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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멘 7기 온전한 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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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혜정
조회 213회 작성일 24-01-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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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 제목은 Absolute Surrender이며 온전한 순종, 항복, 굴복 등으로 번역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철저한 굴복 또는 항복’이라는 표현이 나에게 가장 깊이 다가온다.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가짜 복음, 싸구려 은혜라는 표현을 쉽게 접한다. 그만큼 주님의 말씀과 복음이 왜곡되어 사용되고 적용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반추할 수 있다. 1828년에 태어난 앤드류 머레이의 이 책이 2024년을 살고 있는 나에게 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는 이 성경이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이며, 바른 복음만이 사람을 살리는 변함없는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나에게 더욱 증거해준다.

 

저자는 믿는 우리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굴복 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고 강조한다.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나의 꿈을 이루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배우고 믿고 달려온 현대 시대를 사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굴복한다는 것은 즐겁지도 않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믿고 열심히 기도하며 우리의 믿음을 위해 쉼없이 달리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착각하기쉽다.

 

그렇게 쉼없이 달리다 보면 내가 열과 성으로 임하고 있는 사역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인지 돌아보지 못할 때가 많다. 신앙생활과 사역이 주님의 뜻을 위하고, 주님에 의해 이뤄지는 주님의 일하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면 오히려 분주한 사역에 치여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우선되어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사역이 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날 번아웃을 호소하며 모든 것을 멈추고 숨고 주저 앉아 주님과 관계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머레이가 강조하는 것이 바로 이 것이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내 신앙의 주인 되지 않고 주님의 주권아래 철저하게 굴복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할 때, 비로소 우리가 바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예수님이 바로 그 본보기이다. 그 분은 창조주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된 권리를 버리시고 자기를 비워 죄의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다. 죄인의 몸으로, 그것도 무력하고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더러운 구유에 눕혀지신 창조주 주님의 굴욕을 생각해 본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치욕과 수치를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찢겨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은 철저한 굴복 그 자체였다. 우리는 부활로 온 우주만물의 주인 되신 그 분의 능력을 사모하는 반면 그 분의 굴복을 사모하진 않는다. 말로는 내가 크리스챤(작은 예수)이라 고백하지만 내 삶에 굴복의 십자가 가치관이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방식, 세상의 지혜에 익숙하다는 핑계로 나에게 편안하고 익숙한 길에 느슨하게 서있는 모습으로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다.

 

과연 나는 내 삶에서 예수님의 이 철저한 굴복을 이룰 수 있는가? 질문에 저자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성령님의 능력으로 주님이 친히 그 일을 행하신다고 대답한다. 그는 우리가 부족하고 어리석고 약하고 악하지만  피조물이자 죄인의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죄라는 내 존재적 본질에 대한 탄식과 회개로 죄된 나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철저히 내어 맡길 때 주님이 받으시고 또 이루신다고 머레이는 확신하고 있다.

 

연약한 우리는 이 지속적인 회개와 굴복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저자는 완전하신 주님이 이 또한 책임지시고 이루신다고 우리를 응원한다. 피조물인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단번에 우리의 성화를 이룰 수 없다. 우리는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을 말씀으로 주님을 알아가며 내 속의 큰 죄 뿐만 아니라 티끌만한 작은 부분까지 굴복시켜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나의 의를 찾아 굴복시키는 순종을 올려드릴 때, 주님이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를 성화 시키시고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 우리가 집중할 것은 멀게만 느껴지는 길고 긴 레이스가 아니라 당장 오늘 하루이다. 하루에 수십 번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돌이키고 또 돌이킴으로 포도나무에 붙어있고자 하는 오늘 하루가 중요하다.

 

포도나무, 즉 주님이 공급하는 수액을 받아먹기 위해서는 매일 매순간 내 죄된 방식에서 돌이키는 순종을 해야 한다. 이것은 100% 주님이 하시지만 100% 나의 순종 또한 필요한 믿음이다. 나의 순종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수액이라는 주님이 차려주신 복을 받아 마시는 나의 반응이다. 내가 잘 받아 먹어서 내가 잘 순종하고 내가 신앙생활 잘 하고 내가 잘 믿는다는 착각이 바로 바리새인의 교만이라 할 수 있다. 그저 공급해주시는 수액을 받아먹기만 하는 나의 반응에 주님은 기뻐하시고, 키워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고, 이루시고, 복을 누리게 하신다. 아기가 먹고 싸기만 하는 반응에 부모가 기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내가 무엇을 자랑할 수 있을까? 나는 “겸손할 수 밖에” 없다. 자랑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게 상을 차려 주시는 그 분이 사랑이시므로 우리가 얻어 먹는 것은 사랑이라고 강조한 머레이의 포인트로 나를 점검해본다. 내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의 생각을 하는지? 사랑의 말을 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증거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따라 우리는 내가 주안에서 철저하게 굴복하며 사는 은혜의 굴복자인지, 내가 주인 되어 아둥바둥 살아가는 내 삶과 내 신앙의 주인인지 알 수 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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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Son님의 댓글

Kenneth Son 작성일

“나의 순종은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수액이라는 주님이 차려주신 복을 받아 마시는 나의 반응이다”

순종은 내 삶에 주님의 열매를 맺히는 복의 길입니다… 귀한 고백 감사합니다 승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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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님의 댓글

이은영 작성일

자매님의 고백이 너무도 은혜가 됩니다. 오늘도 우리 자신이
주인되지 않고 온전한 굴복과 순종을 통해
진정한 자유함을 누리길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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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님의 댓글

이수연 작성일

‘ 우리가 집중할 것은 멀게만 느껴지는 길고 긴 레이스가 아니라 당장 오늘 하루이다 ’ 에 정신이 번뜩 듭니다. 오늘하루부터 시작되는 작은 그 한방울도 안되는 물기들이 모여서 큰 바위에 길을 내는 것 처럼, 정말 하나님께서 오늘 이루시는 그 일들과 말씀에 집중하는 오늘 하루의 순종이 나를 변화시키실 것을 믿습니다. 매일 시작되는 새로운 오늘 하루를 주님께 드리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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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연님의 댓글

김경연 작성일

“아기가 먹고 싸기만 하는 반응에 부모는 기뻐한다” 자매님의 이 비유덕분에 가지로서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는 그 온전한 순종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가지된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단숨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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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oline Lee님의 댓글

Caroline Lee 작성일

완전하신 주님이 이루시고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순간 순간 사랑을 나눠주시는 자매님의 삶에 도전을 받습니다. 함께함이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