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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사이플 9기 목요일 오전반] 제자입니까 독후감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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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June
조회 6,431회 작성일 19-04-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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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입니까

 

박소희

 

‘예수님의 제자’라는 단어를 떠올렸을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세상의 핍박속에 살다가 순교의 길을 택했던 열한 사도들의 모습이다.  성경속 열한사도가 갔던 그 길을 나도 고스란히 걸어가야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제자’란 단어의 의미부터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위해 힘써야 할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것이 먼저임을 느끼게 되었다.

 

 ‘제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며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말은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는것’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의 주인되신 예수님’ 이라며 수없이 고백했던 기도를 되짚어 보면 나의  ‘종’ 된 자리는 제대로 파악도 못한채 중언부언하는 기도였던것 같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나는 예수님의 명령 없이는 아무런 초이스도 가질수 없는 노예와 같은 종의 신분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의 위치도 모르고 주님이 불러주시는 관계가 아닌 내가 부르면 주님이 오셔야 하는 위치에 예수님을 두고 있었음을 회개하게 되었다.

 

주님은 빛으로 오시고 그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이 보여져야 한다고 저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종의 신분이지만 주님의 식구로 인정되는 우리에게도 요구하시는게 당연하다. 주인의 성품과는 전혀 다르게 악하고 못된짓만 골라서 하는 종이 있다면 주인에게서 내쳐질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해보니 이해가 갔다. 주님으로부터 공급받는 사랑이  나에게서 절로 흘러나가 내 가족과 이웃에게 전해져 그들또한 나의 주님으로부터의  사랑을  함께 맛보기를 원하시는것 같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중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아름다운 찬양으로 표현하기 원하신다고 한다. 입술로는 경건한 단어를 사용하고 하나님께 손을 들어 찬양하지만 나의 속 깊은곳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닌 나를 위한 위로, 내 만족을 위해 찬양할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며 드렸던 수많은 찬양들은 사실 찬양을 올려드린것이 아니고 세상의 노래를 흥얼거림과 다를바 없었음을 회개한다.  알맹이가 빠진 찬양이 아닌 삶속에 감사가 넘쳐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진정한 찬양을 올려드리길 기도한다.

 

나의 주 되신 하나님을 알고 깨닫는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만큼 자라기를 원하신다고 한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마냥 어린아이의 모습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장성해서 우리를 통하여 또 다른 어른을 키워내기를 원하신다. Pg.160 에서는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자 된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자되라”고 말했다는 부분을 읽으며 마음에 찔림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나의 모습을 통해 자기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보고 싶다는 도전을 받은일이 있었던적은 있기나 할까 생각해 보게되었다. 나의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비춰져야 하는 커다란 책임감이 주어졌다. 성경지식만 많음을 가지고서는.. 자라남이 없이는..사랑의 열매가 없이는 참된 제자의 길을 가고있다고 말할수 없음을 이 책을 통해 배우고 돌아보게 되었다.

 

 

‘제자입니까’를 읽고

 

박혜준

 

       디사이플 훈련기간 동안 세퍼드 라이프 교재, 디사이플 9기 자매님들과의 교제, 또 우리 모임을 방문하시는 목사님들의 메세지들 속에서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는 ‘왕좌에 앉으신 예수님과 그 밑에 있는 우리’ 이다. 그리고 이 ‘제자입니까’ 책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의 뜻을 내어드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신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진 ‘내가’ 복음서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며 첫 챕터를 연다. ‘내가 복음서’ 라는 단어를 처음 보았을 때 대충 예측할 수 있는 내용- 그렇지만 부드러운 권면을 할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어 저자는 읽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부끄러운 나의 모습들을 낱낱이 들춰 내었다. 마치 내 의식 깊은 곳 어두운 방에 내가 일부러 숨겨두었던 모습들을 예수님께서 촛불을 들고 들어 오셔서 하나씩 비추어 가며 내게 일일이 보여주시는 듯한 느낌에 무릎꿇고 회개할 수 밖에 없었다. 말로는 ‘주님 (Lord)’ 라고 하지만 ‘나’를 위해 오신 하나님,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 ‘나’의 ‘나의 가족’의 잘됨을 위한 기도, 주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에 행하는 영혼 구원이 아닌, 저 자매가 형제가 구원을 못받으면 불쌍하기 때문에 전도해야 한다고 가졌던 마음들… 이 모든 것들이 철저하게 ‘Christ-motivated’, ‘Christ-centered’ 가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했다.

