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의 아버지, 내 딸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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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607회 작성일 11-08-25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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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를 일찍 시작한 큰 딸과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한 여파는 한 낯의 땡볕보다도 따끔 따끔했고
설 얼은 얼음 판위를 숨죽이며 조심조심 건너듯 나머지 가족들을 아슬아슬하게 했다.
나는 자라면서 아버지가 분 내시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었다. 도리어 늘 '제일 큰 것이 왜 이모양이야" 며 야단치시는
엄마가 못내 섭섭해 윗묵에 쪼그리고 앉아 "왜 다들 나한테만 이렇는거야!" 넋두리 하며 울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그저 아무말 없이 안아주시곤 하셨다 . 아버지인들 철 없는 큰 딸이 왜 답답하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아버지의
입에서는 자식에 대한 부정적 논평은 거의 흘러 나오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언제든 필요하다 싶으면 차분히 앉혀놓고
진지하게 타이르시는 분이였다.
그래서 항상 자식 양육의 악역은 어머니의 몫이였고, 사춘기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위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는
늘 내 마음속에서 자상한 모습으로 살아계셨다.
아장아장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자라난 사춘기 내 딸에게도 아버지가 있다.
그리고 그 아버지와 딸이 갈등하고 충돌하며 서로에게 아픈 말을 내뱉는 것을 듣고 보아야 하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였다. 나의 아버지와는 너무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품으로 난 딸조차 이해해주지도, 넉넉히 품어주지도 못하는 남편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 지 정말로 난감했다 . 나역시 좋은 엄마도 좋은 아내도 못 되면서 그저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 내 딸의 아버지를 보며 피해 당사자인 딸 보다도 더 많이 미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그 아버지가 딸에게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모락 모락 김이 나는 월남국수를 딸에게 사 먹이며
'맛있니?' 하고 묻는다.
딸이 "네' 한다.
아버지가 말한다 " 이제 부터는 잘 지내보자"
그의 딸이 대답한다. " O.K" ................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숨죽이던 나머지 가족들의 소리없는 탄성)
아빠의 그 짧은 말 속에 숨겨진 수 많은 말들을 딸은 아마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말하지 않아도 다 들을 수 있었다.
남편과 막내를 자전거 타러 보내고 , 딸들을 도서관에 내려준 후, 비로소 홀로된 차안에서 나는 마음껏 울어버렸다.
먼저 손을 내밀어준 아버지가 너무 고마워서.......... 그 손을 cool 하게 "O.K"로 잡아 준 딸 아이가 그저 대견해서.........
"나는 가수다"에 가수 인순이가 출연했다.
그녀가 "아버지"라는 노래를 부른다.
자신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한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미워한 아버지 , 다가가고 싶었지만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었던, 내가 미워한 아버지,
제발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부디 사랑한다 그 말을 과거형으로 남겨두지 마세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막내 아이가 티슈를 가져다 주며 "엄마, 괜찮아요?"한다, 어느새 내가 울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내 딸의 아버지,나의 남편 때문에...... ..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모든 것이 서툰, 미안하다는 말 조차 서툰 내 딸의 아버지,
엄한 훈계 한번 하는 것도 한없이 쑥스럽고 힘이 든 ,내 딸의 아버지를 위해.........
그의 소리내지 못하는 이야기를 읽어주고 들어주며 함께 울어주어야 할 단 한 사람이 바로 나 이기에........
그리고 나의 딸들이 이 다음 내 나이가 되었을 때 인순이의 "아버지"란 노래를 들으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지 않기를 기도하며 참으로 오랫동안 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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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잘 읽었습니다. 덩키도 눈물이 날뻔...
고구마 전도로 잘 알려진 김기동 목사님이 딱 하나 보시는 프로가 나가수인데, 그걸 보시면서 아래와 같은 상상을 하였다합니다.
가수중 한명은 탈락을 하게된다. 온갖 노력을 다하여 준비한 노래를 가수는 부르지만, 청중의 심판은 어김없다.
탈락된 가수는 다시 초청받지 않는다.
만일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가기전 하나님이 우리중 한 사람을 탈락 시킨다면? 어떨까...
탈락된 분은 다음주에 교회에 올 수가 없고...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것도 감사제목의 하나이다.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아버지의 사랑은 무덤까지 이어지고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부성애보다는 모성애가 더욱 강하다고 일반적으로 말들을 합니다.
무거운 어깨로 한 가족을 책임지고 나가는 이땅의 가장들. 그 이름 아버지...
지난날 산업의 역꾼으로써 가정 보다는 산업 현장에서 할일이 더 많았던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을 보고자란 우리 세대의 남편들 또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서툴고 어눌하다는 데 공감이 갑니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권위도 점점 퇴색해지고,
특히 미국 땅에서 사는 1.5 세 우리 아이들은 미국인 친구의 아버지와 많이 다른
자신들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저도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깨달은 것이지만 서툰 표현과 딱딱한 권위뒤에
한없이 깊은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시대 아버지들 . 우리시대 남편들이여 !!
나이 먹은 여자에게 꼭 필요한 네 가지 중 첫째가 건강, 둘째가 돈, 셋째가 친구,
넷째가 딸인데 가장 필요 없는 한 가지는 바로 남편이다 라는 이야기를 꼭 기억하여 주시고
사랑의 표현 아끼지 마세요.

