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Apr 05.2010
[여성컬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풍경
내가 서 있는 자리의 풍경 황 희연 이때만 되면, 연중 행사처럼 몸이 이상 하다.갑자기 일조량이 많아져 그 빛을 몸이 다 받아 내기 힘겨워서인지, 낮 시간이 길어져 그만큼 일 양이 늘어나다 보니 몸이 힘에 부쳐서인지, 아니면 겨우내 웅크리고만 있다가 활동이 많아지니 몸이 놀라서인지, 어째 튼 팔 다리 몸 전체와 오장 육부까지 개운치 않다.작년부터는 목소리까지 가라 앉아 꾀꼬리 같은 내 목소리(혹자는 때 까치 같은 이라고도 하지만)를 찾는데 열흘 이상이 걸리더니, 올 해는 원상 복귀할 생각이 없는지 벌써 달포 이상을 저음의 갈라지고 깨지는 목소리로, 말 하기 힘들고 듣기도 거북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이런 내 몸의 상태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주위의 분들은 좋다고 하는 처방을 다 방면으로 알려 주며, 시행 여부의 확인까지 챙겨 준다.그 중에, 한 청년 형제는 물을 자주 마실 것을 추천 했었는데, 요즘의 시대적 상황에 발 맞춰 이 메일로, 문자 메시지로「물 마시셨습니까?」을 수시로 보내 주며, 원활한 순환을 위해서 몸이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물」임을 누차 강조해 주었다.그런데,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물 마시기가 생각대로 전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습관적으로 물보다는 차를 더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것이었다.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다시 처방을 내려 주는데 차 한잔을 마시려면 물 한 컵,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물 두 컵, 처음 며칠은 착실하게 따라 했는데, 거기에 들락거리기가 귀찮고, 힘 들어져 차라리 커피와 차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 하게 되었다.그나마 마시던 물량이 더욱 줄어 드니 급기야 「목 마르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곤 했다.생명의 삶, 3월호의 순서에 의해 요한 복음으로 QT를 할 때 나에게 가장 부담을 주신 말씀이 십자가에서 하신 「내가 목 마르다 (요 19:28)」이었다.남은 사순절 내내 끊임없이 목 마르다 하신 예수님의 음성이 귀를 맴 돌고, 가슴을 두드려 나 조차도 목 마름을 느끼게 했는데, 주님께서는 왜 이 말씀을 기억하게 하셔서, 이런 부담을 주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런데, 고난 주간 동안에는 찬송가 136장이 또 나를 흔들었다.시도 때도 없이, 가사 절에 상관 없이 기억 나면서 읊조리게 된, 136장「거기 너 있었는가」.하루 이틀 지나면서「너」가「나」로 바뀌더니, 목 마르다 하신 말씀과 오버 랩이 됨을 깨닫는다.예수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오실 때,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하면서 환호할 때, 거기 나는 있었는가?부패와 타락으로 더럽혀져 있는 성전을 청결케 하시며 거룩한 분노를 표출 하실 때,거기 나는 있었는가?예수님을 모함 하기 위한 서기관들의 질문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귀한 계명을 주실 때, 마리아가 귀한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머리 털로 닦을 때, 유다의 음흉한 흉계가 오고 갈 때,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 하실 때,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교훈을 주시고, 발을 씻겨 주실 때,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고뇌에 찬 기도를 드릴 때, 유다의 입 맞춤으로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거기 나는 있었는가?대제사장 집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베드로가 말할 때, 로마 병정들의 멸시와 조롱 속에 사형이 확정될 때, 통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가실 때, 6 시간 동안 혹독한 고초를 당하실 때,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하실 때, 내가 목이 마르다 하실 때, 다 이루었다 하실 때, 그때 거기 나는 있었는가?해가 밝은 빛을 잃고, 주님께서 아리마데 요셉의 빈 무덤에 뉘일 때, 또 주님께서 새벽 미명에 그 무덤에서 나오실 때, 그때 거기 나는 있었는가? 오늘 주님께서 목이 마르다 하신 말씀을 부담 되도록 기억나게 하심은, 지금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일깨워 주심이다.거기에 들락거리기가 귀찮고 힘 든다고, 정말 필요한 물을 마시지 않아 제발 물 좀 달라고 몸이 아우성인데, 있어야 할 곳에서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치 못 하니, 주님께서 안타까움에 부담을 주셨으리라.나를 향한 주님의 애끊는 목 마름에 긍휼의 부담을 알게 하심이리라.주님을 향한 나의 무감각적, 무성의적, 무열정적, 무자유인으로서의 신앙을 회복 시키시기 위한 사랑의 부담을 느끼게 하심이리라.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내가 서 있을지라도 그 아름다움을 증거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 하면 서 있지 않음과 다를 바 없고, 주변의 환경이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마리아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장 귀한 향유로 향내를 밸 수 있게 한다면 그 곳이 가장 아름다운 최고의 자리가 아닐까?나를 향해 지금도 목말라 하시는 주님은, 분명 내가 가진 가장 귀한 향유를 주변에아낌없이 뿌리기를 원하시기에 오늘도 이렇게 부담을 주시고 계신가 보다.「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좇아 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 보고 있으니 (마태 복음 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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