 

       그렇다면 이 ‘내가 복음서’를 버리고 주님께 내 삶의 왕좌를 내어 드리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주님이 나의 진정한 주인이시라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인정은 바로 온전한 순종이다. 그래야 우리는 주님이 명령하시는 것을 ‘따를’ 수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신약의 예수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어린 양이라는 순하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이미지가 강했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그동안 교회에서 ‘내가 복음서’적인 교육을 통해 형성한 이미지와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런데 제자입니까 책에서는 예수님은 초지일관 ‘나를 따르라’고 강하게 명령하신다고 지적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로 성경에서 예수님은 그리하셨다. 부자 청년에게도 가진 것을 모두 다 팔아 따르라고 하셨고, 아버지를 장사하고 따르겠다는 청년에게도 장례식에 가지 말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런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주인되시는 그 분을 온전하게 따르라고 명령하고 계시는데 그동안 나는 그 사실이 불편해서 외면해 버린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의 구원은 권면도 아니고 좋은 것이라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좋은 제품에 대한 광고도 아니다. 구원은 복종이다. 구원은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옮겨지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새 주인되신 예수님께 복종해야 한다.

 

       이렇게 주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나면,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산소요 하나님께 구원을 받았는지 아닌지 드러나는 시금석이라고 저자는 이야기 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일 3:14)” 라는 말씀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가 형제를,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이 있다. 디사이플을 듣는 기간 중에 내게도 공동체 안의 형제 자매를 온전히 포용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과장하여 100가지 있다 하더라도, 우리 주인되신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그래서 종된 나의 이 어려운 마음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웠다. 또 한가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명령도 주인이 내리신 것이기에 과정도 주인께 맡기면 된다는 사실이다. 내가 사랑해야 한다고 마음 먹어서 할 수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구하면 된다. 역설적이지만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면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축복을 얻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구원 받았음은 새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내리시는 명령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는 이것을 진심으로 깨닫고 사랑할 때 예수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죄의 속성을 가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순종하기 참 힘들고, 어렵게 순종 한다고 하더라도 다시 튀어나오는 우리 죄의 속성 때문에 다시 불순종 (나의 주인은 나라는)의 상태로 되돌아 가기 쉽다. 하지만 에베소서 6장에서도 바울이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이 매일의 싸움을 통하여 더욱 굳건히 예수님의 제자로 설 수 있음을 믿는다.   

 

 

제자입니까를 읽고

 

신민영

 

두번째로 이 ‘제자입니까’ 책을 읽으면서도 여전히 충격적인 것들을 발견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된다. 이제서야 눈에 들어온 “새 포도주”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제자가 아니고, 그 분을 주님으로 모시며, 그 분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자여야 한다는 글에 ‘난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은가? 난 주님을 찬양하고 있지 않은가?’ 하고 목소리를 올려 보지만, 마음은 그러하다 하나 실질적인 행함은 그렇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우김’임은 내 스스로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의문케 되는 이 두 가지에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은 정확한 지적으로  깨닫게 하시며 실천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신다.

가장 먼저 ‘내가’복음서에서부터 내 기준으로 하고 있는 기도와 전도의 삶에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는 삶의 구심점을 바꾸기를 알려주신다. 그 누군가가 불쌍해서 전도하고 기도하는 것이 아닌 예수님을 위하여 기도하고 전도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사랑은 명령이며, 사랑만이 오직 그리스도인의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마태복음 5:16절의 암송구절을 괜히 외운게 아니였다. 어둠은 개인주의, 이기주의 이지만 빛은 사랑, 교통, 친교이다. 우리가 만일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는 서로를 형제로 알기에 우리에게 서로 사귐이 있고, 마음 속에서 우러나온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사랑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서 숨쉬게 하는 산소이다.

