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orahDec 02.2010
마태복음 3장
오늘 아침 마태복음 3장을 묵상하고 몇가지 함께 나누고 생각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 자판을 두드립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주의 길을 예비하라(회개하라)'고 외치는 침례요한에게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나아왔습니다.
그들이 왜 요한에게 나왔을까? 구경하러 나왔나? 성도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고 떠들썩하게 유명한 선지자가 있다길래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렇게들 은혜를 받나...하는 마음으로 은근히 견제심리라도 작용해서 나와 봤을까? 제 마음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안 좋은 이미지가 있어서인지 그들이 어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요한에게 나왔으리라는 생각은 안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한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다...라는 양심이 주는 두려움이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이들이 요한 앞에 회개의 침례를 받기 위해 나온 모습은 겉보기에는 '독사의 자식'이라는 지독한 욕을 먹을 만한 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계속해서 요한의 그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겠다고 나온 행동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하는 회개라는 것이 반쪽짜리 밖에 안 되는 것이라는 데 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침례도 받고 다 하는데, 문제는 돌이켜 삶에 그 회개가 증명될만한 열매가 안 나타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그 삶을 정당화합니다. 난 아브라함 자손이니까...구원은 받았으니까...대충 대충 죄를 용납하며 살아도 그래도 최소한 하나님이 내치지는 않으시겠지...
이 바리새인의 모습 위로 저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습니다. 내 의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어짜피 예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것 아냐? 대충 살아도 하나님이 무한한 자비로 용납하시고 죄는 자백만 하면 기억도 아니하시니 나는 최소한 천국티켓은 확정 받았쟎아. 이 땅에서까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며 사는 건 부담스럽고 부자연스럽기까지 하니 대충 세상 백성으로서도 할 도리 하면서 물 흐르듯이 살면 좋지 않나? 내 삶에 좋은 열매들도 있으니 있는 것에 자족하며 굳이 나쁜 열매 찍어내는 아픔 겪어가며, 열매 못 맺는 일로 사서 고민하며 그렇게 살아야 하나?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님에 대해 1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성령'과 '불'로 침례를 주실 것이다.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고 '성령'으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인도하실 것과 덧붙여 '불'로 침례 주실 것에 대해셔도 말씀하셨습니다. 불은 열정을 뜻하기도 하지만 10절에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말씀처럼 우리의 죄가 불에 소멸되어 없어짐을 뜻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우리는 죄를 깨닫고 또 예수그리스도의 피공로로만 사함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귀한 복음을, 내 삶의 가지들을 살피며 나쁜 열매, 아예 열매 못 맺는 가지들을 쳐내어 성령의 불에 던져버리는 일을 외면하는 핑계거리로 삼고 있는 내 모습을 직면하며 마음이 아픕니다.
20대 때 좋아하던 '이용도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전기를 읽으며 마음이 뜨거워져 몇날 며칠 밤을 설치기도 했지요. 최근들어(이제 저는 40대가 되었습니다), 이분에 대한 기사를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신비주의자라 해서 1930년대 당시 '이단'으로 제명되었다가 66년만에 감리교단에서 복권되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싣었습니다.
...이용도는 당시 한국교회의 영적 모습을 교리와 신조만이 생명없는 고목같이 앙상하게 남았다고 비유했으며 그들의 심령은 생명을 잃어버린 화석에 비유했다...이용도는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은 예수에 대한 잘못된 상(象)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한국교회가 가공된 “괴이(怪異)한 예수”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에 계시된 본래적 예수는 영(靈), 천(踐), 빈(貧), 비(卑)의 예수이지만, 한국교회는 영(榮), 부(富), 고(高)의 예수를 가공해 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용도는 이렇게 적고 있다. “현대의 교회는 괴이한 예수를 요구하며 현대 목사는 괴이한 예수를 원한다. 참 예수가 오시면 꼭 피살될 수밖에 없다. 참 예수는 저희들이 죽여 버리고 말았구나. 그리고 죄의 요구대로 마귀를 예수와 같이 가장하여 가지고 선전하는구나. 화 있을진저. 현대교회여! 저희의 요구하는 예수는 누구의 예수, 영(榮)의 예수, 부(富)의 예수, 고(高)의 예수였고, 예수는 영(靈)의 예수, 천(賤)의 예수, 빈(貧)의 예수, 비(卑)의 예수였나이다.”(일기, 1930년 2월 20일자) ...이용도가 보기에 이처럼 잘못된 예수의 상을 가진 한국교회가 죄의 자복과 회개를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이용도는 한국교회를 향해 본래적 예수의 상을 찾으라고 강변한다. 즉,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세운 “사람(人)의 예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찾으라는 것이다. “예수를 갖다가 너희 마음에 맞게 할 것이 아니라 너를 갖다가 예수에게 맞게 할 것이니라.”...
20대 때는 이용도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에 불이 붙었다면, 20년이 지난 지금 저는 이 설교를 들으며 깊은 한숨을 내쉽니다. 마음이 아주 힘듭니다. 젊어서는 나도 이렇게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었기에 가슴이 뛰었다면, 이제는 참 멀리도 와버린 내 모습을 보며 회한으로 마음이 서늘함을 느낍니다.
이런 것이 나이가 든다는 것이야...라고 핑계하지는 말아야겠지요. 낙담하고 자포자기할 일도 아니겠지요. 묘한 것은 이렇게 마음이 어려울 때 어느 때보다도 '내 의가 아니라 십자가 피 공로로 구원받았다'는 그 복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반쪽짜리로 만들어버리는 삶을 살지 않게 되기를, '늑대다'를 외치던 거짓말쟁이 양치기처럼 다시 한번 그분께 기도해 봅니다.
p.s. 어쩌다 보니 제 푸념처럼 되어버려서 읽으시는 분들께 죄송하네요.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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