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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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35회 작성일 13-02-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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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ette Baek
"Homeless people"..., 과연 그들이 집만 없는 사람들일까?
그들을 그렇게 부르는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을까?
20여 년 전 미국에서 소위 말하는 나의 가방 끈을 처음 푼 곳은 로스앤젤레스의 산타모니카였다.
고른 잔숨을 내쉬듯 잔잔한 태평양의 광활한 수면이 태양빛에 반사되어 황홀한 은빛 춤을 추어내는 그런 곳이었다.
온기가 훈훈히 느껴지는 촉촉한 바다 바람이 은막 앞에 일렬로 심어진 장성한 야자수들의 키 큰 잎줄기들을 살랑살랑 흔드는 그런 곳.
그러나 이 풍광 좋은 그림에 끼어 나의 주의를 단박에 끄는 사람들이 있었다.
홈리스 피플이라 불리는 그들은 거지라기보다는 오히려 보헤미안의 집시들 같아보였다.
넉넉한 야자수 잎과 기둥을 캐노피 삼아 곱게 다듬어진 해변도로 옆 잔디 위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평화로이 자고 있는 모습, 저녁이 되면 배낭을 메고 어디론가 터덜터덜 걸어가는 여유마저 느껴지는 그들의 뒷모습...,
한국의 지하도나 육교 위에서 구걸을 하던 사람들과는 사뭇 달랐다.
얼마 안 있어 나는 그들 중 꽤 많은 사람들이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의 작은 정부 구현으로 정부산하 정신보호소가 폐쇄되자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오갈데 없어진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나의 산타모니카 그림의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어버렸다.
몇 년이 지났을까? 여느때 처럼 밝고 분주한 그 거리에서 나는 그만 영문 모를 공격을 당하고 만다.
저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홈리스 남자가 나를 스쳐가면서 그의 팔꿈치로 내 귀를 후리치며 달아나 버린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통증이 몰아쳐 내렸다.
다행히 큰 손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의 상태를 확인하는 창피한 소동을 참아내야만 했다.
그 때부터 내 그림의 자연스런 일부였던 그들은 경계의 대상으로 변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경계심만으로는 정신착란을 앓고 있었던 그들의 무의식적인 공격에 완벽히 대비할 수 없었음을 깨달은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ATM에서 돈을 찾고 있던 나의 등을 지나가던 홈리스가 있는 힘을 다해 그의 손으로 내려친 것이다.
내 뒤에서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미처 손을 쓸 사이도 없이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이번에는 내 몸 윗부분을 숨막히게 관통하고 울려대는 고통을 참아내야만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그들은 내 그림 안에서 흩뿌려져 간간히 보이는 일점 경계의 대상이었을 뿐 커다랗게 검은 구름을 몰고 오는 공포의 대상은 아니었다, 적어도 또 다른 일이 있기까지는...
세 번째 사건은 LA의 다운타운에서 일어났다.
주말이면 도시의 공동화 현상으로 썰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러운 토요일 저녁 즈음 일방통행이 많은 그곳에서 나는 돌아올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더 낯설고 이상한 방향으로 운전을 하고 있다고 느껴져 다른 쪽으로 방향을 튼 순간, 그곳에는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어마어마한 수의 기괴한 무리의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저녁이 되면 일정한 곳으로 운집하는 홈리스 집단이었다.
아니, 집단이라기 보다는 수 블럭의 도로를 단숨에 에워차 점령한 공포의 물결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거뭇하게 보이는 그들의 물결이 저만치부터 내 차 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오는 것인가, 내 차를 깨어 부수고 나를 해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앞 방향으로 운전을 계속하다 저들이 차를 피하지 않으면 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차를 멈추면 당장 달려 드는 것은 아닌지...,'
찰나 동안 수 많은 상상과 생각이 공포감과 맞물려 나의 심장을 겉잡을 수 없이 요동치게 만들며 혼미함 속으로 나를 몰아가고 있었다.
무서웠다.
공포와 짓싸우고 있을 때 내 차 오른쪽에서 내게 힘이 되는 무언가가 있음이 느껴졌다.
나와 똑같이 무서움의 포로가 되어 달팽이 걸음 운전을 하고 있는 내 또래의 백인 여자였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우리는 이내 한마음이 되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고맙게도 인해바다를 이루었던 그들은 물결이 갈라지듯 우리 차를 피해 주었다.
