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진Apr 01.2019
이스라엘에서의 거룩한 첫날
요르단을 떠나는 아침이 밝았습니다.
아쉬운 발걸음이지만, 이스라엘로 떠나는 기쁜 마음에 아침을 서두릅니다.
국경을 차로 통과해야하는데 아무 문제없이 스무스하게 통과할수 있도록 많은 기도를 하였습니다.
툭히 난민들을 만나고 섬기고 왔다는 얘기는 이스라엘측에 하면 않되는 등, 우리는 긴장을 좀 하였지만,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갑니다.
국경으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오신 송선생님과 버스 안에서 감사와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 관문소의 모습입니다.
드디어 이스라엘 땅입니다. 다윗의 기가 보입니다.
오 주님~ 우리를 거룩한 땅에 들이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에 들어가자 마자 요단강 하류지역, 예수님이 침례 받으신 지역으로 달려갑니다.
놀랍게도 어마어마하게 큰 사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 큰 호수가 소금덩어리로 가득 차 있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70킬로가 다 되는 큰 호수입니다.
사해를 끼고 가는 길에 보이는 산에 새겨진 기이한 여유의 문양을 볼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봉왕 안티파스에게 '저 여우'라고 하셨는데, 이쪽을 바라보시고 하셨을까요?
숨가쁘게 달려간 요단강. 침례요한이 주님께 침례를 베풀고, 성령이 비둘기 처럼 주님의 머리 위에 내려오시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린 곳. 눈물이 절로 흐릅니다.
아래 사진은 이스라엘 요단강 쪽에서 요르단 쪽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오랫동안 점잠히 서서 기도하는 유대 형제님이십니다.
생각보다 요단강 주변이 많이 현대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더 좋았습니다.
많은 새누리의 지체들이 이 곳에서 처음으로 또는 재헌신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물은 차갑고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 심장은 뜨거웠습니다.
부픈 마음을 안고 우리는 사해 서쪽의 마사다로 향했습니다.
마사다는 유대인들에게 큰 자부심을 심어준 역사적인 장소로 천연요새입니다.
지금도 모든 학교의 아이들이 와서 필드트립을 하며 민족적인 자긍심을 심어주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유대광야에 우뚝 솟은 이 바위산은 하스몬 왕조에 의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기원전 35년에 헤롯대왕이 자기의 별장으로, 사실은 대피처로 개축하여서 사용하였습니다.
AD 70년에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해 무너지자 로마군애 항거하던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3년 가량을 이곳에서
항거하며 저향하였읍니다. 그들은 전부 960명이었고 마지막엔 여자 두 명과 아이 다섯명을 남기고 전원이 자살하여 로마에게 영원한 패배를
안겨주었읍니다.
걸어가는 코스도 있지만, 우리는 케이블카를 이용했습니다.
이 요새를 무너뜨리려고 로마군이 사방으로 캠프를 설치했던 장소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 팀원들.
한쪽 벽으로 내려다 보니 헤롯의 개인 목욕탕과 그 아래로 별장 발코니가 보입니다.
사진 안의 네모난 터가 그 당시 로마군이 캠프를 쳤던 장소입니다. 위에서 내려다 보았어요.
내부를 구경했는데, 헤롯왕이 목욕탕으로 들어가던 왕의 문입니다. 왕은 고개를 숙일수 없는데
키가 얼마나 되나 손목사님 기준으로 측정해보니, 목사님 Win!!
대중 사우나가 구들로 지어졌습니다.
우리에겐 흔한 기술이지만 외국인들은 이 장소에서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한다고 하네요.
헤롯시대에 이 기술은 어디서 들여왔고, 언제 웨스턴 문화에서 사라진 걸까요?
아시는 분, 맞추시면 500원!!!
여기에 불을 지폈죠.
이 요새에서 3년을 버티려면 물을 해결해야 했는데요, 어떻게 가능했는지 모형을 만들어 놓고 실제로 비가 온다는 과정 하에 물을 부어봤어요.
