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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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24회 작성일 11-10-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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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가 알던 또 한사람이 한국으로 떠났습니다.
바로 제 전속 미용사 아줌마 입니다.
약 12 년 동안 제 머리를 그 분께 맡기고 살아 왔으니 제 전속 미용사나 다름 없던 분 이었습니다.
그 분은 미국 오기 바로 전 미용 기술을 배워 한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남편과 떨어져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살아오다, 이제는 두 아들들이 모두 결혼과 학업으로 제 갈 길을 찾은 까닭에 더이상 남편과 생이별을 감수하면서 이 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원 달러 환율이 2000 원을 넘나들던 내 인생의 보리 고개, 남편의 포닥 시절.
한국에서 돈을 가져다 써야 했던 저희는 머리를 깎는데 돈을 쓴 다는 것이 용납할수 없는 사치였습니다.
그래서 저와 제 딸의 머리는 항상 뒤로 질끈 묶는 스타일 이었고, 싫으나 좋으나 아내인 제가 남편의 머리를 깎아주는 것이 IMF 를 맞은 고국의 외화 낭비를 막아 애국을 하는 길 이었습니다.
커다란 쓰레기 봉지 가운데 구멍 하나 뚫어 남편한테 뒤집어 씌여 놓고 미용을 배워 본적도 없는 제가 월마트에서 $ 18 주고 산 전기 이발기로 남편의 머리를 쓱쓱 밀 수 밖에 없었던 추억의 < 쩐의 전쟁 > 시절.
남편이 좀 예뻐 보이는 날이면 정성껏 최선을 다해 깎아 주고, 남편 뒤통수도 보기 싫은 날엔 대충 대충 깎아놓고 여기 저기 쥐 파먹은 듯 영구 머리처럼 자국을 내놓곤 하였는데 제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 싶게 실수를 한 날이면 부부 사이가 험악.
" 며칠만 지나면 다 똑같아. 며칠만 외출을 자제해. 그리고 자기는 잘 생겨서 괜찮아. 얼굴로 승부하면 돼." 라고 미안한 마음에 마음에도 없는 말로 예의상 남편의 머리에 대한 위로 겸, 나 자신의 실수에 대한 변명 겸, 큰 소리를 쳐보지만 남편이 수긍하기엔 남편 머리가 매번 너무 볼품 없었습니다.
경험이 쌓일수록 손에도 익고 이골도 날 법한데 매번 초심으로 돌아가 < 남편의 원칙과 방법 > 이 나의 < 원칙과 방법 > 사이에서 싸워야 했고, 마음같아서는 연예인 머리 처럼 깎아 주고 싶은데, 결과는 매번 두상의 부조화와 불균형 그리고 좌우 비대칭 속에 아쉽지만 다음번을 기약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한달 뒤면 어김없이 자포자기 초초한 심정으로 쓰레기 봉지를 뒤짚어 쓰고 내게 머리를 맡길수 밖에 없었던 남편이 California 로 오게 되면서 그 미용사 아줌마를 맞났습니다.
저는 더이상 남편의 머리를 책임안져도 되는 자유함과 매달 반복되어 오던 < 기대--불안--초초--실망--당혹--분노--역정--사과 >로 이어지는 긴장된 미용실 놀이에서 해방되어 기뻤습니다.
그 아줌마 역시 자기집 거실에 큰 거울 하나 걸어 놓고 손님을 맡던 시절이었으니, 그 분은 그 분대로 첫 발을 내딛는 자신의 커리어에 대한 모험으로 서로를 찾을 수 밖에 없던 악어와 악어새인 공생 관계로 만나게 된것 입니다.
어쩔때는 저의 머리 파마를 말아 놓고 지루한 시간을 지나는 동안이면 바로 옆에 있는 부엌에 들어가 커피며 과일도 내오고, 어쩔땐 김밥도 뚝딱 말아다 주고, 나물하나 무쳐서 밥이랑 쓱쓱 비벼 먹으라고 주던 요리 솜씨 좋은 분이어서 " 아줌마는 미장원하지 마시고 식당하시지 그러세요." 라고 저는 밥 보다는 제 머리에나 신경을 더 쓰시라 은근히 압력을 주기도 했었습니다.
별로 실력이 없는 분이니 당연히 머리를 하고 온 날이면 예외없이 " 내가 다시는 그 아줌마 한테 가서 머리를 하나 봐라." 땅을 치며 후회를 합니다. 거울 한번, 남편 한번 번갈아 가면서 쳐다 보면서 " 내 머리 이상하지 ? 솔직히 말해봐. " 나의 이런 질문에 본 대로 느낀대로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은 석탄을 지고 불길로 뛰어드는 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최대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속이고 눈치 껏 대답하는 게 가정의 평화를 수호하는 길이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경험으로 터득한 남편의 생존 노하우입니다. 