그 중 하나님은 이웃사랑에 ‘이웃들’이 아닌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한 사람, 한 가정만 사랑하기로 정하라고. 내 자신을 팔아서 내 자신을 내어주라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경건서적만 내려보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사시며 사람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을 보내셨음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도우셨고 우리와 나누셨다.” 는 말씀으로 사랑의 실천은 이러한 것임을 정확히 알려주신다. 그럼에도 난 내 아이들이 잘 입고 잘 먹고 학교에 가는데 이웃 아이들이 그렇지 못할 때,  ‘내 아이들을 위해 애쓴 만큼’ 이웃 아이들은 위해 애써낼 수 있을 지..아니면 난 말만 그럴싸하게 해놓구선 그냥 고통당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도 그들을 지나쳐 유유히 내 집의 차고문을 열고 있는지…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또한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우리를 자기 몸 보다 더 사랑한 것 같이….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짐이 벗겨지는 것뿐아니라, ‘나’ 구조에서 ‘그리스도’ 구조로 대체되는 핵 폭발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게는 이 핵폭발의 순간이 있었던가…? 사랑할 시간을 만들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랑을 알고 우리의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을 마땅하게 생각하라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마땅하다 생각해 본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오직 가족이라면 가능하겠지?...하는 소심한 대답만 떠올려 본다…

세 번째 단계의 사랑은 ‘삼위일체적 사랑’이라고 하신다. 구약과 새 언약의 사랑을 둘 다 뛰어넘는 영원한 사랑, 성숙한 사람을 위한 사랑이라고 한다. 삼위일체의 영원한 사랑에 어떤 수를 더해도 그것은 하나가 된다. 하나님은 감자 뿌리에 달린 여러개의 감자 조각이 아니라, 으깬 감자로 섞여져서 내가 아닌 ‘우리’를 원하신다. 으깬 감자처럼 섞인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모습처럼… “사랑은 명령이다. 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산소이며 생명이다.”

  다윗은 ‘그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찬양’ 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찬양이고, 흑암 나라의 언어는 불평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은 이 천국이나 흑암 중의 한가지 말을 말하게 되어 있다는데 나는 어느 나라의 말을 하고 있는지....우리안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년 사계절 언제나 무엇을 찬양하는지 확실히 알고 주님을 찬양하라고 하신다. 때론 기도할 때마다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주님이 베푸신 세상을 바라보며 찬양하고 기도하며 우리 마음속의 찬양 상자를 보다 많은 찬양의 제목들로 채워나가라 하신다.  나쁜일이 일어나든 좋은일이 있든 다윗의 시편처럼 우리의 반응은 주님께 드리는 한편의 시편을 만들어 주께 찬양을 올려드리고, 주님께 새로운 말과 노래로, 오늘 일어난 일들, 주위에서 본 것들, 그 분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는 것들에 대하여 아뢰라고 하신다.

주님과 이토록 교제할 수 있는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찬양 올려드리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사랑 나누기를 실천하기를 다짐하며 나아간다.

새 부대에서 찾은 핵심은 ‘성령안에서의 성장’이다. 영원한 유아기를 보내고 있는 듯한 내 삶에 단단한 음식을 먹고 자라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권면하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함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양육되어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기 위해 우리가 할일은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주신다.

이 디사이플스 그리고 그 이후의 과정들을 통하여 양육되어짐으로 얽매이지 않는 유연함으로 성령님을 의지함으로 기도하고 행하며 하나님의 빛이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 제자 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어지기를 소망한다.  

 

 

 

오르티스 목사의 ‘제자입니까’를 읽고

 

원경선

 

내가 글을 읽고 그 독후감(?)을 쓴 것이 언제였을까... 무엇이든지 틀에 맞추어 사는 것이 어색한 내가 주입식(내가 중고등학교 때도 피했던 공부방법) 수업인 디사이플반에 들어와 적응하기는 무척 어려웠다. 그러던 중 필독서인 이 책을 읽으며 많이 위로받고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무엇이 나에게 힘을 주고 무엇이 나를 위로하여 주었는지를 써보려 한다.

 

수학을 전공한 나는 무슨 글이든 이해하고 전체를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 글 속에 들어있는 각 문장들이 왜 쓰여졌을까? 전체에서 말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들은 잘 보지만 각 문장에서 쓴 이름이나 단어 등은 기억조차 못하고 무시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지금, 책을 다 읽고 시간이 지난 이즈음은 제자입니까 책의 전체 내용과 내게 무엇이 와 닿았는지만 남아있고 각각의 세부내용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아마 내 이야기 내 느낌뿐이지 진정으로 이 책에서 말하려는 것과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하나님이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또한 읽고나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이 변화되길 바라시고 계실까를 써 내려가겠다.

