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 담임 목사 칼럼

본문 바로가기
close
menu
Live

담임 목사 칼럼

우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서아름
조회 1,494회 작성일 21-09-19 06:40

본문

2015년에 미국은 가정의 정의를 바꾸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로 이루어졌던 가정의 정의를 한 사람과 한 사람의 결합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가정의 모습과 개념을 인간은 법을 이용해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청교도의 나라,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나라, 미국에서 벌어진 이 일은 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합헌 판결이 내리자마자 미국의 회사들은 무지개색을 자사의 로고나 광고에 넣기 바빴습니다. 비행사들은 기내 영상의 바탕을 무지개색으로 바꾸었고, KFC는 할아버지 안경에 무지개를 넣어 신개념의 가족을 환영했습니다. 세상은 무지갯빛의 영역을 내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현실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성경을 신뢰하는 크리스천으로서 세상에 영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어졌습니다. 팬데믹을 지나며 한국에서는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밝히기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파이 크리스천”이 많아졌답니다.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절대 밝히기를 원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이….


마태복음 5장에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은 맛을 잃어가고 빛은 그 밝기를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깝지만 이 세상에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중세의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은 마르틴 루터와 같은 한 사람을 일으켜 세상에서 빛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들을 통해 변화를 시작하고 진행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영향력을 미치십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놀라운 찬양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찬양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 이방신을 믿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의 입을 통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단 3장28절


이 놀라운 역사는 하나님을 믿는 단 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라 불리는 사드락, 메삭 그리고 아벳느고는 북 이스라엘이 BC 721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 당한 후, 약 100년 후 남 유다가 BC 588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했을 때 잡혀온 포로들로서 나라를 잃은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귀하게 보아 그들로 그 나라의 높은 자리에까지 오르게 하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힘으로 왕을 변화시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그 높은 자리를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은 다니엘과 세 친구를 통해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보이셨습니다. 놀라운 영향력을 세상에 나타내신 것입니다.


왕의 신상 앞에 절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오히려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 3장18절


그들은 멸망한 나라의 백성이며, 이방신이 가득찬 나라에 잡혀온 자로서 매우 미약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해서 선한 영향력을 행하셨다면 동일한 하나님은 오늘날 나와 성도님을 통하여 동일한 일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오늘 이 글을 통해 한 가지만 보기를 원합니다. 바로 “우리” 라는 단어입니다. 위의 고백에서 이들은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가’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합니다.


사람들에게 ‘우리’라는 개념은 꽤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함께하는 사람에게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닮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가 될 때 혼자서 하는 일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세 친구는 바벨론이라는 이방 세상, 다신교의 나라, 그리고 왕궁이라는 정치 세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주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뿐입니다. 그 세상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 즉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친구와 함께하면 나의 믿음이 배가됩니다.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의 연합은 어떠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 13장20절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있을 때, 이 땅에서 예수의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내가 “너”의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과 “당신의 우리”가 걷는 길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길 소망합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