다행히 백형제는 그렇게 용감하지도, 대책 없이 무모하지도 않은 소심한 평화 주의자에 불과 하기 때문에 나의 유도 질문에 항상 " 예뻐. " 라고 단답형 대답을 사용함으로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그 이상한 분위기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마땅히 찾아 갈 미장원도 없고, 또 실력이 못미치고 경험이 부족한 대신 성심껏 최선을 다 해 머리 손질을 해 주는 아주머니의 정성과, 한번 두번 가다 보면 다음번엔 분명 오늘 보다 낫겠지 하는 나의 막연한 믿음, 그리고 매번 더 나은 새로운 미용실을 찾아 다니기도 귀찮은 나의 게으름 탓에 또 다시 몇 달 뒤면 다시 찾기를 반복 어언 12 년이 된것 입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그 분이 실력이 그다지 좋은 분이 아니니 적은 tip 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제 편의 대로 토요일 오후 또는 주일, holiday 를 막론하고 제가 가고 싶은 날이면 언제든지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아도 오히려 그 분이 저한테 감사해 할것 라는 약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그 곳을 찾곤 했었습니다.
저의 California 생활이 익숙해 갈수록 아줌마의 커트와 퍼머 실력도 늘어 가고 번듯한 장소에 Beaty shop 을 내고 이제는 제 머리를 믿고 맏길 정도가 되었다 제 인정을 받아가면서 저에게 서서히 믿음과 신뢰를 얻어가더니 갑자기 한국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떠나기전 제게 전화를 걸어와 그동안 자기를 변함없이 찾아주어 고맙다며 한국에 오면 꼭 자신에게 연락 하라 당부하며 인사를 하고는 떠나버렸으니 저는 졸지에 전속 미용사가 없는 처량한 처지가 되버렸습니다.
남자 분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믿고 갈 만한 미장원이 없다는 것이 저는 참 공허합니다.
< 믿음 > 을 줄만한 곳이 더이상 없다는 허무함. 또다시 < 믿음의 동역자 >를 찾아야 하는 부담감. 내 믿음을 받아줄 < 파트너 > 를 다시 찾아 내야 하는 짜증이 밀려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12 년 동안 내 안에 < 믿음과 신뢰 > 를 쌓아간 그 초짜 미용실 아주머님의 비결은 현란한 최신 미용 기술도, 그렇다고 최신 현대식 시설의 미용실도 아닌 바로 인간적인 신뢰와 오랜 정성이 바로 그 비결 이였던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는 고객을 더 아쉬운 입장이 되도록 만들었으니 대성공을 이룬 셈이지요.
그러고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 믿음과 신뢰 > 의 바탕은 뛰어난 능력과 기술 보다는 사람 자체에 대한 성의와 신뢰에 기초를 하여 마음 깊은 곳 에서 부터 오는 것 같습니다.
국민 행복 지수 1 위의 나라 덴마크는 정부가 개인의 세금을 깎아 주려고 해도 정작 국민들이 반대 한다고 합니다.
국민 스스로가 투명한 정부를 갖고 있다는 믿음, 나라에 ‘세금 뜯긴다’ 는 생각 대신 ‘ 내가 세금 낸 만큼 돌려받는다 ’ 는 국가와 국가 리더에 대한 신뢰, 사회 시스템 전반에 걸친 믿음과 신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하는 중요 이유중 하나라고 합니다.
또, < 마음은 몸을 지배한다 > 는 건강 법칙에 의하면 환자가 의술을 제공하는 의료인들을 신뢰할때, 마음이 스스로 편안해져서 면역 글로빈 A 와 스트레스를 이기게 하는 신경 물질이 증가하게 되어 스스로 질병을 치료한다고 합니다.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신뢰를 갖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뿐아니라 의학적으로도 치료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하니 < 믿음과 신뢰 > 는 무형의 도덕적, 사회적인 미덕이 아닌, 유형의 실질적인 결과를 동반하는 절대 동력인 셈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진심으로 성심껏 누구를 대해본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저는 그다지 믿음과 신뢰를 주는 사람은 아닌듯하여 부끄러워 지려고 하면서, 이제부턴 면역 글로빈 A 와 신경 물질이 팡팡 쏟아져 아픈 곳도 고쳐지고, 행복 지수가 쑥쑥 올라가도록 서로 믿고 신뢰하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댓글목록