오른쪽애 물을 부어보니 파 놓은 물길을 따라서 흘러가 물길에 군데군데 파놓은 구멍안으로 물이 들어갑니다. 그 물탱크 안에 물이 차면
나귀등의 동물들과 내려가서 물을 싣고 올라오는 것이죠.
설치해 놓은 물탱크도 규모가 어마어마 했고, 식량창고 또한 컸는데, 모두가 자살한 당시 식량창고에는 대추말린것이 충분히 남아있어, 이들이 굶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데요.
참 대단한 의지이고 생존능력입니다.
우리는 잠깐 모여앉아 선생님이 읽어주시는 연설문을 들었습니다.
960명이 목숨을 포기하기 전, 그들의 리더가 (대제사장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결의문을 읽으며 로마의 노예가 되느니 죽음으로 자유를 택하자고 비장하게 선포했던 그 자리에 우리가 앉아있습니다.
이곳은 요새의 위에서 밑을 내려다 볼때 보이는 로마군이 쌓은 토성입니다.
여기가 워낙 모래인지라 쌓으면 훌러내리고 쌓으면 흘러내리지만, 유대인 노예들을 이용해서 마사다 요새를 함락시키기 위해
참 꾸준히도 쌓았답니다. 종종 바위로 만든 대포도 날리면서.
성벽을 기어 오르기 위한 토성이었던것이죠.
실제로 우리가 서 있는 곳까지,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 언덕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돌들이 대포에 쓰인 돌입니다.
치우지 않고 한쪽에 쌓아 놓은 이유는 올라오는 로마군, 사실 같은 동족 유대인 노예들에게 떨어
뜨려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같은 종족인지라 올라오는 자도, 그것을 막는 자도
너무나 괴로웠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요새 근처에 난데없이 떡 하니 자리잡은 현대식 시설은 지휘자 쥬빈메터가 일년에 한번씩 이곳
에 와서 음악회를 합니다. 그는 인도인이지만, 유대인들의 절대적인 후원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기에 이스라엘은 그에게 사랑하는 고향과도 같다고 합니다.
잠시 앉아서 선생님께 그 당시 역사와 사회 강의를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모두들 귀에 수신기 리시버를 꽂고 있어서 이동중이나 멀리서도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들을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마사다를 다 보고 내려와서 사해를 배경으로 (65킬로의 길이이니 차로 달려도 계속 보입니다)..... 참, 사해를 배경으로라니, 쓰면서도 아직 꿈 같습니다. 암튼 쿨하게 사해를 배경으로 무심한듯 한 장 찍었습니다.
버스에서 한장. 이 사진은 사실 의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전원이 깨어있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ㅎㅎ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쿰란입니다.
이곳은 가장 보수적 유대인 집단이었던 엣세네파 사람들이 하나님께 완전하고도 엄격한 헌신의 생활을 하기 위해 함께 모여 살았던 공동체를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철저하게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그것은 성경을 복사하는 일, 목욕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예배 드리는 동시에 경건한 수도원적 생활을 계속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들 공동체 안에 침례요한이 속해 있었다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도 로마군이 성큼성큼 다가오자, 그들은 필사본 해 두었던 말씀 두루마리들을 모두 동굴속에 감추어 둔채 사라져 버렸습니다.
로마군에게 전원 죽음을 당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1947년에 양을 잃어버린 양을 찾던 한 목동에 의하여 한 동굴안 항아리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 고대 사본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발견한 사본과 성경주석은 4만여개에 이르며, 쿰란 공동체의 생활을 기록해 놓은 문서들도 많이 발견했습니다.
아래 보이는 동굴이 제 4동굴입니다. 여기서 가장 많은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동굴안에 있었던 항아리는 물을 담던 물 항아리였고, 쿰란 공동체 사람들은 이곳에 사본들을 보관하고 뚜껑을 닫았습니다.
혹여나 잃어버린 양이 이 동굴에 있을까봐 돌을 던져본 어린 목자에게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나면서 어린 목자가 동굴에 올라와보고
사본들이 발견된 것이지요.
그들이 필사하던 양피지와 그 모형입니다.
