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고린도 전서 13 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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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지연
조회 3,266회 작성일 10-09-24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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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 교회다니는 사람이었어? " " ** 엄마 크리스챤이었어? 몰랐어." " 왜 말안했어? "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다니요... 사실 공개적으로 말하긴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과거에 이런 얘기를 종종 들었었습니다. 그땐 전혀 부끄럽다거나 뭔가 잘못된거라고 생각지 못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이 확 뜨겁게 부끄러워집니다. 주님을 사모하는 하나님의 사람인데 아무리봐도 전혀 그런 구석이 보이지도 않고, 성령의 열매도 없고, 성경 66 권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 사랑 " 의 흔적도 없으니 전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았다는 얘기지요.
교회에 와서 입에 달고 사는 이 " 사랑 " 이란 단어를 입으로만 말하며 남용했지 실제로 내안에 뜨겁게 품고 살지 않았으니 세상이 저의 신앙 정체성을 의심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인들을 손가락질하는 일부의 시각도 그 원인은 아마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이 사랑의 실종일지도 모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보다는 원수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드라마속 주인공에 더 공감을 하고 , 사랑은 give and take 이어야 한다고 굳게 믿으며 , " 사랑할수 없다면 차라리 피하라 " 의 신조로 사랑과 적당히 타협하며, 제가 선택한 사람들만 엄밀히 말하면 저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만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가까이는 시어머님부터 , 가족, 어려운 이웃 , 타종교인들, 세상에서 소외받은 사람들..... 사랑하기 힘든 사람들은 사실 저의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들의 리스트에서 지웠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아파트 이름이 영어, 불어 각종 어려운 단어들을 사용 하여 " 타워 팰리스, 미켈란 쉐르빌, 아카데미 스위트, 현대 하이 캐리온, 롯데 캐슬 모닝... " 이렇게 점점 길고 어려워 지고 있는데 이것은 시어머니가 찾아오기 어렵게 하려고 그렇답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쓴웃음이 나오는 공감가는 말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해온 사랑은 내가 중심이 되는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하고싶으니까 사랑하는 것이고, 내 자식이니까 사랑하는 것이고, 그러다 내 마음이 달라지면 이제까지 죽고 못살 것 같던 그것들에 대한 사랑을 갑자기 멈추기도 하고 심지어 미워하기까지 했습니다.
보통 사랑장 이라고 불리는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말하는 이 < 사랑 >은 내가 좋으면 사랑하고 싫어지면 떠나버리는 그런 감정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이 결단코 아니라 선홍 빛 피가 뚝뚝 떨어지며 나의 피를 흘려 생명을 나누며 예수님이 하신 것 처럼 고통스럽고, 위험하고, 괴로운, 그러므로 좁고 힘든 길로 들어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그런 사랑 일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할 수 있게 해주시는 사랑..... 그래서 고귀한 성령의 은혜로 주어지는 " 은사 " 라고 말하는 거겠죠?
내가 다른 나라 말을 완전히 익히고 그 나라 사람 처럼 얘기할 수 있고, 학식이 풍부하고 현대적인 기술에 능하며 강한 신념과 위대한 이상과 계획을 가진 자 일지라도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고통과 주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지 못한다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씀 처럼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뜨겁게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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