 

처음 이 책을 시작할 때는 나는 불편하였다. 글에서 주장하려고 하는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나와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의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의 하나님, 나의 말 나의 투정을 항상 들어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내가 사랑하고 감사한 하나님이었다. 내 자신이 누구의 자식이었고 또한 누구의 엄마로서, 부모님께서 내게 또한 내가 자식들에게 대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은 내게 해주신다고 믿고 나는 하나님께도 부모님께 드리는 마음 정도의 사랑을 주고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것이 내 중심으로 보는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기에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하였다.

그런데 내 기억에서 잊혀지려고 하였던 아니 새로운 관계가 되고 있었던 부모 자식의 관계가 새록새록 내 마음속에 떠오르고 나를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부모님께 내가 나이들어 어른이 된 이후에는 어렸을 때처럼 투정을 부리거나 아무 말이나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기억나기 시작하였다. 부모님께 존경의 말씀도 드려야 하였고 나도 힘이 생겼지만 부모님이 먼저라는 사실을 조심하며 행동으로 보여드려야 했었다. 상의하고 의논하고 무슨 일이든 같이 공유하지만 나보다 어른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조심하였던 것도 기억났다.

둘째, 나의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나는 그들을 무한히 사랑하고 또한 나는 뭐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 스스로 엄마라는 모습의 표본이라 생각하다가도 성인된 아이들의 행동이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행동으로 보이면 그 아이들이 어렸을 때와는 달리 감정적으로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지만 나는 섭섭한 마음이 들고 그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 된다는 것도 기억났다.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인지 내 중심으로 사는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항상 나의 깊숙한 곳을 아시는 분이라 생각하였고,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나의 중심에 놓고 의지하며 생활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 모든 생각이 나의 필요에 의한 내 중심적이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아가 내가 성장하여가면서 주님과의 관계도 바뀌어가야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관계만으로는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있어도 하나님이 섭섭할 수 있으므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도 주시는 말씀을 실천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느꼈다.

책의 중반부와 후반부는 내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내용이 전개되어 편안함을 느끼며 읽어나갔다. 읽어나가면서 ‘내게 주어진 주님이 원하는 일이 무엇일까?’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점차 나이 먹어가면서 버거워하고, 내 스스로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과 터치를 내가 잘 느끼고 따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제자입니까 이 책은 변화되어야 하는 나를 내가 인식해야 한다는 것과 내가 주어진 사명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되새겨 보게 하여 주었다. 또한 하나님은 이렇게 독후감을 쓰게 하여서 점점 확실하게 그 말씀을 되새김하게 해 주시고 있다.

 

하나님 오늘도 저를 잡아주시고 항상 그 자리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의 저로 거듭나게 하여주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들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자입니까 독후감

 

유미선

 

디사이플 훈련을 시작하면서 성경읽기,기도,교재숙제 등등 여러 과제가 있었지만 독후감을 쓰는 건 학교 졸업후 오래된 일이고 그만큼 생경한 일이어서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먼저 독후감을 쓰기에 앞서,돌쟁이 아가를 포함한 아이 셋과 일상을 살아내다보니 책 읽는 것 자체가 ‘안단테’가 아닌 ‘알레그로’ 내지는 ‘프레스토’ 수준의 몰아치기 독서였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음을 밝힌다.

 

책은 일단 마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간단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그 문장 문장이 함의하고 있는 주제는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만만하게 펼쳤던 책장이 읽으면 읽을수록 묵직한 부담감으로 엄습하기 시작했다.

  1. 새 포도주

첫째, 저자는 일단 성경을 읽는 그대로 보지 아니하고 ‘내가복음’으로 수정, 가감하는 나의 그릇된 말씀 편식성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성경읽기,기도 심지어 전도까지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내 중심의 신앙은 마치 귀를 틀어막고 “내가 듣고싶은 말만 듣고 행동할래요”라고 응석을 부리는 아가와 다름없음을 깨달았다.

 더 나아가 ‘사랑’을 다루는 챕터에선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했다. 생각한 것보다 큰 내면의 부담감과 저항을 보면서 내 속에 쓴뿌리가 이토록 깊은 것이고 굳은살처럼 딱딱하게 박혔음을 절감하며 답답해 했다. 또한 ‘사랑해보도록 노력해볼게요’가 아닌 ‘사랑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 앞에 현재의 불완전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시작하는 결단이 주님의 ‘사랑하라’라는 명령에 대한 그리스도의 제자(군사)다운 대답임을 알게 되었다.

