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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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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지연
조회 3,565회 작성일 13-01-2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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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좀 닭살 스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난생 처음으로 제 남편에게 공개적으로 러브레터를  보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웹사이트라 이런 닭살 얘기 쓸까 말까 망설이다가 없는 얘기 지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 말씀에도 부부가 뼈 중에 뼈요  살중에 살이라  하셨으니 용기를 내어 공개적으로 만천하에 남편에게 러브레터 한장 띄우려고 합니다.

 

본의 아니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게된 남편이 집에 있던 몇달 동안  아침 이면 꼬박 꼬박 제 시간이면 출근하던 남편이 하루 종일 컴퓨터 방에 틀어박혀 돌아서면 저와 하루 종일 부딪히게 되던 상황이 제겐 제일 견딜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평상시에도 비즈니스 출장을 자주 다니시는 다른 형제님들을  보면서  정시 칼출근에 정시 칼퇴근의  출장 없는 연구직이었던  남편에게  늘상 나도  남편이 출장 좀 가서  남편없는 짜릿한 휴가를 즐기고 싶다고  소원처럼 말하곤 하던 나였기에  하루 종일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그 상황이 천근 만근 무겁게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붙어 지내던 그 기간  동안 저희 부부는 불편한 속내를 아낌없이 드러내며 서로를 고문하며  당신이 우  하면 나는  좌 하고...당신이 좌 하면 나는 우 하면서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과 같이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고자  날마다 날마다 신경전을 피웠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은  한국 직장이 결정되어 한국으로 가게 되었고  드디어 저는 그 토록 소원하던 남편의 출장을 그것도 아주 오래 오래 기약없이 즐길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퇴근도 더이상 없어  저녁 준비에서도 해방 되었고,  이리 저리 집안 곳곳에 자기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자신의 물건들을 치우지 않고 놓아 두지도 않으니 더이상 저도 잔소리 할 필요도  없고,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으니 하루가 훨씬 수월히 지나갑니다. 

 

그런데... 

사실  남편이 한국으로 간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저는 저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벌써 그리워 지기 시작합니다.  " 밥좀  먹고 들어오지... 왜 꼭 집에서...  "  라고 궁시렁 거리며 칼퇴근에 맞춰 억지로 저녁준비 시작 하던 거며,  남편의 나쁜 습관, 과거, 약점, 실수, 오만 가지 미운점등을  벗어 놓은  양말 한짝에  맘껏 바가지 긁으며  남편이 영역표시 해둔거  거두러 다니던 일,  일부러 남편 화장실 쓴다음 들어가서 약점을 잡은후 그 날의 스트레스를 남편에게 풀던 일,  그땐 그렇게 귀찮고 힘들던 일들이 이제는 참 그립습니다.

솔직히  제 개인적 입장에서는  그때 그때 마다 속에 있는 것들을 다 풀면서 살았으니 오히려 남편에게 고마와 해야 할 일 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남은 음식 먹어치우던 < 잔반 처리반 >이었던 남편이 없으니  남은 음식 어쩔수 없이 버릴때,  우울한 제 마음과는 달리 오색  빛깔 찬란히 새똥만이 장렬한  parkinglot 에  그대로 서있는 남편의 차를 볼때,  사춘기인 딸에게 스트레스 풀어봤자  본전도  못찾을게 뻔하니 속으로 삭힐때, ( 우리 딸도 갱년기 엄마한테 풀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쌍방 포기 )...  생각했던 것 보다도 더 집안 의 중용이고 무게 중심이었던 남편의 존재의 흔적이 놀랍게도 여러곳에서 발견되곤 합니다.  ( 사실 전 남편이 집안에서  제게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습니다. )   

 

얼마전  칠레 북부  코피아포시 인근 산호세 광산 700 미터 갱도에 매몰되어 69 일만에 구출되었던  33 명의 광부 중 에스테반 로하스라는 사람은 10대 때 처음 만나 제대로 된 결혼식 없이 지난 25년간 함께 살면서 3명의 아이를 낳고 2명의 손자까지 둔 자신의 배우자 에게 " 살아서 나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줘요.  내가 밖에 나가면 드레스를 사서 결혼식을 올립시다"  라고 처음으로 700 미터 지하 에서  물과 음식을 공급받는 지상까지 연결된 긴 파이프를 통하여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또 매몰 광부들 중 제일 연장자 였던  마리오 고메즈라는 사람은  < 사랑하는 아내 릴리아나에게 >  라는 메모 편지를 보내  < 한순간도 가족 생각을 잊은 적이 없다..  당신을 사랑한다.. >고 난생 처음 으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31년 부부 생활에서 4명의 딸을 둔 나이 60 을 넘긴 직업 광부로 무뚝뚝하고 거칠게 험한 인생을 살아온 한 남자가 세월의 무게 만큼 데면 데면 살아온 아내에게 갑자기 사랑고백을 하게된 이유는 뭘까요?

 

사랑인지 일상인지 모를 만큼 편안함과 익숙함속에 허공 속의 공기와도 같이 항상 옆에 있어서 그 가치를 잊고 살았던 존재에 대해 우리는  가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살때가 많습니다.
좋아했던 사람,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낸 후에야  비로서 그 소중함을 깨닫고, 잘 해 줄때도  그것이 고마운 줄도 모르고 어리석게도 나에게 좀 더 잘해주지  않음을  때론 속상해 합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조금 부족한 사랑으로  잠시 나를 서운하게 하더라도  그 사람이 없는 빈자리 보다  차라리 그 서운함이 더  낫지 않을까요? 

특별함만을 찾고 일등만을 쫒다 보니,  진짜를 제쳐두고 가짜에 몰두 하며 살다 보니  항상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알아볼 기회를 잃어버렸고  많은 세월이 흘러가버렸습니다.

나의 그 사람이 소중한 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 아닌 금은보화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백마탄 완벽한 왕자가 있다 한들   강  건너  마을에 사는데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내사람  내가 소중히 여겨야   내 사람이 됩니다.

 

늦었지만  남편에게 보내는 저의 이 레브레터가  아직 내 사람의 가치를  모르는 모든 사람에게 전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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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사이먼 가풍클의 불명의 명작 - 격랑위에 다리가 되리 -를 신자매님과 부군께 바칩니다. 정성껏 골라보았습니다.

두 분 늘 행복하세요. "나의 그 사람이 소중한 건 위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곁에 있기 때문입니다."라는 금싸라기 잘 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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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왕 도끼빗을 바지 뒤주머니에 꽂으시고 머리만 장발로 기르시면 영락없는 < DJ  오빠 > 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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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vin님의 댓글

kelvin 작성일

이 글을 읽고 제 가슴이 이렇게 아픈 것이, 멀지 않은 옛적 생각이 나서, 형제님과 자매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제 눈이 약간 뜨거워지는 것은 두 분의 마음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을 두 분에게 열어 주길 것을 기대합니다. -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에 품은 것을 이렇게 글로 표현하는 재능에 정말 놀랍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