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로서의 교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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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58회 작성일 09-09-07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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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의 고백을 어떻게 받아드리나를 놓고 조그만 교회는 둘로 나눠져갔다.
반대파의 지론은 "좋습니다. 목사님을 용서합니다. 하지만 이분이 더 이상 목회를 하시기에는 도덕적 권위가 훼손되었습니다. 고로, 사임하셔야합니다." 였다.
반면에 목사님 옹호파는 "죄없는 인간이 있습니까? 게다가 목사님은 한번의 실수는 있었지만 스스로 고백하셨습니다. 여지껏 성경에서 배운 것이 무엇입니까? 용서와 사랑아닙니까? 이런 것 하나 못받아들이는 곳이 교회입니까?" 라고 주장하였다.
언성을 높이고 다툰일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갈등과 반목은 심해져 갔다.
어느날 나는 목사님 반대파의 나이가 좀 드신 집사님들의 부탁으로 감리사님 집으로 동행하게 되었다.
목사님의 "비행"을 감리사님에게 알리고 중재를 요청하려는 면담이었고, 나는 통역으로 같이 간 것이었다.
솔직히 발길이 무거웠고 피하고 싶은 면담이었으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집사님들의 부탁이라 거절을 못하고 같이 같던 것.
자초지종을 조용히 들은 나이가 지긋한 감리사님은 커피를 조그만 찻잔에 부어서 모두에게 권하였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여러분들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목사님의 행동은 잘 된 것은 아니나,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후 감리사는 결론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성탄은 용서와 화해를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목사님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길 바랍니다."
성탄이 용서와 화해를 상징한다는 말은 인상적이었다. 전에는 못들어 본말이었다. 다른 것은 다 잊혀져갔으나 그 말만은 나에 뇌리에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후 나는 나름대로 마음에 무거운 짐을 느끼며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었다.
젊었을때의 생각이었지만 그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뒤숭숭한 시간이 1년쯤 지난후, 그 목사님은 교단의 중재로 타주의 어느 교회로 파송을 받아 가셨다. 그것으로 작은 교회를 힘들게 했던 사건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나온 교회는 얼마 안가서 교회 문을 영영 닫고 말았다...
그때도 그랬고 그 후에도 그랬다.
교회에서 겪는 모든 힘든일들은 늘 교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이었다.
교회 밖에 사람들이 교회를 공격하고 핍박하는 일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못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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