 

둘째,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언어라는 제목으로 감사,찬양에 대해 다룬다.

일단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감사다. 또한 찬양은 음과 박자로 이루어진 단순한 조합이상으로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기도 내지는 대화가 깃들여 있어야 한다고 나름 이해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매일 같은 찬양을 부른다 할지라도 그것은 또한 매일 새로운 찬양이라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기도 역시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진정성있는 것이 되기 위해선 굳이 눈을 감고 영혼없이 박제된 듯한 기도문에 대해 재고해 봐야한다는 취지의 저자의 의견에 깊이 공감하기도 하였다.

  1. 새 부대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전도로 하나님을 만난 이후 교회에서의 각종 성경공부와 집회는 분명 나의 신앙성장에 큰 모멘텀이 되고 유익을 주었다.그러나 지금의 나를 냉정하게 평가하면 어린아이의 믿음-아니다. 어린아이의 믿음은 순수하기라도 하지…. -유아기적 믿음에서 결코 자라지 않는 ‘영적 피터팬’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디사이플 클래스 속에서 만난 열 두명의 자매들(제자들)로 이루어진 순(cell)은 저자가 책의 후반부에서 말하는 ‘역동적인 공동체’였으며 책을 통해 알게된 이론들을 바로바로 적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임상이며 성장의 그 시작이었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하고 싶다.

 

예전에 성경공부를 인도하시던 한 집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 ‘내 인생’이라는 백지수표를 드리는데 지금까지 몇 년간 주저하고 있다고…

마찬가지로 오늘도 주님의 제자삼음의 요청에 망설이는 내 자신을 본다. 하지만 이제는 지리한 침묵을 깨고, 용기 주시는 주님과 밀착하여 한 걸음 내딛고 싶은 미약한 소망도 더불어 생겼음에 감사하다.

 

주님이 오늘도 부르신다.

‘응답하라 디사이플 9기!!’   

 

 

제자 입니까

 

                                                                                                                    유선영

 

제자입니까를 읽고 독후감을 쓰라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독후감을 쓴지는 거진 20년이 되어가고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솔직히 제시간에 읽지도 못하고 핑계라고 대면 핑계라고 할수도 있지만 읽는 순간 잠이 쏟아지고 , 또 읽기 시작하면 막내가 울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는 많은 질문들이 저한테 떠올라 왔습니다. 진정 내가 구원을 받았나? 이책에서 말하기에는 구원은 다 필요없고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사랑, 형제 사랑,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셨듯이 나도 형제, 자매를 내몸처럼 사랑하는지? 솔직히 저는 그렇지 못합니다.맘에 내키지 않는 사람의 잘못들의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하는데 그러기 보다는 불평 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처음부터 읽었을 때 제가 생각했던 복음서가 달랐습니다. 어찌보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중심보다 내 중심이엇던것입니다. 예배도 내가 몸이 아프거나, 피곤하면 안나오고, 어쩌다 일찍 나오게 되면 자랑스러운 일이라도 한것처럼 자랑하고 당연히 일찍나와서 준비를 해야되는 일이 어느 순간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구원을 얻고 싶으면 내 모든 것을 드려야한다고 합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드리고 있는가? 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내 아들, 딸도 주님이 허락하시고 주신것이지만, 나는 내것으로 생각하고 속이 상하면 하나님께 물어보는것보다 세상에다가 더 자문을 구하고, 내뜻대로 정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돈만 하나님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 내 몸까지도 하나님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않됩니다. 또한  눈을 뜨고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합니다. 나는 여태껏 하나님의 언어를 그냥 생각도 않해보고 썻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말로만 하는게 아니고 진심으로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신앙 생활은 어떤지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잘 크고  있는지? 근데 잘 생각하면 아닙니다. 십년전 구원을 받았을때보다 오히려 요즘은 잘 넘어지고, 은혜를 감사히 받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 합니다. 과연 내가 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칠수 있을까? 그 아름다운 사랑을 전할수 있을까? 다른 제자로서 하나님 사랑을 알리기 보다는 그냥 주일날 예배드리는것 만으로도 기뻐하시겠지 라고 생각하는 내가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삶을 본받아서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과연 내가 내 스승의 삶을 본 받아서 살아갈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자 입니까?” 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직도 자신은 없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운 딸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 자신을 버리고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찬양 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제자입니까” 책의 독후감

