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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자매님의< QT 나눔반> 소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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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mondulover
조회 3,518회 작성일 10-05-2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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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자매.jpg


이진원 자매님의 QT 나눔반 ( 이현주 자매님 인도 ) 소감문입니다.

QT나눔은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데 필요불가결이라  믿어 의심치 않네요.

여러분은 믿음의 동역자가  있으신가요?

자매님의 신앙 여정에 여러분들도 동참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QT 나눔반 소감문>


7남매의 장남이셨던 그리고 장손이셨던 나의 친정 아버지는 나의 기억 속에 친척들과 동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고 아직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걱정도 하십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가끔 지나가는 말로 하시는 말씀이 제 가슴 속에 남아 메아리치는 이유는  그 마음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똑같이 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말씀은 “ 내 마음을 너희들이 알기나 하냐? 내 마음 너희는 모른다”였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을 바라는 것이 아닌 그냥 그 사랑의 마음을 나누고 싶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QT말씀묵상나눔반에서 묵상한 말씀은 예레미야였습니다.

신앙의 연륜이 깊은 모태신앙이신 두 자매님들과 믿음과 말씀의 열정을 가지고 묵상반을 이끄셨던 자매님 그리고 늘  말씀에 갈급해 하시는 자매님의 믿음 속에서 저는 한 영혼 한 영혼을 만지시는 섬세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꼭 한 걸음씩만 앞서 가셨습니다.

너무 멀리 앞서 가셔서 중간에 우리가 주님을 놓칠까봐 염려하시고 뒤에 계시면 우리가 위험한

줄도 모르고 앞으로 달려갈까 봐 꼭 한 걸음씩만 앞서 가셨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에 주시는 그  무거운 메세지 안에서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우리들의 모습들을 발견하면 더욱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회복의 말씀을 읽을 때면 하나님의 한없는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깊이와 높음에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공의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분이셨습니다.

주님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쉬운 일이기도 하고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가방 속에 빨간 색의 성경책이 늘 있다는 것을 알고부터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그 뒤 몇년이 흐른 뒤에야 그 누군가의 기도로 나는 교회라는 곳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교회 친구들은 거의 모태 신앙인지라 교회에서 쓰는 말이나 행동들을 자연스럽게 했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그냥 나의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상상 속의 친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몇 년이 흐른 뒤에 저는 성경속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이라는 책이 참으로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구약은 과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지식으로만 탐닉하며 신약은 그냥 삶의

윤리적인 잣대로만 생각했고 그것이 나의 믿음을 깊게 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것으로, 찬양을 열심으로 한 것으로 뿌듯해 하며 거룩한 척 고개 숙이고 미간에 힘을 주고 기도도 했습니다.

교회에 다녀오면 힘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거룩한 것 같기도 했고 기쁨도 있었고 약간의 흥분도 있었습니다.

정말 나의 영은 가난하고 헐벗었는데도, 주님과 멀리 있으면서도 자기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늘 주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외적인 신앙생활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몇년이 흐른 뒤 하나님은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끄셨습니다.

처음 만난 하나님이 혼으로 만난 하나님이셨다면 두 번째 만난 하나님은 육적인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번에 정말 나를 강도 높게 흔들어 놓으신 하나님은 영적으로 만난 하나님이셨습니다 .

하나님은 역사기록으로만 남는 하나님도 아닌, 한 민족의 민족신도 아님을, 세상적인 삶을 바르게 살도록 가르치셨던 윤리, 도덕 선생님이 아님을, 저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자리에, 모든 자 한사람 한 사람과 함께 하시는,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성경구절 하나 하나 계속 생각나게 하시고 어떨 때는 단어 하나만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게 하셨습니다.

정말 종이에 쓰여진 글자가 3D영화에서처럼 입체적으로 다가오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건을 통해서, 일상 생활에서, 책을 통해, 설교말씀을 통해, 흥얼거리는 복음송에서, 아무생각없이 찾아서 들은 인터넷 설교말씀을 통해,

그냥 지나가면서 던진 식구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정말 하나님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끊임없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들었으면서도 나는 못들은 척하기도 하고  하라고 하시는 일 "저는 못해요"

하면서 겸손한 척 바쁜 척 자신을 합리화 하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말씀 묵상반을 통해 다른 자매님들 앞에서 나의 입으로 고백하게 하심으로 

나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믿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이해해서만 될 일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믿음이 예수님께서 죄인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흘리셨던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거라면 그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으로 또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매일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묵상반을 마치면서 한가지 나 자신에게 다짐을 합니다. “ 이제는 하나님을 개념으로 지식으로 더욱 많이 알고자 노력하지 말자. 그냥 매일 한 걸음 한 걸음씩 주님이 이끄시는대로 누리고 즐기고

주님이 함께 하심만으로 만족하고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제에 충실하자.

육이, 혼이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깨어 있자.

주님의 그 충만한 영으로 나의 영이 충만하여져서 혼과 육을 지배하도록 하자.


"주님,나의 의가 아닌 주님의 의로, 나의 열심이 아닌 주님의 열심으로 살길 원합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믿음을 서로 나누고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서로를 지켜줌은 정말 긴 믿음의 여정에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믿음의 친구들은 많지 않아도,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화자찬하며 한없이 높아지려고  했던 나를 붙잡아 현실로 도로 돌아오게 하고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으려 했던 나를 휘저어 다시 떠오르게 했던 나의 믿음의 친구들을 한명 한명 머리속에 그리며 그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정말 그들을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그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친구들을 주신 주님을 찬양하며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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