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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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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지연
조회 2,484회 작성일 12-12-1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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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건너 그리움만 쌓이던 내 부모님을 방문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움이 절정에 닿을 무렵이면 한번씩 방문하여 내 혈육을 확인하는 일만큼 또다른 나의 정체성을 마주 대하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혈육 상봉의 기쁨도 잠시 비행기 여독이 풀리자 마자 엄마 집에서  항상 내가 하는 일이 있다.
엄마의 냉장고 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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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집에서 얻어온 각종 떡 덩어리며 대추며 다진 마늘, 각종 건강 식품, 고기 덩어리, 마른 버섯에 마른 오징어, 일년 치 먹을 태양초 고주가루, 버리기 아깝다고 넣어둔 찬밥 덩어리 까지 봉다리 봉다리 가득 자리 차지 하고 있는 냉장고를 열고 그동안 참고 참았던 딸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주로 여름에 한국을 방문 하곤 하는데 작년치 추석 송편이 나올때도 있다.
돌덩어리 처럼 단단하게 얼린 이 것들이 무게 중심을 흐뜨리며 떨어지는 날엔 발등을 내리 찍어 억 소리 못내고 피멍들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냉장고 문을 여는데도 새색시 시집가듯이 조심 조심 열어야 한다.

 

먹는 것을 버리는 행위를 죄악으로 여겨온  내 부모님 세대들은 일단 먹고 남은 것을 냉동실 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통하여 나마 보관하려 하는 습관 탓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후 사정 이유 불문 일단 냉동실에 넣고 본다.
덕분에 내 엄마 ㄱ 여사의 냉장고 2 대, 김치 냉장고 2 대는 여백의 미를 잃은채 항상 무언가로 꽉꽉 빈틈없이 차있다.
하지만 ㄱ 여사님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른다.
“ 이건 또 뭐야? “ 라고 묻는 내 질문에 엄마의 대답은 항상 “ 몰라. 열어봐 “ 이니까…


딸이 오면 항상 잔소리 풀어내며 하는 일이라 버릴 것을 미리 좀 버렸다고 하시지만,  그 안에 뉘 집 잔치 집에서 가져 온지도 가물 가물한 묵은 떡 덩어리며 얼린 우거지, 먹다 남은 아이스크림 등등 다시 사용하기에도 꺼름직한 식품들을 싹 정리하는 나를 보면서 제일 좋아 하는 사람은 같이 사는 ㄱ 여사의 남편 나의 아버지이다.
출퇴근 시간대에 서울 지하철 2 호선에 사람들 미어터지듯 꽉찬  냉장고를 보면서도 아내가 무서워 손도 못대보던 아버지는 막힌 동 서독 베를린 장벽이  터지듯이 기뻐하신다.


물자가 귀한 시대에 태어나 근검 절약이 몸에 배인 어르신들은 아무거나 잘 내다버리는 사람들을 죄인시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10 년전에 먹고 남은 무엇인지도 모를 잔반이 정체성을 잃은채, 이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며 ㄱ 여사님 냉동실에서 발견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묵은 체증을 싹 비우고야 다시 쌓을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비워진 공간은 말해준다.

버린다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긴 하다.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언젠가는 다시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믿음과 미련이 감당도 못하면서 우리의 공간을 막고 있는 잡동사니들을 끼고 살게 만든다.


채움을 위한 비움이란 단순한 진리를 채우기에 급급한 나머지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 인생들은 아닐까?
버릴 것을 제때 버린다는 것은  결코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의 창조라는 사실을 내 마음에도 적용해본다.

한 해도 저물어가는 지금, 감당도 못하면서도 아깝다는 이유로 끼고 살던 필요없는 물건들을 싹 쓸어내며 내 마음의 욕심 시기 미움 다툼 질투 교만 마음의 때까지 청소해 볼까나?
꽃을 버려야 열매가 찾아오듯, 내 마음 한구석 자리 차지 하고 앉아 심사가 불편하면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하고 있는 이것들을 싹 쓸어내고 그 빈 자리를  성령의 9 가지 열매로  빈틈없이 채우련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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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bby님의 댓글

sabby 작성일

글 쓰신 이가 뉘신지요? 2주째 짬만 나면 미루어 오던 "버림의 미학"에 열중인 사람 중 하나입니다.


버릴려고 맘먹고 덤비니...버릴것이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참~이상케도 많이 가져야 행복하고 뿌듯할것 같은데...버리고 또 버리고 나누어 주고 없애고...


빈공간이 생겨야 비로소 신기한 희열 같은게 느껴집니다... 그게 어디 물건 뿐이 겠습니까? 글쓰신 이의 맘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매주, 매년 기도 제목으로 올려지며 맘속 다락방 구석에 박아두었던 궅어진 떡덩이들 가~차없이 내버리고...


새해에는 그 빈 공간에 주님 기뻐 하시는 좋은 것들로 채워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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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일본 여류작가 소노 아야꼬씨는 그의 글에서 버림의 미학을 실천한 그 어머니를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이 세상을 마치 소풍나왔다 돌아갈때는 그 주변에 흩어진 휴지나 쓰레기를 깨끗이 정리하고 떠나는 사람같이 하였답니다.


몇년에 걸쳐서 자신의 소유했던 모든 물건은 이웃에게 나눠주거나 버렸고, 


자신을 기억하게 만드는 물건들은  (사진, 편지 등등의 유물)은  모두  조용히 태워버렸다합니다.


그 모두가 후손에게 부질없고 부담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셨다는군요.


돌아가실때는 자신이 살고있던 조그만 집을 시정부에 기증하여 부수워 어린이 놀이터로 만들었다합니다.


그 어머니는 사진한 장 안 남기시고 가셨다합니다.  그분의 추억만 남기고...




죽음이란 자기의 책상설합을 남이 열어 보는 것이라고 이재철 목사님이 그러시더군요.


그래서 버림의 미학은 좋은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작가님. ... 누구신지 모르지만. msn040.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