 

이경숙

 

후안 카롤로스 목사님의 책은 몇권 읽어보았지만 이 “제자입니까”처럼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고 부끄러움과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는 그런 순간들이 참으로 많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부흥은 일반적으로 숫자의 증거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그것은 살이 쪄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때 다시금 요즘의 교회상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의 잠자는 의식을 깨우는 깊고도 심오한 통찰력을 일깨워주는 책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본인)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드리는 인간중심의 예배 - 주여 당신을 위하여 저의 가정, 남편, 고양이, 개에게 복을 내리시옵소서, 아멘 -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배가 아닌 부끄러운 예배를 드린 것에 새삼 부끄러웠다.

또한 구원은 복종이고 회개는 명령이지 권유가 아니라는 말씀에 가슴이 뜨끔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내 인생의 주권자는 나이었지만 그분을 만난 후로는 그분이 주권자가 되신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외에는 인간에게는 위대한 종이라는 표현을 써서는 않된다는 말씀이 있었다. 종은 언제나 “주인님, 제가 무엇을 하기 원하십니까?”로 물어야 하며 “주인님, 이것 저것을 하십시요.”하는 명령의 자세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대부분은 이런 면에서 과오를 저지른다. 또한 사랑은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증거이자 구원 받았는지 아닌지를 가리는 시금석이라는 말씀을 하신다.

따라서 자기 안에 사랑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 제 몫도 못한다는 뜻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가족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은 명령이고 또한 주님께 순종하기 시작하면 된다는 말씀/순종할 때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이라는 말씀이 다시금 새롭다.

하나님 나라의 언어는 찬양이고 흑암나라의 언어는 불평이라는 말씀에는 가슴이 뜨끔하다. 또한 모든 날씨를 주관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날씨의 변화조차도 감사해야 된다는 말씀에 감동을 받는다. 그러므로 불평불만은 사탄의 속삭임이고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초대교회는 제자들을 빨리, 그리고 잘 양육해 놓고 새로운 과업을 향해서 훌훌 떠나는 사람이 훌륭한 사역자인데 요즘의 교회는 은퇴목사라고 그 교회에 남아서 모든 권력과 통치력을 가지려는 일부 목사님을 지적하며 그런 것들이 교회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자도란, 삶 자체이기 때문에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말, 그 말씀이 너무나 새롭게 다가온다. 후일에 내 믿음이 변하고 퇴색될 때 다시 읽어 볼 귀한 책이다.

                                                          

 

                                                                제자 입니까                                                                                                  

                                                                                        이순민

 

이 책을 읽기 전 제자 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 한 첫 주, 아직 제자가 되기에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전까지 알아 온 것, 생각한 것을 모두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새 포도주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된다는 마태복음의 말씀 처럼 새 포도주인 복음을 넣는 부대인 우리는 낡은 생활 습관을 가진 예전의 내가 아닌 새롭게 태어난 나이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란 의미에선 교회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이전까지 인간 중심의 복음을 듣고, 인간 중심의 기도를 하고 있었다.  새롭게 태어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주님을 위한 기도를 해야하며,  나를 위한 복음,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는것, 나를 위해 간구하는 나 중심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전도도 잃어버린 영혼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제 5복음서로서  ‘나’를 중심으로 선택적인 계명 준수를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아니므로 버려야 한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고, 사나 죽으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주님의 것이다. 이 세상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잠깐 동안 이 모든 것들을 사용하도록 해 준 것일쁀  그리스도의 것이니  주인인 그리스도가 필요하다고 할때는 우리는 그것들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고, 구원은 명령이고 이에 대한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사단의 지배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지배 아래로 옮겨지는 구원은 명령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즉  하나님 나라로 옮겨지는 세례는 그 시점을 미루지 말고 복종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 뿐이고 우리는 그 무엇보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제자이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의 도전은 사랑이다. 그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닌, 사랑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구원의 증거이다. 은사와 예배도 제자이 사랑만이 그리스도의 생명이니 제자이기 위해서는 진짜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새 계명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형제를 사랑하라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죽은 사람처럼 살라고.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한 사랑을 하라고 하신다.

