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의 DEC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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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13회 작성일 11-01-2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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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등학교 다닐때인 70년도만해도 우리반안에는 기독교인인 학생은 드물었다.
지난 40년동안의 한국 기독교의 숫자성장은 정말 눈부시다.
그러나 그 전성기는 끝난 것인가.
한국정부의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동안 기독교인의 증가 추세는 감소로 돌아섰다한다.
반면에 개토릭과 불교는 현재 꾸준하고 왕성한 성장세이라한다.
어느 목사님의 추측은 개신교에서 실망하고 빠져나간 이들의 타종교 수평이동이 큰 몫을 하였다는 추측이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얼마전 타계하였을때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그분의 장례식 모습을 TV 에서 보았다.
조종이 덩그렁 덩그렁 천천히 울리며 그분의 유해를 싣은 영구차가 명동성당의 좁은 길목을 빠져 나갈때
가도를 메운 수천명의 조객들은 슬피 울며 큰절을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자그마한 체구와 조용한 말투의 할아버지가, 명동성당의 조그만 방에서 평생을 수도하면서 사신분이 왜 이리도 큰 족적을 남긴 것인지...
고도의 경제성장을 추가하던 7080 즈음에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적잖않다.
나도 어린시절을 부평공단이 생기던 시절 바로 코앞에서 살았기에, 시골에서 상경한 십대또래의 소위 "공순이"들이
회사 기숙사에 살면서 산업화에 부속품으로 밤낮없이 돌아가며 기계같이 살던 것을 목격하였다.
그들에게 억울한 일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들이 악덕업주와 공권력에 항거하고 투쟁하다 쫒길때는 명동성당으로 피신을 하곤 하였다. 또, 민주화 운동으로 쫒기는 몸이된 사람들도 가장 안전하고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찾아간 곳은 다름아닌 카토릭이며 명동성당이었다.
마치 구약에 나오는 도피성같이...
그들이 어느 개신교 교회로 피신하였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고, 아예 가능치도 않았다.
어느 대표적인 목사님이 이들의 챔피온 되어 준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모두들 잠잠하였다. (그중에는 민권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목사님들도 간혹 있었지만 기성 기독교에서는 대부눈 찬시선을 보냈던 것으 기억난다.)
그들을 체포하러 온 경찰과 군인에게 명동성당의 문앞에서 단연히 몸으로 맞선이는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들에게 굴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약자들을 보호하여 주었다.
정말 영화같은 장면이 아니겠는가.
얼마전 기독교 윤리를 표방하는 구룹의 대기업의 계약직 직원들이 해고를 당하여 그 사정을 호소하기 위하여 구룹총수가 장로로 시무하는 S 교회문앞에서 시위를 오랬동안 벌인적이 있다. 교인 어느 누구도, 담임목사님도 그들을 따듯하게 대하지 않았다한다. 오랜 냉대끝에 그 시위는 그만 제풀에 없어졌다. 최근 그 S 교회는 2,500억원 ($250,000,000.00) 의 건축을 시작하였다. (산호세에 번듯한 집을 500채 살수 있는 금액이고, 만일 은행에 적립해 놓느다면 연3%의 이자로만 7,500 세대의 빈민 가구의 빈민탈출을 돕거나 , 불우한 장학생을 키울수 있는 금액이다.)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분인 이동원 목사님이 지난주 은퇴하였다. 그분의 고별설교에서 그의 다섯가지 참회를 말하였다. 나는 결코 그것이 그분 자신의 겸손을 나타내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분이 잘못한 5 가지의 "죄목"이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그분이 그것을 원통하게 여기고 있고 후진들이 이것을 repeat 하지 말기를 원해서 한 고백으로 믿는다.
모든 목회자와 교인인 내가 이 죄목을 깊이 새기고 거울로 삼는다면 기독교의 앞날은 밝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지 않는한 사회의 등돌림 당하는 기독교의 내리막 길은 계속 될 것이다.
다섯 가지 참회
1. 조국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방관자로 살아온 일과, 지도하던 청년들에게도 행동을 촉구하지 못한 일
2. 목회 마당에서 마음으로 소외되고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를 하려 했으나, 그들의 눈물과 아픔에 제대로 동참하지 못한 일
3. 바로 살아야 한다고 설교하면서도 제가 그대로 행하지 못하여 언행일치의 모본을 보이지 못한 일
4. 올곧게 살아가지 못한 성도들, 교회 내 부유한 기득권층에 대하여 그들이 상처받을 것을 두려워해 회개를 촉구하고 예언자적인 설교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일
5.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목회하는 동안 나 자신의 부주의한 말과 경솔한 행동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섭섭하게 했던 소소한 일상의 모든 부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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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admin님의 댓글
admin 작성일
deborah 님, 추천해 주신 영화 Romero 를 오늘 보았습니다. 참 좋은 영화 이더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omero 신부가 길가에서 난폭한 군인들에게 옷을 강제로 벗기웠지만 침착하게 동네주민들에게 미사를 시작하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더군요. 권력의 총부리 앞에서 그보다 더 높은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고 항거한다는 것은 멋진일입니다.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되새겨 주는 명화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동원 목사님의 진심과 용기를 존경합니다.

deborah님의 댓글
deborah 작성일
비록 로메로 신부 같은 분들이 속했던 남미의 정치적 상황들 속에서 해방신학이 발아하기는 하였지만, 이 영화에서 주는 감동은 어떤 특정 신학을 넘어선 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