김경연님의 댓글
김경연 작성일
사춘기로 멀어진 딸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서로 언제나 다가갈 수 있는 친밀한 사이가 되었고
이제는 제가 중요한 일을 서로 상의하고 젊은이들을 이해하기위해 도움을 받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형제님에게는 그 행복이 너무 일찍 온 것 아닌가요? ^^
혹이나, 형제님이 여인천하(자매님과 세딸)하에서 도움이 필요하면, 저에게 알려 주세요.
제가 자매님 딸들의 아버지를 너무 좋아하잖아요(짝 사랑인가?)

최윤희님의 댓글
최윤희 작성일
아... 나가수 보고 이랬는데, 자매님 글 읽고 또다시
....

전 순미님의 댓글
전 순미 작성일
자녀를 기르다 보면 가정마다 격게되는 비밀스런 삶의 고통을 가감없이 나누신 자매님으로 인해, 공감하며
위로받는 우리 지체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딸 키우며 비밀의 인고를 많이 쌓았습니다.ㅎㅎㅎ
손 형제님은 형제님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매님이 있어서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우리 형제 버리지 말고 이해해 봐야겠네요.(제발 이 글은 우리 형제가 안보길...자신이 없어서...)
주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어려워도 든든한 기준이 있습니다.
주일 아침마다 어김없이 아가방에 나타나셔서 고장난 장남감을 모두 고쳐주시고,제일 힘든 아이 맡아 주시는
우리 손형제님 . 아...제가 천기를 너무 누설했나요...저도 그분 은근히 좋아합니다.....

Jeeyoung Kim님의 댓글
Jeeyoung Kim 작성일
"화평케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자매님은 가정에서 화평케하는 역할을 감당하셨으므로 명실공히 하나님의 자녀이십니다. 자매님의 그 간절한 기도가 아버지와 딸, 두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음을 알기에 저 또한 내 있는 그곳에서 기도로 그 역할을 감당코자 소망하게 됩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남동생과 엄마의 불화 때문에 저도 10대 때 불안한 수많은 날들을 보냈음을 기억합니다. 그들에겐 예수님이 없었기에 그 깊어진 골이 끝내 메워지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관계의 소원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봅니다. 자매님 가정엔 예수님이 계시기에 시작은 같아도 끝이 다르니, 정말로 예수 잘 믿으셨습니다! 저도 자매님의 기도의 본을 받아 가족 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서리라...마음 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