이 사본이 발견됨으로서 그 즈음에 구전되어 기록된 성경은 시간이 흐를수록 부정확할수 밖에 없다는, 정경의 신뢰에 대해 부정정인 학계의 발표를 뒤집을수 있었던건, 발견된 사해 쿰란 사본은 그 전에 존재하던 성경 정경의 내용과 99퍼센트 이상 일치하며, 다른 부분도 또한 내용과는 상관없는 부분, 즉 전치사 같은 부분만 일정부분 틀렸던것이죠.
초록색 형광 불빛이 있는 곳에 놓여진 옷은 공동체 일원이 평생 한벌로 만족하며 살았다는 옷입니다. 그들의 검소함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목욕탕인데, 아침과 저녁, 그리고 말씀을 필사하다가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멈추고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와서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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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청년들 신났습니다. (사실 품위 문제로 사진을 올리지 않지만 우리 모두 신났습니다. 꺅꺅 소리지르고..)
사진으로 얼핏 보면 튜브를 타고 떠있는것 같지만, 그냥 둥둥 떠있는 것입니다.
길이가 65 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큰 호수가 소금덩어리라니... 믿어지지 않지만, 아무튼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사해의 위엄은 저렇게 떠 있다가, 일어서려고 발로 물속 땅을 짚으려고 하면, 초집중해야지, 우습게 봤다간 다리가 들어가질 않아서 버둥거리게 되고, 그러다 물이 눈에라도 튀는 날이면, 장님 아닌 장님이 됩니다.
물속에서 쥐나는 것보다 더 무섭다는 사해 물! 무서우시면 물속 바닥의 사해 머드라도 경험해 보시러 함 가보시기 추천합니다.
피부에 그렇게 좋다니.....
여기는 여리고 입니다.
구약에서 모두 잘 아시는 여호수아의 정복전쟁, 여리고.
신약에서 삭케오가 살던곳, 눈먼자를 보게하신 곳,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까지... 여리고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예수님의 침례 후, 사탄이 데려가서 예수님을 세우고 시험했다는 시험 산입니다.
그 당시 여리고는 아주 발전하고 부유해서, 안토니우스에게 예루살렘을 달라고 요청한 클레오파트라에게 그가 대신 여리고를 주자 클레오파트라가 아주아주 기뻐했다는 물질이 풍부하고 꽤 번영한 도시였답니다.
사탄이 그래서 이 산 꼭대기에 데려가서 풍요로운 여리고를 보여 주었을까요?
여리고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돌무화과 나무 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뽕나무입니다.
여리고는 삭케오가 살았고, 바로 이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이 마을 사람
들은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거둬지는 세금이 어마어마한데, 그는 그냥 세리도 아닌
세리장이었으니, 그의 재산은 수억대! 여리고 재벌이었던 것이죠.
우리가 묵는 숙소가 있는 곳입니다.
갈릴리 바다 서쪽, 가버나움과 디베랴의 중간에 위치! 숙소 뜰로 나가보면 갈릴리 바다가 보입니다.
이 땅에서 유일하게 에수님이 사셨던 그 때의 모습 그대로의 위치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갈릴리
호수랍니다. 신기방기, 갈릴리 바다 옆에서 잠을 자다니! 이 무슨 하나님의 은혜인지요.
저녁식사후 예배에서 그룹별로 나눔이 있습니다.
17세부터 77세까지가 나이와 상관없이 모여앉아, 공동체 식구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자연스럽게 삶과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청년들에게는 복이요, 연세가 높으신 분들에게는 다음 세대를 이해할수 있는, 주님이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일지를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주시는데, 너무 늦게 올려 죄송합니다. (주일풍경 기자 형제님의 마음을 알 듯)
어젯밤에 이곳 인터넷이 어찌나 느린지, 사진들을 업로드 하다가 졸음이 승리하는 바람에....
죄송한 마음에 마음에 묵상하시며 생각해보실 이야기 하나 해드립니다.
유대인들이 우리 크리스쳔들을 진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 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행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의 무게를 쉽게 생각하거나, 심지어 쉽게 잊어버리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수 없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가진 신관 (신을 대한는 관점) 으로서는 허용 할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이 크리스쳔을 한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오랜시간 생각해 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카야로 승주찬! 을 믿으며 내일 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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