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속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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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41회 작성일 12-11-20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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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6. 25 를 거쳐 오신 나의 친정 아버지는 우리 남매가 아프거나 좀 용감하지 못한 모습을 보면 항상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차며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이 자신의 활약상을 말씀하곤 하셨다.
겨우 초등 학교 아이의 몸으로 적들의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등에 자신의 몸보다도 큰 짐을 지고 피난길에 나서 가족들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나는 어린 마음에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땐 아버지가 참으로 크고 강해 보였다.
세월이 지나고 우리 들이 철이 들어 갈수록 아버지의 이야기는 다른 새로운 사실이 첨부되기도 하고, 다소 앞뒤가 안맞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사실적 시대 상황과 약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절반의 논픽션 TV 사극을 보는 느낌으로 아버지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
잘 알려진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들의 이야기는 1 위가 군대 이야기, 2 위가 축구 이야기, 3 위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남편도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침이 튀어가며 끝없이 자신이 군대에 있던 동안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처음 연애하던 시절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여자들이 알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국민의 한사람으로써의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다한 대한 민국 군인에 대한 감사와 존경심과 더불어 그 모든 혹독한 훈련과 고난을 이겨낸 남편이 듬직하고 남자답고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남편에 대한 나의 눈에 콩깍지가 떨어져 나감과 함께 똑같은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이 달라질때 마다 무한 반복하며 자신의 경험에 남들에게서 들은 이야기 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허풍과 창작을 넘나드는 군대 이야기에 왜 여자들이 남자의 군대 이야기를 싫어하는지 나는 진심으로 이해를 하게 되었다.
20 kg 에 육박하는 무기랑 비상 식량을 다 짊어진 채 완전 군장을 하고 50 km 행군을 하며 군화 속의 발이 동상과 물집이 생겨 자신이 그 물집을 터트려 임시 수술을 했다는 둥, 사격 훈련 중에 수백 개의 권총 속에 총알을 장전하다 보니 손가락에 피멍이 들었다는 둥, 좁은 방에서 옆으로 줄 맞춰 칼잠을 자야 했던 이야기, 혹한기 훈련 당시 영하 20 도의 한겨울에 언 땅을 파고 그 속에서 맨 몸으로 잠을 잤다는 둥, 상사로 부터 얻어 맞은 이야기, (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국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마구 나오는데 특히 이 대목에만 오면 남편은 욕쟁이 아저씨가 된다. )
배가 고파 철모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 훈련 도중 갑자기 대장 운동이 일어나 새하얗게 쌓인 눈위에 영역을 표시했더니 곧 돌덩이 처럼 얼더라는 이야기에서는 허풍이 극에 다를 정도였다.
거기에 대한 민국 현역 병장으로 제대한 나의 막내 동생 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누가 누가 군대에서 더 고생했는가를 주제로 서로 질세라 입에 침이 튀어가며 서로 열변을 토했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나의 이모부라도 가세하는 날이면 그 날은 전쟁 영화 한 편을 찍고 만다.
평범하게 살아온 남자들에게 다시 가라면 가기 싫은 그 시절을 그토록 되세기며 훈장 하나 단 것 처럼 느끼게 하고 평생을 자랑삼아 이야기하도록 만드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힘들고 고통스럽던 그 시절이 많은 인내력과 막중한 책임 의식과 에너지를 필요로 할 만큼 가혹하긴 하지만, 그 시절을 지나고 온 지금 그 시간을 거름 삼아 분명 더 성숙해 졌음을 믿기 때문이 아닐까?
이물질이 주는 시련과 고통 가운데 오랜 시간 저항과 극복이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아름다운 진주가 탄생하듯 오늘의 시련과 상처는 곧 미래의 영롱한 진주를 만드는 필수 도구이리라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과 시련의 뜻은 지금 다 알 수 없지만 언젠가 이 시련의 끝은 훈장과 영웅담이 되어 빵빵 터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댓글목록

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잘읽었습니다.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피곤을 풀어주는 글요.
시련의 뜻으로 마무리해주신 글에 맞물리는 기사가 있어서 소개합니다 (링크 클릭).
http://www.ilovemorning.com/blog/?p=6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