 

이 사랑은  삼위일체적인 사랑으로  성부가 성자에게, 성부가 성령에게 보이는 그 영원한 사랑을 의미하며 성숙한 사람을 위한 사랑으로서 불화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이다. 사랑 때문에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제자이기 위해서는 눈을 뜨고 새로운 말과 노래로 주님의 능하신 행동을 마음속에 그려보며 천국의 언어인 찬양을 해야 한다.  불평은 흑암의 언어일 뿐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곧 찬양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능한신 행동은 어디나 잇으나 다만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일뿐이다.

 

구원이라는 명령에 복종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주인이신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새로운 자아가 된 우리는 예수님 위주의 삶, 사랑 그 자체인 삶,  천국의 언어인 찬양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기도와 복종, 사랑과 찬양에 대하여 새롭게 익힌 새 포도주가 되었다면 이것을 새부대에 담아야한다. 새 부대인 교회는 brand new 만이 아닌 갓난 갓난의 상태가 아닌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다. 새 부대란 교회내에서 훈련받고 양육된 단순한 회원이 아닌 제자로 바로 선 사람들이 모인 곳을 의미한다. 

 

새 부대에 속한 제자는 삶자체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여주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다. 무엇보다 복종을 바탕으로 한 양육이가장 중요하다.

 

인습을 넘어서서 전통이 중요한 것이 아닌 하나님 만을 바라보는 교회를 이루는 것이 새 부대의 사명이다. 교회의 뼈이고 근육인 건강한 순 모임을 위하여 역할을 다하는 것 또한 새 부대에 필수요소이다.

 

제자가 되기 위하여 새로운 포도주를 새로운 부대에 담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 책에서는

아버지의 새 마음. 보혜사 곧 내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을 위해 일하고 행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마무리하고있다.

 

나는 제자가 되고 싶으나 너무나 제자가 되기에 부족한 나임을 절실히 깨닫고 제자의 길을 위해 필요한 훈련을 받고 나를 바꾸는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의 노력보다  성령님을 받아들이고 성령님이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주실때 이에 절대 복종하면서 행하는 삶을 살면 이것이 제자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성령 충만한 삶 이것만을 구하며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길 다짐해본다.

 

 

‘제자입니까’ 소감문

 

이은정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 이신걸까?  나는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으며 살고있는걸까?  라는 질문들이 내 삶에 들어왔다.  저자가 말한 ‘내가 복음서’는 나 중심의 종교를 잡고있는 내 현실을 보는것 같았다.  신앙이 아니었다.  멍에를 지는것, 대가를 치르는것이 여전히 나 중심에서, 내가 주님을 위해서 마치 희생하는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며 살고있는 내 자신을 보게되었다.

 

구원은 명령이고, 나는 종 이라면, 종 놈이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종의 신분에서 왜 나는 여전히 대가를 치르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일까?  이기심이었다.  저자가 4장에서 내가 지금 해야 할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살고, 자기 자신의 뜻을 행하는 흑암과 이기심의 나라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기심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것은 사랑으로만 가능하다.  종, 제자의 삶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산소, 사랑이다.  사랑이 명령이라는 것을 똑바로 기억하라는 저자의 선포가 내 마음을 두드린다.  나는 예수님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내 담을 쳐놓고 기다렸다.  내 성향을 유지하며 나의 삶의 구조에 예수님과 다른이들을 끼워 맞추려 했음을 보게 되었다. 

 

저자가 언급한 ‘내 작은 왕국’ 이라는 단어가 내내 맴돈다.  찔렸고, 아팠다.  가족 안에서, 관계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나는 내 생황, 내 상처, 내 방황, 내 가치관에 집중하며, 내 작은 왕국속에서 목이 뻣뻣한 종이었다.  감사한 것은 찬양이라는 하늘의 언어을 통해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기회를 주신다.  내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찬양할 것을 제대로 알고, 하늘의 언어를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지금은 내 작은 왕국을 무너뜨리고 기도 해야만 할 때이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받고도, 은혜를 받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곧 저주가 된다.  내 가정, 목장, 신앙 공동체를 다시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린다.  저자가 전하는 메세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듣기만 좋아하는, 마음과 영이 딱딱해져서 폐기되는, 눈물만 흘리고 막상 순종하지 못하는 무지함을 벗어나도록 성령님께 의지한다.  제자입니까.. 매 순간 하나님앞에서 내 자신에게 묻고, 담대히 답할 수 있는 질문이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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