그곳을 무사히 빠져 나온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하게 될 때까지 그 공포의 검은 구름을 내 그림에서 애써 지워내었다. 약하고 병들고 가엾은 그들의 실상이 내가 겪은 몇 번의 트라마로 왜곡되고 여과되어져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의 영에 반응하려는 내 영혼의 울림을 억지로 누르며 삮여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소유한 영혼의 본질은 나쁜 기억 따위는 능히 극복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는 성향이 있는지,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다시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 달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보았던 그 사람, 한 홈리스의 모습은 나의 뇌리와 가슴에 박혀 지금 이 순간에도 절절한 아픔을 느끼게 한다.
그에게는 영혼이 더 이상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이전에 나를 해했던 사람들은 최소한 생명력이 느껴졌었는데... 그는 죽은 듯 누워 있었다.
아니, 이미 죽었는지도 모른다.
추위를 덜기 위함이었는지 맨홀 옆 독한 연기가 모락모락 나오는 곳에 꼿꼿이 누워 있었다.
신발을 왜 가지런히 벗어 옆에 두었을까?
드러난 저 지저분한 발이 걸어왔을 그의 인생의 험난한 여정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을텐데, 그 분주한 마켓 스트리트에서 그를 거들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피식거리며 조롱하듯 웃고 가는 사람은 있었던 것 같다.
모두들 나처럼 홈리스에 대해 트라마가 있었던걸까?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한 육신의 처절한 삶의 나락 끝 앞에서도 저토록 냉담하게 만든 것일까?
나는 그 장소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갔다왔다를 반복하였다.
하지만 그를 흔들어 생사여부를 확인할 용기도, 함께 도와줄 사람을 찾아 외칠 용기도 없었다.
거리를 지나는 무수한 사람들의 절대적인 무관심의 집단적인 암묵적 힘에 절로 눌리고 만 것이다.
결국 나는 그를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 기도를 한 채 그 자리를 뜨고 말았다.
부끄러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 저버린 것 같아 아직도 마음이 무겁다.
그리고 진정 영혼이 없는 자는 홈리스 그 사람이 아니라 그렇게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는 마음의 떨림이 없는 우리들이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날 이후 더한 추위가 몰려왔었는데 샌프란시스코의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살아 있기를 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찢어질대로 찢긴 영혼에도 함께 하심을 아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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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송지연님의 댓글
송지연 작성일
자매님, 너무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분들은 절실하게 복음이 필요한 가깝고도 먼 우리의 이웃인것 같아요...
약 8년전쯤에 일주일간 청소년아이들과 YWAM 샌프란시스코 도시사역에 참여한 적이 있어서
홈리스 사람들을 가까이 경험할 기회가 있었지요.
이번 여름, 우리교회 Youth 단기선교로, 제가 갔던것과 비슷하게 샌프란 도시사역을 하러 가게되어요.
아이들에게 참 좋은 사역과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분들의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갈급함을 주님께서 채워주시도록 함께 기도해요...

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우리 교회근처에는 홈리스분들이 없으나, downtown san jose, downtown san francisco 에 가면 참 많습니다.
그 분들을 지나칠때마다 저들의 부모님이 계시다면, 그리고 그분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생각이 들고, 이분들이 태어났을때는 기뻐하는 부모님이 계셨겠지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에게 오늘도 일용할 양식과 이 추운날 따스하게 잘 수 있는 베드룸이 주어진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것을 늘 절실히 깨닫습니다.
언젠가 shelter 에서 65세쯤 된 /homeless person 과 담소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60년대 미군사병으로 있었고 베트남 전쟁에도 다녀왔다합니다.
그때 한국에서 거문고를 사가지고 미국으로 가지고 와서 여자친구에게 선물준적이 있다며 과거의 회상에 깊이 잠기었습니다.
이분들에게 교회적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될 일이 있는지 가끔 생각에 잠겨봅니다.
일년에 한두번 방문하여 위문하는 이벤트성 일말고, 정말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는 우리일까
무력한 생각이 듭니다만,
무언가 맞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자매님의 글에, 늘 그럿듯이, 많은 생각을 담아내어 가지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