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빗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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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90회 작성일 11-07-20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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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매님이 제목 운을 그리 뜨셔서 저도 이렇게...)
이글의 제목을 알아 본다면 당신은 7080 세대이겠지요.
30 년전 이민초기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아직도 있는 어느 조그마한 장로교회에 다닐때에 일이다.
가수 이상렬이 갑자기 교인으로 그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어느 교인의 동생과 결혼을 하여 뉴욕에서 빈손으로 부부가 도착하여 그집에서 소위 얹혀지내게 된것...
나는 연예인과 성가대 옆자리에 같이 노래하게 된 것도 신기하였지만, 더 신기한 것은 이상렬씨는 악보를 못 본다는 것이었다.
같이 테니스도 치며 친해진 후, 악보를 못보며 어떻게 가수생활을 했냐 물어보았더니, 작곡가가 불러주면 따라서 한다는 간단한 대답이었다.
이씨는 당시 복잡한 삶의상황을 탈출하려고 절박한 노력중이었다 . 도박과 마약으로 모든 재산을 이미 날렸고 새출발을 해보려 안간힘을 해보는 것이라는 것은 그도 비밀시 하지않았다. 그의 아내는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다.
그의 아내는 <산장의 여인>,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 주옥같은 노래를 만드신 작곡가 이재호씨의 딸이었다.
그는 신앙의 초보였다. 우리는 몇집이 어울려서 같이 주일오후에는 성경공부를 우리끼리 하고, 테니스를 치고, 저녁을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해먹고, 참 친하게들 지냈다. 정말 "황금의 일요일" 이라고 그렇게 우린 불렀다. 이상렬씨 부부도 같이 어울려서 잘 지냈다.
얼마후 그 부부는 조그만 꽃집을 샌프란시스코에 열어서 2년정도 운영하다가 결국은 접고 LA 로 떠났다.
그후로는 소식이 끝겼고, 가끔 신문에서 기사를 읽는 정도였다.
한국으로 가서 부자가 되었다는 확인 할 수 없는 소문도 들었고...
그리고 근 30년이 훌쩍 지났다.
지난주 인터넷 기독교신문을 읽다가 내눈을 확 잡은 타이틀이 있었다. 가수 이상렬 장로 초청 간증집회.
아, 이분이 장로님이 되었구나!
그리고, 그 동영상을 클릭하여 보게되었다. 30분을 꼼짝 않고 그분의 간증을 뚫어지게 시청하였다.
두가지를 크게 느꼇다.
첫째는 그의 신수가 너무 훤해진 것이다. 당시 그분은 얼굴이 참 어두웠던 것으로 기억난다. 쓸쓸하게 웃고, 얼굴이 어딘가 안되보였었다. 지금 그분은 얼굴이 참 빛나보인다.
두째는 주님이 말씀하신 "나중 된자가 먼저된다" 라는 진리이다.
그때에 이상렬 씨가 지금의 장로가 되어 뉴욕으로 전도집회를 다니리라 누가 꿈이나 꾸었겠을까...
그분의 간증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생활과 그 교회를 간증 속에서 자주 언급하였다. 나 또한 그 삶을 옆에서 같이 살았기에 남에 일같이 들리지가 않았다.
이상렬 장로님, 정말 예수 잘 믿으셨습니다! 언제 한번 만납시다.
집회 동영상 링크
http://youtu.be/pvBgMUsZPjc
http://youtu.be/BvpKRdIsL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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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내려놓고 강권적으로 개입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시는 장로님의 모습이
donkey 님의 표현대로 참 밝습니다.
70 년대 한국에서의 화려한 인기 가수에서 도박으로 인생의 나락 끝자락에 있다가
돌아온 탕자로 감격스럽게 주님을 다시 만난 그 분이 donkey 님과 같은 성가대 생활을 했다니
donkey 님께서 더욱 기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수가 악보를 잘 보지 못한다는 고백은 저에게 참으로 위안이 되네요.
저도 성가대를 섬기고 있지만 악보를 그렇게 잘 썩 보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