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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19.2010 나눔목장 소식입니다
    나눔 목장 모임 보고서를 나눕니다. 처음 나눔목장에 참석하여 긴장 하셨던 얘기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해요. 모두들 두분을 반기시며 은혜 가운데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밤 늦게까지 함께하셨다니 정말 기쁘구요. 오래 다니신 분들과 새가족분들 모두 서로 진솔한 나눔을 통해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네요. 모일 때마다 더욱 가까와지셔서 나눔목장을 통해 모두 말씀안에서의 은혜의 감격과 기도 응답의 감사가 늘 넘치게되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혜성 드림 ========================================================================================================================  나눔 목장은 지난 10월 2일(토) 첫 모임을 John Park/Grace Park 가정에서 가졌습니다. 부부 목장으로서는 처음 모임을 갖고 형제들 대부분이 영어권에 속하는 가정이라 저희 부부(김 경연, 김 영미)는 많이 긴장하고 참석한 기억이 납니다. 특히, 저는 모임에 들어 가기전 혹시나 영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비하기 위해, 차안에서 열심히 혀 굴리는 연습도 하였습니다. 처음 모임인데, 여섯 가정중 다섯 가정이 참여하였고 밤 11시가 넘도록 자기 소개와 부부 인연에 대한 소개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첫 시간에 저는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얼굴과 등에 땀을 남모르게 많이 흘렸는데, 시간이 갈 수록 모든 형제들이 한국말을 듣고 말하는데 많이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가정이 처음인데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저희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안되는 두 가정 조차도 어쩌면 10년 이상 새누리 교회를 다닌 저희보다 더 편하게 말씀하시고 나누는 것을 보고 주안에 한 형제/자매됨의 능력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눔을 위한 공식 모임을 10월 16일(토) 김 경연/김영미 가정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목장 가족 전체 여섯 가정이 다 참석하였고 아이들까지 여섯명이 참석하여 총 18명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또 박 현철 형제님이 찬양인도를 자원함으로(?) 맡아 주시고 기타를 갖고 오셔서 첫 시작을 은혜롭게 하였습니다. 목장 식구들이 모두가 박 형제님의 숨은 기타 실력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음 말씀 전달은 한국에서 오신지 얼마 안되신 은창수 형제님이 준비해 오셨는데, 이 형제님이 설교시 한번 듣고 정리한 내용으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주셔서 목장 식구들이 모두 감탄하였습니다. 물론, 조금 누락된 부분은 돕는 베필인 자매님이 보충해 주셨습니다.   목장에서 나눔을 한 내용은, 이상학 목사님의 '다음 세대를 위한 회심(막 1:2~8)" 에 대한 설교를 중심으로 각 자가 우리 자녀들을 위해 어떻게 물주고 나무를 심고 있나 하는 것을 나누어 보았습니다. 특별히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느끼는 애로 사항과 교훈에 대해서 심도깊에 나누면서 열띤 토론까지 하여, 이번에도 저는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나눔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부모님 밑에서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은 형제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엄격하게 양육하려고 하였으나, 아이들이 성격이 다 다르고 형제님의 교훈에 반응하는 것도 달라서 많은 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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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18.2010 [교단일기] 깻잎 머리
    황희연(세종 한국 학교 2010-10-06) 대학 때 가정교사를 했던 학생의 어머님께서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 오셨다.3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여전히 멋쟁이이신 어머님은 광수(그 개구쟁이 학생, 지금은 치료 잘 한다고 시내에서 입 소문난 유명한 치과 의사)의 소식을 전하며, 광수가 꼭 선생님께 자장면을 대접해 드리라 했다며 함께 가자고 하시기에 따라 나섰다.동네에서 제일 비싸다는 중국집으로 가서 선풍기 바람을 쐬며「이 더위에 무슨 자장면을 먹는담?」하는 생각뿐이었는데, 때를 맞춰 광수가 전화를 해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별이 빛나는 밤에」를 청취하는 듯 감미로운 목소리가「선생님~」을 불러 주며, 꼭 자장면과 탕수육을 드시라고 한다.목소리에 취해 얼떨결에「왜?」라고 물으니, 과외 받던 때, 시험만 끝나면 사주셨던 자장면에 대한 선생님의 추억이라며, 출국 전 치과에 들려 진료 받고 가라는 말까지 한다.맛보다 감동으로 자장면과 탕수육을 남김없이 먹고 나오는 데, 머리가 벗겨져 더 늙수그레한 깡마른 남자가 배달 통을 들고 들어오며, 나와 동행하신 분들을 보고 웃으며 다가오다 내 쪽을 보더니 반가움이 역력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 순간 움찔 놀라 귀를 의심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를 같이 다닌 동창생이었다.듣기로는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었는데, 강제 명퇴한 후 고향에 와서 식당을 운영한다고 했다.얼마 전, 동창회에서 내 얘기가 나왔다며 배달 밀렸다고 성화인 부인의 잔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40여 년 세월을 한달음에 쏟아 내며, 내 어릴 적 모습을 기억하며 아직껏 변하지 않은 깻잎 머리(지금 용어로)를 말했다.지금에야 헤어 스프레이도 있고 젤도 있고 폼도 있지만 그 당시는 보통 앞머리를 일자로 짧게 자르던지, 옆으로 넘겨 실핀으로 고정하는 정도였는데, 최신 유행인 「윤복희」스타일로 멋을 한껏 부리던 나는 앞머리를 비스듬히 내려 동백기름을 발라 머리를 고정하고 다녔었는데 부러움의 대상으로 눈총을 자주 받곤 했었다.친구는 여기 저기 전화를 열심히 하면서 반창회를 열자고 했다. 내 일정은 무시한 채. 연결된 전화를 건네며 거울 보듯 통화하라고 하기에 신기함에 보니 영상 통화였다.초등학교 4~5학년 때 담임 선생님. 내 기억에서도 한번도 지워지지 않았던 선생님, 선생님께서도 일거수 일투족 기억해 주시며, 아직도 앞머리 내리고 다니냐고 물으신다.너무나 뵙고 싶고 그리웠던 선생님이셨는데, 선생님께서 먼저 눈물을 보이시며 보고 싶었다고 하신다.점심 장사 망쳤다고 투덜대던 안주인도 내 동생의 동창생이라며 얼음을 동동 띄운 수박 화채를 들고 나와서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  한 나절 감동의 물결이 가슴에 와 닿아 하루가 아쉬움에 일렁거린다.나도 교사가 되리라고 다짐하도록 했던 선생님. 50이 넘은 제자를 아직까지도 일일이 기억하며 칭찬해 주시고 걱정해 주시는 선생님.이런 든든한 선생님이 계시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우리 아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늘 지켜주고 칭찬으로 이끌어 주는 그런 교사, 또 학생들의 기억에 남아 있어 한번쯤 뵙고 싶어하는 그런 교사가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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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연Oct 17.2010 우리에게 <고슴도치 딜레마> 는 없다.