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식사후 맛있는 pastry 같은 신 자매님의 글 잘읽었습니다. real treat 입니다.
감사합니다.
벌써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아, 그리고 사진은 신자매님 아니죠?

양준모님의 댓글
양준모 작성일
기다리던 자매님의 글이 오랜만에 올라왔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근데 전 사진속 인물을 알아볼 것 같은데....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사진속의 그 녀 몰래 사용한 사진이라 마음이 조마 조마 합니다.
그 녀가 초상권 주장을 한다면 사진을 내려야 합니다.
갑자기 사진이 없어지면 그 녀에게 발각되어 사진을 어쩔수 없이 내린 줄 알아주세요.
그리고 사진속의 미용실이 바로 그 한국으로 떠나신 미용실의 아주머니 미장원이랍니다.

오정아님의 댓글
오정아 작성일
신자매님글을 읽으면 엔돌핀이 돌듯이 잠시라도 갖고 있었던 나쁜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들이
확!! 싹다 날아가는 느낌이예요.
언제나 아무 재료없이도 뚝딱 차려내오시던 그 미용사분처럼, 그리고 저희 친정어머니의 저녁밥상처럼
일상의 재료를 가지고 맛나게 글을 쓰시니
하나님이 주신 좋은 은사를 잘 사용하시는 것도 감사합니다.
다음 주제는 혹 우리 웹 디자인팀원 중에 한사람? 이 되는 건 아닌지.....

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그녀에게 안경을 씌인 것은 그렇다면 신자매님의 포샾처리?
아니 벌써 지나주 배운 것을 써먹는 경지에!

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작성일
믿음과 신뢰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믿음과 신뢰에 대한 글도 여러번 쓸 만큼...
믿음과 신뢰는 오랜시간이 지나야 참 맛으로 숙성되는 포도주처럼
단시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참 귀한거 같습니다.
지연 자매님의 잼난 글속에서 저를 설례이게 하는 단어들을 보게되니
더욱 반갑고 기분 좋네요.

유지숙님의 댓글
유지숙 작성일
머리 자르는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 혼자 엄청.. 웃었네요.
저도 저희 집 3남자의 머리를 깍아 주거든요. 남편의 머리는 쉬운 듯 하지만 정성과 세밀함이 들어가야...
남편의 머리와 칼 자루가 내게 쥐어 진 순간에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 강요 반 부탁의 말이 "이 때가 기회다!" 하며 남편에게 모든 순복을 다~ 받아 내죠. : )
아이들에게는 "괜찮아! 며칠만 지나면 다 똑같아 져..." 아직 순진한 아이들이 몇학년까지 내게 머리를 맡겨 줄지...
하여간, 신지연 자매님! 리얼하게 쓰신 글 덕분에 제 삶 이야기까지 생각이 나 엄청.. 웃고 갑니다.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서용석 형제님의 스타일이 그렇게 탄생되었군요.
다시 보이는데요.
아내의 협박과 부탁을 다 내어 드린 후 얻은 형제님의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