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식사 기도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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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132회 작성일 12-06-09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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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들으시면 혀를 차시겠지만 나는 식사 기도 만큼은 짧은 기도가 좋다.
배에서 꼬르르 하는 것을 참으며 긴 식사 기도를 올리는 것 만큼 인간으로 하여금 육과 영의 상반된 기대와 추구 속에 이루어지는 모질고 잔인한 고문은 없다.
내 영은 주를 찬양하는데 내 육은 밥을 찬양하는 내 연약함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공복은 세계 평화도, 지구 온난화도, 북한의 비핵화 염원도 힘을 잃게 만들 만큼 강력하다.
옛날에 배는 고픈데 별다른 반찬이 없던 어느 날.
불판을 꺼내고 ( 내가 불판을 꺼낸다는 얘기는 그날은 고기를 먹는 다는 뜻이다. 준비된 다른 반찬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식구가 모두 테이블에 앉아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고 남편이 식사 기도를 시작했다.
구구 절절 이어지는 긴 기도 끝에 눈을 떠보니 그날의 유일한 반찬이었던 삼겹살은 다 타버리고 괜히 은혜로운 기도를 마친 남편에게 원망의 화살이 갔다. 이럴때 눈치 없기로 유명한 남편에게 식사 기도를 시킨 것이 잘못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딸이 어렸을 적 딸에게 식사 기도를 시키는 것을 좋아 했었다.
딸아이는 항상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 같이 “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세요. “ 라고 짧지만 인생의 모든 의미와 궁극적 간구를 담은 식사 기도를 드렸었다. 어렸을 적 작고 꼬물거리는 입으로 “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주세요. “ 라고 기도 드리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때 정말 나의 인생이 행복하고 건강하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은 11 학년이 된 딸아이 이제 무엇을 기도할까?
테스트 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기도, 더 예뻐지기 원하는 기도, 가지고 싶던 것들 손에 넣는 기도…
아마 예전에 뭉텅그려 행복하고 건강한 삶 속에 모든 것을 담던 그 어렸을 적의 기도 보다 더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을 것이다.
온 가족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식탁에 둘러 앉아 김이 모락 모락 오르는 밥과 준비된 식사와 함께 그날 하루의 교제를 나누며 드리는 평범한 식사 기도 속에 담겨 있는 진정한 감사의 깊은 뜻을 나는 세월이 가면서 진정으로 깨닫고 있다.
일용할 양식의 축복을 주신것, 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의 수고가 있었음을, 우리들의 식탁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살아 있는 성경임을, 착하고 성실하게 자라 희망과 보람을 부모에게 안겨주는 자녀의 감사함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님께로 부터 온 것 이었음을,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가족들이 그들의 둥지에서 다시 만나 내일을 기약하고 힘을 얻는 식사를 할 수 있는 환경과 처지를 허락 하심을, 이런 음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도 내 주변에 있음을, 육신의 병으로 맛있는 음식을 두고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그래서 하루 하루의 식사 기도는 내 삶의 은총과 축복들을 담아 드리는 믿음의 고백 이라는 것을 오늘도 삶속에서 배워 간다.
오늘 따라 바로 코 밑에서 올라오는 음식 냄새를 인질 삼아 눈치 없이 길게 길게 이어지던 남편의 식사 기도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며 기도 하던 오래전 딸 아이의 3 초 식사 기도가 참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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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백윤기님의 댓글
백윤기 작성일
김이 모락모락나는 맛있는 밥상을 상상케하는 신자매님의 글 "맛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백태곤 형제님도 이 글을 읽으시면서 뭉클하리라 생각됩니다.
자매님 가족의 같이 드리는 길고짧은 식사기도의 시간이 매일 이뤄지길요.
저도 길게 식사기도하시는 분이 기억납니다...
제가 청년때의 일인데, 한번은 몇명이 어는 장로님과 같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고려정이란 곳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장로님이신데 아주 특이하게 식사기도를 하셨습니다.
몇명이 한 table 에 같이 앉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일어나서 복도로 나가셔서 서서 길-게, 구약부터 신약까지 다 훌터 주시고 식사기도와 축복기도를 하셨습니다. 굉장히 길게 하셨지요...

sabby님의 댓글
sabby 작성일
늦은 저녁상을 정신없이 뒤로 하고, 두아이들 자는 모습까지 보고 서야 다시 늘어진 저녁 식탁을 치우러 섰는데...
자매님 글을 떠올리니 가슴 마저 뭉클해 눈물까지 흘렸네요...
놀란 우리 형제 " 알았어 내가 설겆이 할께..." 하며 주섬주섬 늘어진 수저, 젓가락을 집어 드네요...
이래 저래 참~ 참 더 없이 감사한 하루 입니다. 창밖에 큰~보름달을 보니 이런 소박한 행복도 못 누리고 있을 그 누군가들이 떠올라...마음이 울컥 합니다.
그리고 내일 하루 만이라도...그들에게도 작은 기쁨, 소망, 사랑 맛보게 해달라고 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