      어쩌다  미국 땅에 와서 살게 되니  좋은 점이  딱 한가지 있습니다. 말로써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된것입니다.  아니 엄밀히 따져서 상처를 줄수가  없게 된것 입니다. 남에게 상처를 줄만큼  영어를 잘 못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서툰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다보니  서로 인사 좀 나누고... 날씨 얘기도 좀 하다가... 사업은 잘 되니 ? ...상대가 결혼을  한 사람일 경우  배우자 및 가족 안부 좀 묻고 나면   바로  몹시 썰렁해 지니  급히  다시  헤어지는 굳바이  인사로  들어갑니다.  못하는 영어에  실수라도  하여  국제적으로 망신이라도  당할새라  조심스레  품위있는  고급 단어들을  신중하게  골라 최대한 인격적으로  보일수 있도록  고심하여 말하다 보니  누구를 기분 상하게 한다던가  상처를 준다던가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 상처를 줄만큼 대화를  깊이 들어가지도  대화에 공을 들이지도 않게 됩니다.    특히  < Oh! So Beautiful !!! >  을  입에 달고 사는 오바 액션의  달인들인  미국 사람들의 습관을  저도 이제는 은연중에 배워  저도 대화중에  마음에도 없이 < 오우 , 너무 고마운걸 > < 너 네 애들  너무  귀엽구나 > < 너무 아름답군....> < 너 오늘 너무 예뻐 보여 >  등등의  정치성 멘트를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비록 빈 말일 지언정 사람들을 격려하게 되는 미국식 대화법으로 살다 보니  제 속 마음과는  달리 최대한  아름답게 포장하여 말하는데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않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하는 대로  입으로 말할수 있고,  뇌에서 생각함과  동시에  혀가 움직이는 제 모국어인 한국말로 사람을  대할땐  제 마음과  생각과  제 표현이 아름답게  잘 포장이 되질 않는 다는데 그 문제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동안 미국 사람들을 대하면서  포장하느라  급급했던 제 참고 참았던  내 속 마음을  굶주려 있던  표현의 자유를 도구로  삼아  직설 화법으로  내 형제 자매들에게  솔직하고  화통하게  다  쏟아 내게 되곤 합니다.   영어로 대화할땐 그토록 신중하고   품위있게  아름다운 칭찬을  헤프게  남용하던 입장에서,  한국말로는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공격의 말을 하기도 하고, 영어로는  아낌없이 뿌리던  격려와 칭찬에는  자린 고비가 되어버립니다.  당연히  말의 실수도 많아지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 고슴도치 딜레마 > 란  말을 아시는지요?   한 겨울 추위를 피하기 위해  체온을 서로 나누려 고슴도치들이 서로에게 다가가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몸에 돋친 서로의 가시가  서로의 몸을 찔러 서로 몸에  상처를 내기 때문에  고슴도치들은  결국  몸의 체온을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지 않을 정당한 거리를  서로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슴도치 딜레마는  < 누군가와  가까워지려 하면  자신에게 달린 가시들로 그 상대를 다치게해 누구와도 가까워질수없는 상태 > < 서로에게 필요 하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관계 > < 그런 위험 요소를  피하기 위해  미리 상대방과  거리를 두는 자기  방어적 심리 > 를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미국 사람들과 영어로  적당한  안전거리 확보 후   적당한 온도를 지키며  적절한 관계를   나누며   살듯이  우리끼리도  차라리 < 고슴도치 딜레마 > 에 빠져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야 그나마  상처를 덜 받으며   살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외로와서  체온을  녹이고는 싶은데  사람이 싫고 상처 받기 싫어서  아예  마음문을 닫아버리고  잠수를 타버립니다.살다보면 남편이나 아내, 부모나 형제, 주안에서 만난 형제와 자매등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가  모르는 타인에게서 받은 상처보다  더 깊고 아픈 것이 사실이니까요....외로워서 친해지려고  노력하다가도 막상 친해지면   어느새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어 멀어지게 하는  우리들...  가깝게 다가가고 싶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던 기억... 상대에 대하여 적의나 악의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상대를 찌르게 되는 내 몸의 수 많은 가시들...   그런데  고슴도치 사육사들이 발견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어도 계속 고슴도치들에게 다가서면  어느 순간 고슴도치들은  자신의 뾰족한 가시를 부드럽게 만들어 더이상  찌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야 말로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  다가가지 못하고  항상 일정한 거리를 두는  누군가의 마음을 열고 상처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얘기 이지요.   적당히 안전 거리를 확보하며  고슴도치 딜레마에  빠져 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시에 찔림당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로의 가시를  뭉툭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줄수 있는  따뜻한 봄날과 같은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끝없는 상처와 갈등, 수 많은  내몸의 가시들을  사랑과  관심으로  뽑아 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공동체를 그려 봅니다.   어서 다가 오세요.  기꺼이 찔려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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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16.2010 [가정사역부] 사랑의 음식 나눔 사역
    가정사역부에서 주관하는 여러가지 사역 중 올해 8월부터 시작하게 된 사랑의 음식 나눔 사역에 관해 소개합니다. 이 음식나눔 사역은 새누리 교회를 함께 섬기는 형제, 자매들 간에 육신의 질병으로 고통받는 경우가 생기면 중보기도 뿐만 아니라 정성스런 음식을 준비해 그 가정에 전해드리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가정사역부 부원들이 위주가 되어 한 주씩 돌아가면서 시작되었는데요, 음식 나눔 사역이 이런 저런 모양으로 입소문을 타고 가정사역부 부원이 아님에도 하나, 둘씩 함께 하시기를 자원하는 자매님들이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우선 교회 내 아픈 분이 계시면 심방을 하고 예배를 함께 드리며 그 가정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가 살펴 봅니다. 치료 중에 계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실 경우 서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그 가정으로 배달해 드리고 있는데 현재는 항암치료를 받고 계신 자매님 한 분을 일주일에 한 번씩 섬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음식솜씨를 걱정하시기도 하는데 음식솜씨가 있고 없고를 떠나음식을 준비하실때 병 낫기를 기도하는 마음과 사랑의 조미료가 함께 첨가되어 그런지 섬김을 받고 계신 자매님께서는 너무 맛있게 잘 드시고 계신다고 합니다.야고보 장로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했듯이 형제, 자매, 이웃을 서로 돌보고 격려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음식 나눔 사역이 가정사역부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분들이 같이 섬길수 있는 기회가 되길 소원합니다. 자원하시는 마음이 생기시면 주저치 마시고 연락을 주시면 대환영입니다.끝으로 며칠 전 섬김을 받고 계신 자매님께서 주신 편지글의 일부를 함께 나눕니다. “새누리교회 자매님들이 보내주시는 음식을 받을 때마다 세심한 배려와 정성에 감격하고, 또 감사함으로 인해 제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는지 모릅니다. 저는 이제 막 세번째 항암 치료를 시작했구요, 아무래도 횟수가 더할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건 사실인데, 다행히도 제가 아직까진 입맛이 떨어지지 않아서 잘 먹고 있습니다. 다들 저를 위해 열렬히 기도해 주시는 덕에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잘 견디고 있는것 같습니다. 요즘은 약이 좋아져서인지 진통제, 수면제 같이 먹으면 토하는 것도, 아픈 것도 견딜만하게 느껴지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원에서 주지 못하는 하나님과 주위의 '사랑'이라는 약 덕분에 매일 기운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잘 먹고 기운 차리고 있다고 어제 의사에게 칭찬 듣고 왔습니다. 하하. 자매님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열심히 잘 먹고, 잘 견디고 기운 내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제게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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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16.2010 [전도구제부] 도서실
