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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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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지연
조회 3,051회 작성일 11-05-12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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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또 멀쩡한 죄없는 남비 하나를 떠나 보냈습니다.
김밥이나 몇 줄 말아 먹고 저녁을 때우려고 시금치를 데칠 물을 스토브에 올려 놓았다가
그 물이 다 졸고 남비가 눌고 이상한 냄새가 나도록 까맣게 잊고는
이층에 올라와 컴퓨터 켜고 메일도 체크하고 교회 웹사이트에도 들어와 보고
이리 저리 뉴스도 다보도록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행히 그냥 맹물을 끓이던 중이라 그다지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참을 빈 남비를 가열한 터라 남비는 못쓰게 되었네요.
내가 벌려 놓은 일은 까맣게 잊고 이상한 타는 냄새같은 것이  희미하게 나길래
누구네집 바베큐 해먹나?...  컴퓨터가 과열 되었나?...  괜히 킁킁 컴퓨터의  냄새를 맡아 보았으니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 제가 생각해도 이 한심한 아줌마 같으니라고.... 
< 업은 아이 삼년 찾는다 > 는 한심한 아줌마가 된겁니다.   제가... 
 
사실 요즘 이뿐 만이 아닙니다.
철들고 나서 부터 죽 챙겨온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생신을 ( 두 분이 2 일 사이 )  까맣게 잊고 넘어가지를 않나,
딸아이 친구 ride 달라고 해서 태우고 오면서 딴 생각 하다가 친구 뒤에 태운거 잊고는 그냥 우리집으로 와버리고,
" Thank you for the ride. " 하는데 얼굴이 화끈 화끈.
오랜만에  딸에게 햄버거 해준다고 여러 가지  속재료 섞어 햄버거 다 만들어 놓고
냉장고 문 여니 햄버거 안에 있어야할  간고기가 얌전히 슬픈 모양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기가  빠진 그냥 야채 햄버거를 우리 딸은 싫어하더군요.
딸 아이가 분명  minimum day  라고 말해주었는데 
바쁜 아침 기껏 lunch 준비해서 시간 낭비하고 에너지 낭비하고,
제가 싸 놓은 불필요 천덕 꾸러기 lunch 를 그 날 씹으면서
나의 이 망각의 끝은 어디인가 하고 제 자신에게 화풀이 좀 해봅니다.
 
이제 우리 딸도 엄마의 정신 세계를 신뢰 하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 어머, 어떻게해 !!! "  가끔씩 정신차리고 무얼 생각해냈을때 제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면 
" 왜? ~ 또? ~ " 이제 별로 놀라지도 않고 그냥 그러려니 어머니 대형사고만 치지 마세요 그런 분위기이지요. 
 
좌충 우돌,  돌출 행동,  사고 뭉치로 중년을 살기보다는  좀 더 우아하게 나이들고 싶은데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들을 한번씩 치르고 나면 깊어지는 상실감과 밀려드는 자괴감,  제 미약한 존재감에
"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날이 기울어지는 그림자 같고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라는 시편 기자의 하나님께 절규하는 기도가 가슴에 화살 처럼 꽃힙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부엌 체크하고 돌아 왔고 , 오늘 혹시 깜박하신건 없나 또 상기,
내일 꼭 부쳐야 하는 우편물도 잊지 않으려고 아예 신발 위에 예쁘게 올려 놓았답니다.
내일 " 이게 뭐람.."  하고  쓰레기통속으로 버리지만 않는다면  메일은 별 무리 없이 주인을 찾아 갈수 있겠지요. 
 
" 그래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것 만 잊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
하고 스스로 위로도 하여 보고 다짐도 하여 보지만
까마귀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 처럼 매번 남몰래 저질러 놓는 이 실수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독수리는 보통 70년 까지 살수 있다고 합니다.  새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새입니다. 
하지만 장수를 위해서는 40 세때  중요하고도 힘든 결단을 내려야만 한답니다. 
보통 독수리 인생 40 대가 되면 ( 독수리니까 인생이 아니라 독생이라 해야겠네요. )
발톱이 부러지고 힘이 약해지며, 길고 날카로운 부리는 구부러지고,
날개는 무겁고  깃털들 마저 두꺼워져 날기가 어려워 지니 독수리로서의 존재감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때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죽든지,  아니면 150 일 동안 고통 스러운 쇄신의 과정을 통해 거듭날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쇄신을 선택한 독수리는 높은 산에 올라가 부리가 닳아 없어질때까지 암벽에 쳐서 부리를 닳게 하고 
새로 튼튼한 부리가 나기를 기다려 자신의 새 부리로
자신의 발톱과 두꺼워진 깃털을 하나씩 뽑아 털갈이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150일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독수리의 제 2 의 인생이 시작하게 됩니다.
 
한갖 짐승에 불과한 독수리도 다 아는 이 흔들리는 중년에 겪는 쇄신의 과정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값진 보혈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딸인 제가
독수리 만도 못하게  우왕 좌왕 무력하게 손놓고 있어야 하겠습니까?
중년의 육체적 정신적 흔들림을 내 인생의 버팀목으로 모신 하나님앞에 고스란히 내려 놓고
나를 추스리기에 급급한 인생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인생을  쇄신하는 시기가 되기를 다짐해 봅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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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깔깔 웃게 해 주신 신자매님의 글 - 감사합니다.  정말 재밌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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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엄마님의 댓글

민지엄마 작성일

신 자매님 글의 내용 모두가 제게는 일상인데요 ....... 그럼 저는 "위기의 주부" ?


동지가 있다는 것에 살짝 서글펐던 마음도 이렇듯 유쾌하고 편안해 지네요.


중년의 위기 보다는 중년의 "일상"이라 하심은 어떠실런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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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와 !!!  만세.


주일날 교회에서 어느 자매님께서도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하셔셔,


저를 위로 하시려나 보다 했는데 다들 저와 비슷하시군요.


동역자들의 비슷한 간증들을 들으니 무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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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orah님의 댓글

deborah 작성일

독수리 이야기 너무 감동이네요.


불혹의 나이(유혹하기에도 유혹 받기에도 민망한 슬픈 외모의 나이?)에 들어서니 몸과 정신이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물론 50대, 60대, 70대의 고개를 넘어가면서 또 다른 변화를 느끼게 되겠지요. 


나이가 들어 육체가 쇠퇴해가며 나의 연약함이 더 크게 인지될 수록 자연히 내 삶의 무게의 중심이 나로부터 주님께로 옮겨가니 오히려 축복임을 느낍니다.  나를 내려놓는만큼 주님이 채워질 것이니, 그 소망으로 즐거워하며 독수리의 새로운 날개짓을 시작하는 오늘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