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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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37회 작성일 18-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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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과 막 감옥에서 나온 한 남자가 포옹하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밑에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두 딸을 살해한 살인범을 용서한 엄마!”
2002년 5월 어느날 에릭 스몰리지는 술을 마신뒤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게 되었고 그 사고로 갓 20살이 된 메건과 리사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일로 그 딸들의 엄마는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습니다. 법원은 에릭의 음주운전 사고가 죄질이 무겁다고 판단해 징역22년을 선고했습니다. 판결이 내려지던 날 두 딸의 엄마는 에릭을 향해 “ 너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감옥에서 썩길 바란다”며 큰 분노를 보였습니다. 그러던 두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은 11년이 지난 후
였습니다. 두 딸을 죽인 에릭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던 두딸의 엄마는 에릭을 법정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 그를 따뜻하게 안아주었습니다. 11년만에 용기를 낸 진심어린 용서였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게된 계기는 에릭의 손 편지였습니다. 감옥에서 자신이 얼마나 한 가정을 아프게 했는지,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를 그의 마음을 담아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용서를 구하는 손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그 편지를 읽은 두 딸의 엄마는 자신보다 죄로 인해 더 괴로와 하는 에릭에 모습에 용서를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용서를 결심한 여성은 그 즉시 법원으로 달려가 에릭의 죄를 감형시켜달라 청하며
”오랫동안 에릭을 증오하며 잠을 설쳤고, 그가 평생 감옥에서 나오지 않길 바랐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미워하면 미워할 수록 내 마음에 증오밖에 남지 않더라”며 그를 용서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그리고 법정에서 그를 진심으로 용서하며 포옹해준 것이었습니다.
용서는 말처럼 분명 쉽지않습니다. 특히 너무도 큰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방을 위한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두 딸의 엄마처럼 용서를 하지 않는 사람 또한 미움으로 인해 죽어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자신의 삶에서 그를 밀어냅니다. 그러나 밀어내면 밀어낼 수록 우리는 그 사람을 밀어낸 바로 그 공간에 증오와 분노를 심게됩니다. 그래서 미움은 상대방보다 나를 더 상하게하는 일이 됩니다.
용서라는 말의 헬라어가 “신호로”라는 말입니다. 신호로의 “신”은 함께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호로”라는 단어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용서는 공간에 함께 존재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의 공간에 그를 허락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공간에 내가 함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만의 공간에서 미움으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있습니다. 힘들고 아프지만 나의 공간을 열어 다른 이를 나의 삶의 공간에 함께 거하게 하는 우리가 되어질 때, 나의 삶이 더 더욱 풍성해 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그의 삶에 공간에 함께 있게 하셨듯이, 우리도 서로를 용서하며 함께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신호로 합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18장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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