    그리스도인이 책을 읽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도와주는 신앙서적을 읽는 것 역시 믿음 생활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새누리 형제 자매님들의 믿음생활을 돕고자 도서실을 간단하게 소개하고자 합니다.Q :새누리 도서실 이용 자격조건이 있나요? A : 현재 전도구제부 소속으로 되어 있는 도서실은 새누리 공동체 (KM/EM)에 등록된 모든 분들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입니다.Q :도서실은 언제 이용할 수 있나요? A : 예전에는 한어부 예배 후 2시까지였지만 지금은 여러 형제 자매님들의요청으로 개방시간을 수정하여 예배전에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10:20AM-11:20AM, 예배후-2:00 PM)Q : 어떤 종류의 책들을 빌려 볼 수 있나요? A : 도서구입은 신앙서적 구입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적 성장, 가정과 자녀교육, 간증, 기도, 기독소설 등이 주된 주제들입니다.Q : 대출권수와 대출기간은 정하여져 있나요? A : 3권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대출기간은 3주가 원칙입니다.Q : 구입을 원하는 책을 추천할 수 있나요? A : 언제든지 추천하시면 참고하여 구입하고 있습니다.Q : 책을 기증하고 싶습니다. A : 상태가 양호한 책은 언제나 환영입니다.Q : 도서구입/대출 외에 어떤 일을 하나요? A : QT교재인 “생명의삶”과 “SENA” 구독신청에 관한 일을 합니다.Q : 구입한 새 책이나 추천도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습니다. A : 새누리 웹사이트(www.incbc.org)에서 알 수 있습니다.- 전도구제부 도서실 이 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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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onkeyOct 14.2010 부활 미리 체험해 보기
    이른 오늘 아침의 인터넷 뉴스에는 칠레에서 구조된 33인의 광부들의 소식으로 도배 되어있다.아래의 Youtube 동영상을 먼저 보기로하자.(동영상 밑으로 글은 계속됩니다) 이들은 두달 넘게 지하 몇천 feet 속에 같혀있다가 어젯밤에 전원 구출되었다.처음에는 이들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칠레의 온국민은 물론 전세계인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이 광부들 -한명 한명 로켓트의 캡슐 같은 구조기구를 타고 그 깊은 땅속에서 서서히 나타날때마치 죽음의 무덤 속에서 산 자가 되어 나사로 같이 나타날 때밖에서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칠레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아무 관계는 없지만이것이 나의 일인듯 그들과 삶이 얽혀진 모든 국민은 환호성을 지르며 감격했다.구조가 완료된 후 샴페인을 터뜨리며 구호를 외치며 껑충껑충 뛰는 저들을 보면서,나는 우리 모두가 이담에 겪을 부활의 그 날을 미리 본다.부활의 그 날!!그날 우리 모두는 저리 뛰며 기뻐할 것이다.울움소리는 환호로 바뀌고, 삶은 축제가 될 것이다.광부는 통상 막장인생이라 부른다.그들이 갖은 고생을 하며 석탄을 캐다 늙어서 죽은들 몰인정한 이 세상인심이 눈썹하나 까딱했으련만...그러나 삶과 죽음이 갈리는 이 인생의 real drama 는 직업의 귀천과 국경의 장벽을 초월하여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이슈인 죽음 -그리고 삶이란 소중한 선물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체험을우리 모두에게 선사하였다.여기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하나이고 공감할 수 밖에 없다.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에게 약속하여 주신 그날 -우리 모두의 부활의 찬란한 아침의 그 축제가 이런 기쁨과 환희의 시간이 되리라 믿는다.우리는 부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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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연Oct 13.2010 이상학 목사님 설교 예화 <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 장 지오노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약 4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는 않은 고원지대를 오래오래 걸어서 올라다니곤 했다.   그 고지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은 알프스 산맥 위의 아주 오랜 고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은 동남쪽과 남쪽으로는 뒤랑스 강의 중류를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드롬 강의 원천으로부터 디에까지 이르는 강의 상류를 끝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꽁따 브네쌩 평원과 방뚜산의 지맥이 그 끝이었다. 그곳은 바스(낮은) 알프스 지방의 북부 전부와 드롬 강의 남쪽 및 보끌뤼즈 지방의 일부 작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고도 1200∼1300미터의 인적없고 단조로운 곳에서 긴 산책에 나섰는데, 이곳은 야생 라벤더외에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나는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이 지역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흘을 걸은 뒤 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뼈대만 남은 버려진 마을 옆에서 야영했다. 전날 마실 물이 바닥났기 때문에 나는 물을 찾아야만 했다. 폐허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낡은 말벌통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는 집들을 보니 옛날엔 이곳에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지붕이 없어져버리고 비바람에 사그러진 대여섯 채의 집들, 종탑이 무너져버린 작은 교회는 마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속의 집이나 교회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날은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유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있는 이 고지 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곳 없는 땅 위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난폭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속으로 불어닥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식사를 방해받은 야수가 부르짖는 소리 같았다. 나는 캠프를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섯 시간이나 더 걸어 보았어도 여전히 물을 찾을 수 없었고, 또 물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똑같이 모두 메말라 있었고 거친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만남] 그런데 저멀리에서 검은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실루엣을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로 착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한 양치기 목자였다. 그의 곁에, 불타는 듯한 뜨거운 땅 위에는 30여 마리의 양들이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꺼내 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있는 양의 우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간단한 도르래를 설치해 놓고 깊은 천연의 우물에서 아주 좋은 물을 긷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 있고 확신 속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이런 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발견한 폐가를 어떻게 혼자 힘으로 수리해 놓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지붕은 튼튼했고 물새는 곳도 없었다. 바람이 지붕을 두드려 기와 위에서 내는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파도소리 같았다. 살림살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릇은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마루는 잘 닦여 있었으며, 총은 반질반질했다. 불 위에는 수프가 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역시 산뜻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고, 옷에 단추가 단단히 달려 있으며, 기운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옷이 세심하게 수선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수프를 나누어 주었다. 식사 후 담배쌈지를 권하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개 또한 주인처럼 조용했으며 거칠지 않고 상냥했다. 내가 여기서 그날 밤을 묵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도 하루 하고 반 이상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는 마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고지대의 기슭에는 서로 멀리 떨어진 너댓 개의 촌락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그 마을들은 차가 다니는 길의 맨 끝에, 떡갈나무 숲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에도 겨울만큼이나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하게 모여 살면서 모든 가정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의 이기심만을 키워 가고 있었다. 