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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스 10기 래디컬을 읽고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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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민정
조회 414회 작성일 23-11-0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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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신앙서적을 좋아한다. 주님이 주는 위로가 있고 공감이 되는 글을 만나게 될때마다 따로 적어놓은 노트가 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 책의 3분의 1을 읽는동안 어느 한 구절도 공책에 적히지 못했다. 비어있는 노트는 나에게 패배감을 주기까지 한다. 종종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서평에 강하게 공감하며 실제로도 몇번을 쉬어가며 읽었던것 같다. 숙제가 아니라면 진작에 덮었을 책이지만 그 순간을 참고 넘겨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내가 느낀 불편함의 원인을 알게되었다. 

 책에서 종종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현대판 복음’ 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나는 아무래도 저자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대상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저자가 꼬집은 것처럼 나역시 사랑의 하나님,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에 치우신 신앙생활을 해왔음을 고백한다. 즐겨듣는 찬양만 봐도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시는 하나님을 편애(?)하는 취향을 숨길수가 없다. 홀로 영광받으소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으면서 내 보좌에서 내려오지 않는 자아를 마주하게 된다. 지난주 목사님께서는 설교말씀으로 내가 문을 열어주면 예수님은 나에게 오셔서 주인된 자리를 앉으신다고 하셨다. 어쩌면 나는 문은 열어드리되, 주인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주인님, 방은 이쪽, 제가 나오라고 한 시간에만 나오시고요. 주인으로 오신것은 환영하는데 제가 하던 루틴이 있어서 또 그쪽은 건드리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는 이상한 종이다. 

  예수님의 ‘나를 따르라’ 라는 말에는 삶은 뒤흔드는 급진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안락한 환경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을 완전히 포기할 것을 요구하셨다. 몇년전 성경을 처음 일독하며 마음속의 뜨거움이 더해갈수록 불편함 또한 더해갔던 것을 기억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 부자청년의 이야기.. 부모와 형제를 저버리고, 장례를 치르기 전에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 등 성령이 주는 찔림에 더없이 불편해하고 있을무렵 어떤 자매님이 ‘어쩌겠어요~ 우리는 인간이라 이렇게 연약한데,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니까요’ 라는 말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 이후에 그 자매님의 말을 여기저기 적용해가며 스스로를 위안해왔고 나의 연약함이, 나의 어쩔수 없는 죄된 모습이 주님앞에서 무기라도 된양 앞세우며 다녔다. 만약 그때 그 불편함을 주님앞에 올려놓고 더욱 씨름했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날카롭지 않았을까. 그 연약하고 죄된 모습앞에 무너지고 무릎꿇고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고 더 낮아졌다면 지금의 나는 적어도 이상하고 기괴한 종의 모습은 아니지 않을까. 

  그렇다. 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을 대표했다고 인정한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가지고 예배에 참석하며 성경공부까지 열심히 한다해도 영적인 사각지대는 분명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저자는 분명히 대답한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를 물을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할수 있을까? 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기를 원하는가? 스스로 반문해 보자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순간 세상에서는 많은 것을 잃을 수밖에 없다.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위험한 곳으로 가라 배신당하고 미움과 박해를 받으며’ 라는 말은 이제 막 내가 현대판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구나 라는 불편한 진실을 막 깨달은 나에게 큰 부담과 어려움으로 다가온다. 늘 그랬듯이 상대적으로 받아들일 만하고, 더 감당하기 쉽고, 편안해 보이는 전략들을 찾고 싶은 마음이 울컥 올라온다. 하지만 이것또한 주님앞에서 씨름해야할 마음임을 깨닫는다. 분명 그리스도께 철저하게 순종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어쩌면 위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호화유람선을 타고 순적하게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각오하고 수송선에 올라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가는 작업이다. 온전히 순종하다보면 그 모든것을 다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하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는 전폭적이고 최우선적이며 절대적인 헌신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 보상받게 될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포기한 것, 그 이상을 갚아주신다. 

 사람은 100년이 채 안되는 삶을 살아간다. 영원에 비하면 제로에 가까운 찰나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허상을 정신없이 쫓으며 살아간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안락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 영원한 존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너나없이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시간과 은사, 그리고 주님이 맡기신 복음의 청지기직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설명해야 할 것이다.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주님의 보좌 앞에서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을 지켜보며 그 마지막때를 위해 더 열심히 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게 될것이다. 

 래디컬은 또 다른 뜻은 ‘근본적인’ 이라고 한다. 홀로 고고한 신앙생활을 ‘선호’하는 내게 래디컬-급진적 신앙이란 것은 자리를 피하고 싶은 불편한 사상이 아닌 그리스도인에게 래디컬-근본적으로 마주해야할 문제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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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하님의 댓글

장정하 작성일

민정 자매님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호화 유람선이 아닌 수송선에 올라 거친 파도를 헤치며 나간다는 말이 마음에 많이 남네요~~.  100년이 채 안되는 삶이 아닌 영원한 삶을 위해서 지금도 레디컬이 아닌 레디컬 같은 삶을 사는 저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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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경원님의 댓글

진경원 작성일

민정자매님 말씀에 공감하며 다시한번 더 믿음생활에 대해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