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칼럼] 마중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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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45회 작성일 09-09-06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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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물
황희연(2009-7-8)
동네에 공동 우물만이 있던 때 그래도 우리 집은 펌푸가 있었다.
가뭄에 우물 물이 말라도, 장마에 흙탕물이 우물 안에 고여도 우리 집 펌푸는 끄떡 없어 동네 사람들이 물을 길러 오곤 했었다.
우리 집 펌푸 물은 여름에는 굉장히 차서 수박을 담가 놓았다 먹으면 이가 시릴 정도였고, 학교 갔다 와서 한참 퍼낸 물에 흑설탕 물이나 탱가루를 넣어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등의 땀이 다 식어 시원해졌다.
겨울에는 물에서 김이 모락 모락 나서 빨래를 해도 그리 손이 시리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물을 펌푸질 하고 오래 있으면 퓨~하고 물이 빠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럴 때를 대비하여 펌푸 옆 항아리에 물을 항상 준비 시켜 놓았었다.
안 채 할아버지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펌풋가 는 누구나 항상 조심스러워했다.
깨끗하게 사용하라고 걱정이시고 물 아끼라고 걱정이시던 할아버지는 특히 항아리의 청결을 강조 하시고 신성시 하여 누구도 항아리에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물이 빠져서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할아버지께 허락을 받거나, 아니면 손수 항아리의 물을 퍼서 펌푸 머리에 부으며 펌푸질을 해 주셔야만 물을 사용할 수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이 물을 마중 물이라고 부르셨다.
한 바가지의 물이 땅 속의 물 세계로 들어가 물을 데리고 오려면 부르러 가는 물이 신성해야 한다고 할아버지께서는 늘 말씀 하셨다.
부르러 간 물이 깨끗하지 못하고 신성치 않으면 땅 속 물 세계에서 땅 위로 따라 오지 않거나 더러운 물만 데리고 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항아리의 마중 물은 청결하게 관리 되었고, 신성시 되어 우리 집 펌푸 물은 가뭄에도, 장마에도 변함없이 물이 나오는 것이라고 하셨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잊고 있던 마중 물이 생각났다.
정수기의 온도 조절기가 고장이 나서 온수인지 냉수인지 구분 없이 나와 오늘같이 더운 날, 등을 오싹하게 했던 그 펌푸물이 그리워 물병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흑(황) 설탕 물을 넣어 마시니 그 맛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할아버지 말씀이 들렸다.
「마중 물 같은 사람이 될 때 진짜 인간이 되는겨,
항상 몸과 마음이 청결하고 행동거지(行動擧止) 반듯하여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어야 하고 부른 사람들을 보다 더 넓은 곳으로 인도 해서 서로 덕(德)을 세워 주는 사람이 인간인겨, 마중 물 겉게 알 것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도 하시는 말씀에 꼬박 꼬박 대답을 해 드려 칭찬을 듣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잊고 있었다니……
예배 중에 단기 선교 팀을 위해 기도를 했다.
한 바가지의 마중 물이 떠 올랐다.
지금은 버려질 수도 있는 한 바가지의 물이지만 이물이 땅 속 물의 세계로 들어가 많은 물을 이끌고 나오 듯, 파송 되는 적은 수의 단원들이 어둠의 세계로 들어가 그 곳에 있는 많은 무리들을 불러 모아 그 사람들을 빛의 세계로 데려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현장으로 직접 투입되는 마중 물은 아니더라도, 기도로 마중 물 역할을 감당하여 시원한 펌푸 물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 일렁이는 여름이다.
「충성스런 사절은 그를 보내 사람에게 무더운 한 여름의 시원한 냉수 같아서 자기 상관의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지혜의 글 2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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