분별없는 야심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트럭으로 시내에 숯을 운반하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품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여인들은 또한 가지가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들을 놓고, 악덕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게다가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가는 정신병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 목자는 조그만 자루를 찾아 들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테이블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그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깊게 조사하기 시작하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구별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묶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이거나 조금이라도 금이 간 것들을 제쳐놓았다.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백 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화가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종일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그 휴식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꺼내어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세심하게 골라 개수를 세어 모은 도토리 자루를 물양동이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대략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고 엄지 손가락만큼 굵은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산책하며 쉬며 그가 간 길을 나란히 따라갔다. 양들의 목장은 작은 골짜기 아래에 있었다. 그는 작은 양떼를 개가 돌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올라왔다. 나의 무례함을 꾸짖으러 오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를 따라오라고 청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를 더 올라갔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그는 다시 도토리 고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를 끈질기게 물어보았다고 생각한다. 3년 전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고독하게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십만 그루의 도토리를 심었다. 십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러나 산짐승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속한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 가량이 죽어버릴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그는 분명히 50세가 넘어 보였다. 55세라고 했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 날 그는 평지에 농장 하나를 갖고 있었고 그곳에서 인생을 가꾸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고 뒤이어 아내를 잃었다. 그후 그는 고독 속에 물러앉아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달리 중요한 일거리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개선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 때는 나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고독한 사람들의 영혼에 섬세하게 접근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정확히 말해서 내 젊은 나이는 나 자신과 관련지어서만, 그리고 어떤 행복의 추구만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상상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삼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벌써부터 너도밤나무를 번식시키는 것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그의 집 근처에 이 나무의 열매에서 길러낸 묘목원을 갖고 있었다. 울타리를 세워 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잘 보호해 놓은 묘목들, 즉 그의 연구 재료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또한 지면에서 몇 미터 지하에 어느 정도 습기가 고여 있을 것 같은 땅에는 자작나무를 심으리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해후] 다음해 1914년에 전쟁(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이 전쟁에 참가했다. 나는 한낱 보병 병사의 몸이었으므로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런 일 자체는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화제거리라든가 우표수집 같은 것으로 여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벗아났을 때 나는 아주 적은 액수의 제대 보너스를 받았으며,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았다. 인적없는 그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들었을 때 나에게는 그런 바람 이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마을 너머 멀리에서 무슨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카페트처럼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난 여기 오기 전날부터 나무를 심던 그 목자를 다시 생각하기 생각했다. "1만 그루의 떡갈나무라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엘제아르 부피에 역시 죽었으리라고 쉽게 생각했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50대의 인간들이란 죽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주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 개의 벌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린 나무들을 위협하는 양들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동안 그는 전혀 전쟁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연하게 여느때와 다름없이 나무를 계속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10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나보다, 그리고 엘제아르 부피에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 그것은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문자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 속에서 그가 키워 놓은 숲을 산책하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가장 폭이 큰 것은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지니지 못한 한 인간의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는 자기 생각을 꾸준히 실천해 가고 있었다. 내 어깨 높이에 와닿는 너도밤나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떡갈나무는 빽빽이 자라 있었고, 들짐승에게 갉아먹혀 피해를 입는 나이를 넘어서 있었다. 신 자신이 이 피조물을 파괴하려는 섭리를 갖고 있다면 앞으로는 태풍에게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감탄할 만큼 잘 가꾸어진 자작나무 숲을 보여 주었다. 5년 전, 그러니까 1915년 내가 베르덩 전투에서 싸우던 시기에 심은 나무들이었다. 밑에 습기가 있으리라고 정확하게 짐작했던 모든 땅에 그는 자작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작나무들은 젊은이같이 부드러웠고 아주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창조란 연달아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의 일을 고집스럽게 추구할 뿐이었다.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말라붙어 있던 시내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때는 이 말라 붙었던 시내에 물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소개했던 쓸쓸한 마을들 가운데 몇몇은 옛 갈로 로망의 터전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아직도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때 고고학자들이 와서 이 곳을 파헤쳤고, 그들은 여기에서 낚시바늘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약간의 물을 얻기 위해서도 저수통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람도 몇가지 씨앗들을 흩어 놓았다. 