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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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97회 작성일 11-12-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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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장부터 마지막 21장까지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상에 대한 고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반복되어 나오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17장6절과 사사기 마지막 장인 21장25절의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직 보이는 왕이 없음이 핑계가 되어 입에 담기에도 부담스러운 영적 타락상을 연출하게 된다.
먼저, 미가라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는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은으로 새긴 우상을 만들고 레위인 한 사람을 자기집 개인 제사장으로 고용하며 섬기게 한다. 그러면서, 속으로 헛꿈을 꾼다.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그런 그의 꿈은, 그 레위인 제사장이 그의 집을 버리고 단 지파의 제사장직을 맡기 위해 떠나버리면서 풍비박산이 난다. 더 큰 야망을 좆아 떠나간 레위인 제사장은 미가가 귀중히 여기며 섬기던 우상까지 들고 날라버린 것이다. 뛰는 분 위에 나는 분이 있다더니...
두번째로는 첩을 둔 레위인의 이야기이다. 처음엔 바람난 고멜을 끝까지 사랑한 호세아의 이야기 같은 로맨스 스토리인 줄 알았더니 점점 이야기가 어글리해진다. 레위인이 첩을 두었다는 자체가 이건 아니올시다 인데, 정욕을 좆아 그 첩을 찾아 산넘고 물건너 가 데리고 올 때는 언제고, 자기가 강간을 당할 상황이 되니 첩을 내어 주어 자기 대신 희생양을 삼는다. 이 대목에서 나는 내가 성경 어느 책을 읽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했다. 혹시 졸다가 깜빡하여 창세기로 돌아갔나...싶어서였다(혹시 궁금하신 분은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와 사사기 19장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시길(류호정 자매님은 성경암송을, 나는 성경읽기를 은근히 들이대는 것 같은데...(목자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 아니다))
암튼, 자기가 내어주어 기브아 사람들에게 밤새동안 집단윤간을 당하게 한 첩의 시신을 12마디로 토막내어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보내는 엽기적인 레위인의 행동은 온 이스라엘 지파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만들고 일의 전후를 들은 그들은 기브아가 속해 있는 베냐민 지파에 전령을 보내어, 기브아의 범죄자들을 처단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범죄자들을 감싸고 내놓지 않은 베냐민 지파는 남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결국 대파하게 되고 일말의 형제애로 베냐민지파의 씨는 말리지 않아(남자 600명 잔존) 베냐민 지파가 역사 속에 근근히 존속하게 된다.
그 때에만 그랬을까, 그들만 그랬을까...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15:4a)
나도, 우리도 미가와 같이 나와 내 집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미신처럼 섬기고 있는 부분이 혹시 없는지, 두 레위인 같이 세상적인 야망과 정욕을 좆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모습이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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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손경일님의 댓글
손경일 작성일
언제나 귀한 말씀을 나누어 주시는 자매님......감사 ^^
우리 교회는 이렇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닌 ^^ 자연 발생적 말씀 묵상과 암송이 있는 교회다...^^
할렐루야!.....^^
절대 주최측의 농간이 아니다!.....^^ㅎㅎㅎㅎ

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작성일
저도 예전에 두번째 레위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몸서리치는 분노와 아픔을 자제하지 못했던 기억이 나네요. 비록 레위인의 첩과 같은 상황은 아니더라도 (예수님처럼 이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세상에 대고 조명해 본다면...) 기독교인들 (특히 한국)가운데 비일비지하게 일어나는 그림자들과 오버렙되는 경우를 보면 정말 성경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생명책(지침서)임이 분명한거 같습니다.

adaya님의 댓글
adaya 작성일
저 역시 사사기를 읽으며 참으로 마음이 많이 착찹했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여호수아가 괜히 얄미웠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하면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모리 사람의 신을 섬기든지 여호와만을 섬기든지 택하라고 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했지요.)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 그러리라고 믿었을까요? 이것을 읽으면서 저는 모세와 사도 바울이 생각났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금송아지를 만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세는"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중보기도합니다. 만일 모세의 중보기도가 없었으면 그들은 진멸되고 모세로 인해 큰나라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모세로서는 모세의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겠지요.(출32:10)
사도바울은 로마서 9장 3절에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 하면서 복음전파의 열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자기가 만난 그 하나님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었다면 모세와 바울과 같이 목숨걸고 중보기도했겠지요.
그리고 하나님께 구하며 자기 뒤를 이어 앞뒤좌우 분간을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지도자를 세우지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여호수아 24:31)
그 결과는 지영자매님도 아시는 바와 같이 그 세대 사람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지요..(사사기2:10)
부모세대에 이어 자녀세대에 이어질 믿음의 유산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보기도의 중요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