두 다스리는 절대 권위인 것이다. 예수님은 구하는 자에게는 성령님. 위로자이자 도우미이시며 살아 계신 임재 그 자체인 성령님을 보내주신다 하셨으므로 우리는 간절히 구하고 갈망한다. 절박하게 주님의 권능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자리로 몰아넣은 뒤에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이 여호수아를 만나주시고 절대자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을 알기에 내게 그 주님의 권능이 없다고 느끼는것은 능력의 주님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내가 매사에 절박하게 구하지 않고 있기 때문임을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주님을 열방에 널리 알리게 하셨다. 즉 열방 가운데 거룩한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세상가치와 맞서 싸우고 세계를 품고 하나님꼐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지만 급진적인 그리스도인으로만 여겨지고 있는 것은 왜일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예수님. 나는 박제 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제자를 삼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 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다.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을 쫓으려면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가진 것을 다 포기하는 결단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비단 부자 청년이 아닌 나에게도 마찬가지이시다. 선택이 아니라 복종하라고 명령하시고 철저하게 변화된 새로운 심령을 어제도 오늘도 요구하신다. 그러면서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을 아시기에 “분명 장래일에 대해 염려하지 말고 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는 분임을 신뢰하라고”까지도 자세히 말씀하신다. 나의 근심. 걱정. 염려를 모두 주 앞에 내려 놓으니 온전히 주관해달라고 구하지만. 나는 진정 절대 신뢰를 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있지 않는 모습을 고백하고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고난의 이야기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온다. 감당할 만한 고난만을 주시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는 주님임을 알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신 주님임을 알지만 고난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녹녹치 않음을 알기에, 마 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지만, 하늘나라에 집중하며 급진적으로 고난을 받고 급진적인 보상도 바라보는 모험을 하라고 이 책과, 고난 주간에 계신 예수님은 내게 계속 말씀하셨다.  

저자인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1년간의 급진적인 실험에 뛰어들라고 권유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단 일 년만이라도 참다운 제자의 삶을 살아보라고, 예수님의 복음을 문화적인 취향에 맞게 변형하지 말고 나의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바꾸어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살라고 도전하고 있다. 고난 주간을 마무리하고 성금요일을 기리며 부활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오늘. 나는 앞으로의 1년간을 긍휼한 마음으로 전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매일 말씀 을 읽으며, 나의 재정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되도록 미리 구별하여 드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낯선 곳에 찾아가서 섬기는 기회를 찾으며, 복음적인 지역 교회, 내가 돌아갈 한국에서의 새로운 교회에 헌신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해본다.

 

나아가 Are you radical? 이라는 질문에 1년 뒤 고난주간에 Yes! 라고 답하며 예수님을 만나기를 기대해본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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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작성일

"나는 앞으로의 1년간을 긍휼한 마음으로 전세계를 위해 기도하고..." 이 구절이 제 마음에 큰 소리로 다가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부어 주시는 긍휼한 마음... 나의 비천한 의를 산떠미처럼 쌓아놔도 감히 받을 수 없는 아버지의 마음...



 



긍휼함의 은혜... 비로소 십자가의 사랑을 조금씩 알아가고 체험할 수 있는 귀한 능력이고, 비로소 지체들의 가련한 영을 볼수 있고 그 자체를 품을 수 있는 힘이 되는거 같습니다. 스승되시는 예수님을 품고 가시는 순민 자매님... 지경을 넓히시는 하나님을 느끼시며, 한국에서도 그리스도의 가정을 이루시고 주님 나라 확장에 아름답게 사용받으시길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