그래서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드나무가, 골풀이, 풀밭이, 정원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아무런 놀라움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외롭게 산을 타는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많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나 그것은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이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의심을 두었다면 그들은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의심을 느끼게 할 만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훌륭하고 고결한 그의 인격 속에 이처럼 끈질긴 고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관리들 가운데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엘제아를 부피에를 방문했다. 그동안 그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는 것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 자신은 그를 그런 어려움 속으로 종종 밀어 넣었던 것을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었을 곤란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역경과 싸워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고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는데, 모두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가 되자 그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그리하여 떡갈나무들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보기드문 인격을 가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너무나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만 시기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1933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깜짝 놀란 산림관리인의 방문을 받았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의 성장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집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을 이 목자에게 통고했다. 그 관리는 순진하게도 숲이 스스로 혼자 커가는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시기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너도밤나무를 심으러 가곤했다. 그때 그는 이미 75세였기 때문에 매일 오고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나무심는 바로 그 장소에 오두막 돌집을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해에 그 집을 지었다. 1935년에는 정부의 진짜 대표단이 '천연의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수자원청의 고위관리와 국회의원, 전문가들도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단 한 가지 유익한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즉 숲을 국가의 관리 아래 두고 사람들이 숯을 만들러오는 일을 금지한 것이다. 그들 역시 건강이 넘치는 젊은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숲은 국회의원에게까지도 유혹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대표단의 산림관리관들 가운데 내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숲의 비밀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어느 날 우리 두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우리는 대표단이 시찰한 지점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산림관리관은 쓸모없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가치있는 것을 알아볼 줄 알았고 침묵할 줄도 알았다. 나는 선물로 가져간 달걀 몇 개를 내놓았다. 우리 셋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지나온 언덕길은 6∼7미터 높이의 나무들로 뒤덮혀 있었다. 1913년에 보았던 이곳의 모습이 생각났다. 황무지가 떠올랐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거의 장엄하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운동선수였다. 나는 그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땅을 나무로 덮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떠나기 전에 내 친구는 이곳의 토양에 알맞을 것 같은 몇몇 나무 종류에 관해 간단하고 짧게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는 나중에 "그는 그런 것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한 시간쯤 걸은 뒤에 생각이 떠오른 듯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나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 훨씬 많이 알아. 그는 행복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사람이야."라고. 이 산림관리관 덕분에 숲만이 아니라 엘제아르 부피에의 행복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세 명의 산림관리관을 임명했고 이들에게 몹시 겁을 주어서 나무꾼들이 아무리 뇌물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의 작품이 심각한 위험을 맞았던 것은 1939년에 일어난 2차 세계대전 때였다. 그 당시에는 적지 않은 자동차들이 목탄가스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스연료를 만들어내기 위해 나무들이 항상 모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부터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지역들은 모든 도로망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계획은 재정적으로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목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 곳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평화롭게 자기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는 1914년의 전쟁을 몰랐던 것처럼 1939년의 전쟁 역시 모르고 있었다. [추억] 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본 것은 1945년 6월이었다. 당시 그는 87세였다. 나는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전쟁이 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뒤랑스강의 계곡과 산 사이를 오고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처음 산책했던 장소가 어디인지 더 이상 알아 볼 수 없었는데, 그것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는 교통수단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버스가 가는 길은 나를 처음 보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옛날의 그 황량했던 폐허의 땅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을 이름을 떠올려야만 했다. 나는 베르공 마을에서 버스를 내렸다. 1913년에는 열 채 내지 열두 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서 단 세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야만스러웠고 서로 미워했으며 덫으로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다. 거의 선사시대 원시인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가까운 삶이었다. 쐐기풀이 버려진 집들의 주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조건은 전혀 희망이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하물며 덕을 추구하며 살아갈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공기까지도. 옛날에 나를 맞아주었던 건조하고 난폭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미풍이 불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같은 것이 저 높은 언덕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 소리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못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진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샘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은 풍부하게 넘쳐흘렀다. 그리고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그 샘 곁에 이미 네 살의 나이를 먹었음직한 보리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나무는 벌써 무성하게 자라 있어 의문의 여지없이 부활의 한 상징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베르공 마을에는 사람들이 노동을 한 흔적이 뚜렷했다. 