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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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87회 작성일 11-10-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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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은혜'라는 말보다 더 귀한 말이 있을까?
사도 바울의 '내가 죄인 중의 괴수'라는 말은 결코 과장이 들어가지 않은 그의 진실된 고백이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아프고도 쓰린 그의 탄식은 내 삶 속에서도 절절하게 고백되어지는 잊을만하면 한번씩 깨달아지는 진실이기에 그렇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한 성화의 노중에 있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가끔씩, 아니 자주 잊혀지는 것이 바로 '내가 죄인이다'라는 불변의 진리이다. 경건의 훈련에 어느 정도의 진보가 있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것으로 인한 감사와 기쁨이 있지만, 곧바로 고개를 드는 것이 '나의 의'. 어느덧 남을 정죄하게 되고 나는 '의인'이 되어 있다. 죄인으로 의인의 옷을 입은 것이건만, 그 옷 안에는 부끄러운 벗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그 옷이 나의 본질인 양 착각하게 된다.
어느덧 자연스러움과 부드러움, 너그러운 마음이 적어지고 비판할만한 것들이 자주 눈에 보이며 뭔지 모르게 지치고 버거우며 억울하다는 느낌이 많아질 때, 하나님은 언제나 나에게 '은혜'를 처방하신다. 그럼, 나는 다시 살아난다.
참 간단하고 쉽다. 가라앉아 있는 흙탕물 한번만 휘저어주시면 된다.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어서 잊고 있었던 내 참 모습이 적나라하게 소용돌이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나의 의'라는 명제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스러지고 만다. 유구무언으로 고개를 떨구는 그 때, 이천년 전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그 여인은 바로 내가 된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나님 자신의 생명과 맞바꾼 전무후무한 십자가 구속의 사건이 투석형장 바닥에 나뒹구는 나를 살려내는 유일한 근거임이 자명해지는 그 순간 내게선 오직 예수, 오직 은혜..가 고백으로 터쳐나온다. '은혜' 때문에 눈물이 넘쳐 흐른다. 역설적이지만, 로마서 3장 5절의 말씀처럼 '나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는' 내 삶의 종적들이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은혜가 되고, 나는 앞으로도, 그리고 영원히 이 은혜 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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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손경일님의 댓글
손경일 작성일
귀한 은혜의 나눔 감사합니다....
우리모두가 다 은혜로 이자리에 있음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작성일
가끔... 아주 가끔은 죄에 둔감한 사람들이 부러울 때도 있습니다. 부족함 투성이인 저는 이따금씩 땅에 뭍히는 곤고함을 느끼는데요... 정말 사탄은 얼마나 교묘한지, (요한일서 1장 9절말씀데로) 자백한 후, 예수님의 피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는 저를 계속 공격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승주찬 할 때도 있지만, 이따금씩은... 저의 부족함이 주님의 승리를 더디게 할 때가 있어 정말 미안하지요...
값없이 받은 은혜들... 부지런히 나누어도 그 빚을 다 덜 수는 없겠지만 무게는 줄일 수 있겠지요... 지영자매님의 진솔한 고백이 육신의 처지가 같은 저에게 위로도 되고, 힘도 되네요. "나의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들어나게 하는..." 말씀이 제게 주는 의미를 깊게 묵상하게 됩니다.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지영 자매님의 글을 읽다가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습니다. 정죄는 나의 영역이 아닌 하나님의 영역인 줄 알면서도 문득 문득 어느 사이엔가 제 앞가림도 못하는 이 모자란 제가 하나님의 자리에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있는 교만의 극치를 보일때가 있기 때문이니다. 하나님 맘을 헤아리며 매 순간을 눈물로 감사하며 살아도 부족한데, 제가 감히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교만을 부리다니... 깊이 반성하고 갑니다.

Voice님의 댓글
Voice 작성일
고전15:57,58 주님은 신실하기 원하는 사랑하는
딸의 심령을 보시고 기뻐 하실 것입니다.

장근숙님의 댓글
장근숙 작성일
난, 지영 자매님이 참 좋다. 꾸밈없이 투박하게 가끔 던지는 질문도 예쁘다.
그 안에 이렇듯 죄에 대해 민감함이 있어 더 좋다
세상적인 잣대로 죄를 판단 한다면,사실 우리 중 누가 그렇게 죄를 질 사람들이 있을까?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가졌기에
우리는 이렇게 죄에 민감하고 또한 민감해야만 한다
류호정 자매님, 신지연 자매님이 고백한 믿음의 글을 읽으며," 아직 저렇게 젊고 고운데,
아직 세상의 성공주의나 물질주의에 의미를 둘 나이에, 어찌 이리 깊은 믿음을 가졌을까!" 를
생각하며, 은혜스럽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