사람은 희망을 가져야만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허물어진 집들을 치우는 한편, 무너진 벽들을 모두 부수고 다섯 채의 집을 다시 지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의 수는 28명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네 쌍의 젊은 부부도 있었다. 산뜻하게 벽을 바른 새 집들 주위를 채소밭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채소밭에는 이것저것 섞여 있었지만 가지런히 심은 야채, 꽃, 배추, 장미꽃나무, 부추, 금어초, 샐러리, 아네모네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부터 나는 길을 걸어서 갔다. 우리들이 이제 막 빠져 나온 전쟁은 아직 삶의 완전한 개화(開花)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변화는 일어나 있었다. 낮으막한 산기슭에는 보리와 호밀이 자라고 있었고 좁은 계곡 바닥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역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만으로 족했다. 내가 1913년에 보았던 폐허의 자리에 지금은 잘 단장된 아담하고 깨끗한 농장들이 들어서 있어서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옛날의 그 샘들은 숲이 머금고 있었던 비와 눈에서 물을 받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샘물로 물길을 만들었다. 단풍나무 숲 속에 있는 농장마다 샘물이 흘러들어 융단같은 박하잎 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을은 조금씩 재건되었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 주었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가게 된 뒤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변한 옛 주민들, 그리고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빚을 엘제아르 부피에에게 지고 있었다.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힘만을 갖춘 한 사람이 홀로 황무지에서 이런 풍요한 땅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이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가져야만 했던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낼 줄 알았던 그 소박한 늙은 농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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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9.2010 청소년부 2010년 가을 소식
    안녕하세요, YM PTA를 섬기는 안 영남입니다. 10월의 YM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Worship(예배)9/19    Chang Lee JDSN9/26     Pastor, Se Jong Won10/3     Kyung Bin Im 집사님께서 말씀을 전해주셨고,10/10  오는 주일에는 Jamie Kim JDSN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특별히 이번 주일은 6학년들을 위한 Welcoming Party가 예배 후 청소년부 예배실에서 있을 예정입니다.부모님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또한 Welcoming Party를 위해  음식을 준비해 주시는학년별 Room Mother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Room Mother:   Boys ................                 Girls..................                         6th          배 미화               김 정원                                                    7th          류 지숙               손 혜원                         8&9th      윤 용란               김 희애                         10th        안 경화                Grace Park                         11&12th   안 금하               정 경원 -Lunch for YM: 방학동안 아이들의 친교와 단합을 위해 점심을 준비한 것이 좋았다는 부모님들의 의견으로10/17부터 부모님들께서 순서를 정해 도와 주시겠습니다.방법은 한 아이당 $30(3개월분)씩 Room Mother께 주시면 매 주일 순서이신 학년 부모님들께서 음식을 만드셔도 되고,pizza나  sandwich를 사오셔도 됩니다. 순서를 연락해 주시는 분으로 안 금하 자매님께서 , 점심 헌금 관리는 안 경화 자매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이를 위해 수고해 주실 모든 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Friday Night: 매 주 금요일 저녁 7:30에 있는 모임으로 12명에서 16명 정도가 모여 찬양, 기도, 말씀(김 문환 형제님께서 격 주로 말씀을 전해 주심) ,그리고 게임을하며 친교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이들의 참여를 권해 주시고, 간식준비나 Ride가 필요할 때, 도움을 부탁드립니다.송 지연 사모님께서 간식 순서 연락으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Small Group Teachers: Boys................                                   Girls...................                                    6&7th             김 문환                                 안 영남                                    8&9th              Jeff Lee                                이 현진                                     10, 11&12th     Ken Kim                                이 현옥Joseph Kim 형제님과 심 향 자매님께서 선생님으로 섬기실 예정으로 아이들의 반 조정이 다시 있을 계획입니다. Small Group 교재로는 Sena를 사용하며, 부모님들께서는 매 달 구입하셔서 ($4) 아이들의 QT(Quiet Time)하는 습관이 만들어 지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디모데 후서 3:16 마지막으로, YM Room을 Paint하는 날짜가 변경되었음을 다시 알려 드립니다.Grace Kim 자매님의 e-mai에서와 같이 주일인 내일(10/10) 오후 Clean-up을 하고, 전문 painter가 10/13&14 와서 paint하는 것으로, 시간이 되시는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주일 Clean-up을 도와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항상 기도해 주시고 YM을 위해 수고해 주시는 부모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YM PTA 안 영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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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5.2010 구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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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4.2010 북가주 농아교회 소식입니다.
    우리교회가 지원하는 북가주 농아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백남원 목사님께서 소식을 보내오셨습니다.청각자애인을 위한 미국에 몇개 없는 귀한 사역입니다.  북가주 농아교회는 on-site 에서 주일날 한어부 예배와 같은 시간에 농아교회 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립니다.백목사님은 중독치유사역 (도박, 마약, 알코홀) 에도 오랫동안 몸담아 오셨습니다. (http://www.dandobakusa.org/)  근처에 중독치유의 도움이 필요한 분을 아시면 백목사님께 연락드리세요.성도여러분의 기도와 뒤에서 늘 조용히 베풀어 주시는 도움의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이 넘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농아교회를 향한 새누리교회의 기도와 후원에 항상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10월달에는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저희 교회도 여러 행사가 있기에 다음과 같이 기도를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1. 이번 토요일 10월 9일에는 농아 사회의 가장 큰 행사 중의 하나인 Deaf Expo가 플레젠튼에서 열릴 예정입니다.저희 교회는 베이지역의 다른 농아교회들과 함께 부스를 임대하여 Deaf Expo에 참석하는 농아분들에게 복음을 전할 예정입니다. 오전 8시에서 6시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 저희 북가주 농아교회는 Modesto Deaf Church와 함께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복음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저희 부스를 방문하는 농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 분들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http://deafnation.com/deafnationexpo/ 2. 또한, 10월 15일부터 17일까지는 서부지역 농아교회 연합행사인 남자 교인 수련회가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저를 비롯하여 4명이 참석하고자 합니다. 이번 행사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잘 진행되어 저희 교회 형제님들은 물론이고 참석하신 모든 형제님들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해 주시기를 기도 부탁드립니다.(첨부화일을 참조해 주세요)   WCDMR_of_2010c2.pdf 3. 지난 1988년 1월 19일날 새누리교회의 후원으로 시작된 도박중독 치유와 예방 세미나는 로스앤젤레스와 아틀란타에서 제 2회와 3회를 각각 마치고, 지난 4월 18일에는 상항 구세군 한인교회(오관근사관님)에서 마약과 알코홀 중독을 포함한 '회복축제' 세미나를 가진 바 있습니다. 도박중독되신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이 마약이나 알코홀등에도 중독되어 있으므로 저희 북가주 단도박모임은 이제부터 모든 중독-도박, 알코홀, 마약, 인터넷등-에 대한 예방과 치유를 위한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이미 CARE Addiction Recovery and Prevention Center란 명칭으로 Incorporate을 마쳤으며, IRS로 부터 Tax ID 넘버도 받았습니다. 현재 주 세무국과 IRS로 부터 비영리 단체 인가를 위한 서류를 준비중에 있으며, 이번 주 내로 서류를 보낼 예정입니다. 우리 교포사회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암과 같은 존재인 각종 중독을 퇴치하기 위한 비영리단체가 설립되어 비참한 삶을 사는 중독자와 그 배우자, 그리고 그 자녀들을 도울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새누리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저의 사역의 지경을 많이 넓혀 주셨습니다. 이 사역이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사역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에, 기도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전도구제부를 비롯한 새누리교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주 예수 안의 동역자,백남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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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3.2010 [유아, 유치부] 이렇듯 귀한 사명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들과 눈을 맞추시며 하늘의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고 한 명 한 명 꼭 안아 주시던 영화 속 한 장면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근한 카리스마에 그 곳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엄숙한(?) 표정을 짓는 것이 어찌도 귀엽고 가상한지 가슴이 뭉클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매 주 만나는 새누리의 아이들 역시 영화 속의 아이들 이상으로 천진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장난꾸러기도 있고, 고집장이도 있고, 울보도 있고, 부끄럼장이도, 꽃미남도 있고, 멋진 톰보이도 있습니다. 한 아이, 한 아이 나름의 개성과 아름다움으로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의 마음을 빼앗아가는 매력덩어리들입니다. 모두 아시겠지만 예배는 두 session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9시 45분부터 11시 15분까지는 한어부 선생님들과 중고등부 봉사자들이, 이후 12시 45분까지는 영어부 선생님들이 찬양, 게임, 작업, 성경 말씀 듣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수님과 성경과 교회에 대해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 주 아이들을 위해 기도와 수고로 섬겨주시는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림은 물론이요 아침 단잠을 뿌리치고 일찍부터 나와 어린 동생들을 안아주고 찬양을 함께 해주고 풀칠, 가위질을 해 주며 놀아주는 큰 언니 오빠들의 모습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매 주 데려다 주시는 부모님들의 수고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Amazing Creation”, 이 어린 영혼들이야말로 온 교회가 감사하며 소중히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놀라운 주님의 선물입니다. 이렇듯 귀한 사명을 부족한 저희 모두에게 맡기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능히 감당할 능력주시길 간구합니다. 아이들을 지키시고 인도해 가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심을 항상 기억하며 애쓰시는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이 지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고 5살 유지 어린이의 회복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유아/유치부 손 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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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2.2010 에바다 목장 이야기
     안녕하세요. 9월25일 (토) 에바다 목장모임은 류성욱/류호정 가정에서 6시에 모였습니다. 이날 저녁 정성껏 준비한다고 만든 음식들이 추석이미지와 맞지 않아 내심 걱정했었는데요. 하세현 자매님께서 싱싱한 부추를 가득넣고 맛있는 잡채를 정갈하고 푸짐하게 만들어 오셔서 더욱 즐거운 식사가 되었습니다. 이날은 에바다 목장에 새로 오신 가정들도 함께 했습니다. 황성배 형제님/김흥연 자매님 가정 (딸 니키(12학년)과 아들 엔디(8학년))과 최진 자매님 가정 (아들 동희(5학년) 딸 첼시(4학년))이십니다. 황성배 형제님가정은 새누리 공동체를 오래전 부터 섬겨 오셨고요. 최진 자매님 가정은 천주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계십니다. 앞으로 목장 식구로써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어 기쁘네요. 환영합니다.  식사를 마친 후 준비한 찬양을 드렸고요. 장재중 형제님의 인도로 이상학 목사님의 8복강해 말씀을 가지고 마음과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나눔 중에 여덟가지 복 중에서 하나라도 갖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는데요...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영생의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믿는 자녀들에게 이 여덟가지 복들을 안 주실 이유가 없다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여덟가지 복들을 한꺼번에 다 주시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겠지만, 목사님의 설교 말씀처럼 내 상황에 맞는 복 한가지라도 받으면 그 복이 자라고 번성하여 그 다음 복들을 물고 물어, 결국에는 여덟가지 복을 다 누릴 수 있게 된다는 복의 비밀도 나눌 수 있었는데요. 단지 내 앞에 놓아 주신 여덟가지 복들을 내 죄로 가려서 찾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없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 눈이 어두워 복을 찾지 못하고 더듬더듬 헤메일 때, 내 손에 복이 닫을 수 있도록 늘 돕고 함께하는 목장식구들과 새누리 교회와 같이 믿음의 공동체가 있다는 것에도 감사하게 되네요. 이날 나눔 중, 말을 절제하는 것이 화평케 하는 자로써 필수항목이라는 목사님 설교 말씀에 모두가 공감을 하면서, 너무 멀리 보지 말고 가까운 가족/이웃에게서 부터 실천하자는 다짐이 있었고요. 나눔을 통해 <<하나님을 위한 삶>> (내가 주체가 되는 삶)에서 부터 <<하나님이 원하는 삶>>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 되어지는 저희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 성경암송은 지난번 모임때에 이어 주기도문 암송이었는데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외어 발표하는 것을 보고, 어린 영혼들을 기억해 주시고, 만나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전에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습관 (하나님을 찾는 습관)이 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램해 봅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가정은 (7가정과 초대손님 1분) 장재중/장인숙 가정, 송은정/ (형제님은 출장 중)가정, 김동명/하세현 가정, 김주현/김정원 가정, 황성배/김흥연 가정, 최진 자매님 가정, 진정현 자매님 (초대손님), 류성욱/류호정 가정 입니다. 참석하지 못한 가정은 (2가정) 박세일/배미화 가정 (몸살), 정창훈/이현진 가정 (동문 골프회) 입니다. 각 가정마다 나눈 기도제목입니다. 이웃의 필요를 위해 기도할 때 나의 필요를 더욱 더 세심히 살피시고 체워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 각 목원/가정 기도제목 생략 > 다음 목장모임은 장재중 형제님/장인숙 자매님 가정에서 모입니다. 교회 행사들이 겹쳐 있어서 날짜를 조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정해지면 다시 알려 드리겠습니다. 각 가정마다 <<화평케하는 자>>가 되셔서 하나님이 주신 나머지 일곱가지 복들을 꾀어가는 참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에바다 목장류성욱/류호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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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Oct 01.2010 [교단일기] 제빵왕 김탁구
    제빵 왕  김탁구                                                                                                      황희연(세종 한국 학교) 온 나라가 폭염주의보로 후끈 달아 오른 8월,마냥 바라보던 솟대와 멱 감던 실개천이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열대야로 밤을 낮 삼아 한 바퀴 돌아본 동네에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그 모습은 낯선 도시로 탈바꿈되어 솟대가 있던 곳에는 빌딩이, 실개천은 메워져 상설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더위를 피하던 큰 느티나무는 청남대로 떠나고 그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팔각 정자가 들어 와 있었다.다음 날, 들른 상당 공원에는 다니던 여학교가 이전을 해서인지 추억을 찾기에는 어설프고, 동아 극장이 없어진 후 처음 들어선 도민 탑만 덩그러니 보이며,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였다는 큰 표지판만이 눈길을 끌었다.학교 뒷길(지금은 상당로)을 따라 한참 올라가 수암골 쪽으로 가니, 한참 뜨고 있다는 드라마 촬영 일이 잡혀 있다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덕분에 나도, 드라마 촬영지를 구경하며, 달 동네이었던 이곳이 벽화로 단장되며 관광지로 각광을 받는 새로운 모습을 보니 신기할 따름이었다.팔봉 제빵 점(1947년부터)안으로 들어가 보니 드라마에서 언급된 빵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올 적마다 가격이 다르다는 관광객의 푸념은 자주 방문을 했다는 의미인가 보다.   팔봉 제빵 점에서 꿈을 만들어 가는 주인공 김탁구, 이번 워크샵 기간 동안 나는 김탁구 같은 한 청년을 만났다.키르키즈스탄 이라는 생소한 나라에서 온 고려인 3세, 김 블라디미르.올해 나이 스물 셋, 생글 생글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앳된 이 청년은 교사 워크샵에 어떻게 온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한국어가 어줍었다.「한국을 찾아라」역사 문화 책을 소개하고 시범 강의를 한 후, 시간만 되면 옆으로 와 특히 역사에 대해 묻던 내 아들 나이의 이 청년은 오랜 민족 분쟁으로 인해 근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나라에서, 오전에는 사립 학교에서 초등 학생을 대상으로, 낮에는 키르키즈스탄 국립대학교에서, 저녁에는 한국 교육원에서 고려인 보다 성인 현지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한국의 문화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로 인하여 급속도로 전파되었지만, 역사는 교육 하기에 현실적이지 못한 교재뿐이라며, 역사의 뿌리 없는 문화만 날 뛰어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걱정이다.한때 한국에 대한 멋있는 꿈 때문에 한국인 기업에 취업을 했었는데, 키르키즈스탄 문화 속에서 자란 자신과 회사는 거리가 너무나 멀어 실망만 하고 떠났지만, 대신 대단한 매력이 있는 한국어 교사로서 미래의 꿈을 만들며 펼쳐가고 싶다며, 이름 블라디미르는 세상의 주인이란 뜻이라고 귀띔한다.세 곳에서 바쁘게 한국어 강의를 하면「배우자 후보 순위 1위?」라는 질문에, 오죽하면 세 곳을 돌며 강의를 하겠느냐며 반문을 한다. 생계 유지가 어려워 남자가 하지 않는 직업 중 하나가 바로 한국어 교사이며, 여자 친구 만들기도 힘들고 결혼은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며 불안한 미래라고 말한다.그렇지만, 고려인으로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갖고 있다고 했다. 높을 탁(卓), 구할 구(求) 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배 부른 빵을 만들기 위해 온갖 시련을 견디어 내며 명인의 자리까지 오른 이 시대 제빵 업계의 그 분처럼, 자신의 뿌리의 혼이 담긴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생계 유지조차 힘든 현실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이름이 실현되는 그 날이 건강한 이 청년 블라디미르에게도 곧 올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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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omSep 29.2010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납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납니다   세상은 두부 한 모만큼의 사랑이 있기만 해도 많은 사람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만난 사람에게는 조금 더 큰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조금 더 큰 사랑에 의해 사람들은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조금 더 큰 사랑에 의해 우리의 가정과 일터 세상이 즐거운 곳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사이에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나고, 미움을 심으면 미움이 나옵니다. 논리를 심는 사람은 논리를 거두고, 고집을 심는 사람은 고집을 거두며 복수를 심는 사람은 복수를 낳습니다. 사랑을 심어야 사랑이 나옵니다. 또 사랑은 심지 않으면 나오지 않습니다. 미움과 다툼은 잡초처럼 저절로 나지만 사랑은 심고 가꾸어야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미움은 심지 않아도 스스로 나서 사람들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사랑은 심고 가꾸는 사람이 없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사랑의 열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새로운 희망을 심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사명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중에서 ----   오늘 아침에 지인이 보내주신 좋은 글을 읽다가 혼자 만 읽고 지나치기가 너무 아쉬워 교회 나눔 방에 올려 드립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머리로는 다 이해를 하고, 마음도 있지만 그것을 지속적으로 우리들 삶의 일부분이 되어 실천 하는 일은 쉽지 않음을 저희 모두가 고백합니다.   화초와 동물을 좋아하는 저는 화분 하나부터 시작한 취미가 십여년을 지나오는 동안 한때 1000개에 가깝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냥 마구 방치/방사가 아니라 항상 보기 좋게 정리 정돈하며 가꾸는 일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정성과 노력이 끝도 없이 요구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누가 시켜서 해야 하고 억지로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또 집에는 12년 할머니 세퍼드부터 말썽꾸러기 Boxer 남매, 치아아와 강아지, 고양이 두 마리, 어찌 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 될 수도 있지만 늘 저의 마음속에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보람이 있음을 감사 드립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무한 하신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우리들도 그 은혜를 가끔은 묵상하고 음미 하면서, 우리들도 그 사랑을 심고, 가꾸며, 삶 속에서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이 아침에 소망하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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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dminSep 28.2010 [친교봉사부] 새누리 전교인 야유회를 마치고
    하하하~호호호~깔깔깔~ 왁자지끌! 영차!영차!해마다 9월 중순 쯤이면 전 교인 야유회가 교회 가까이 위치한 Mountain View Cuesta Park에서 이루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늘 하던대로 친교봉사부 주관으로 9월12일에 이루어졌으나 이전과는 여러 모로 많이 달랐다.먼저 8월 말부터 친교봉사부의 모임이 잦아졌고,그 속에서 더 많은 새누리 식구들이 참여하고, 함께 참석하는 자녀들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수 있도록... 하는데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리하여 예년과 달리 올해는 유난히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았던 것 같다. 풍선으로 각종 동물 모형 만들기, face painting, volleyball game (부모/자녀), 줄다리기 등등...또 눈에 띄는 특이점은 해마다 야유회가 있는 날이면 각 목장마다, 가정마다 야유회에서 나눌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아침을 보내었는데… 올해는 친교봉사부원들이 그 일을 대신하여 전 교인들은 음식 준비 수고에서 벗어나 좀 더 홀가분한 몸과 마음으로 야유회에 참석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불고기와 꽁치구이, 오뎅볶음, 김치와 샐러드 등 많지 않은 가지 수지만 푸짐하게 서빙하면서 한가위 보름달 만큼이나 풍성한 인심을 나누었던 것 같다.그 외 지글 지글 짝짝~, 보글 보글 짝짝, 울퉁 불퉁 짝짝~ 등 각종 듣도 보도 못한 박수로 좌중을 휘어잡으면서 능수능란하게 전 교인들을 포크댄스로 이끌어, 함께 파트너 하신 분들끼리 두고 두고 나눌 뒷이야기거리를 선사한 '레크레이션 스타' 탄생과 주일 오후 주린 배를, 곧 맛보게 될 맛난 음식을 그리며 긴 배식의 줄을 참아오던 분들에게 너무나 가혹하게도 젓가락과 접시가 동이나 짧지만 인고의 시간을 보내도록 했던 당혹감은 아마도 올 야유회 추억거리의 백미가 되지 않을까...생각해 본다.화창한 날씨, 뛰노는 아이들, 섬기는 손길들...오랜만에 믿음의 형제 자매들 모여 즐겁고, 유쾌한 주일 오후를 보냈으리라 믿는다.- 친교봉사부 김 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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