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이웃 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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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358회 작성일 13-01-2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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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요즘들어 점점 게을러져서인지 cooking 하기가 점점 싫어집니다.
한창 외모에 관심이 많은 딸은 살 찐다고 잘 먹으려 하질 않고, 저희집의 < 잔반 처리반 > 인 남편은 한국에 있으니 나 혼자 먹겠다고 음식을 하게 되지도 않고, 변명 같지만 마음 먹고 음식을 해놔도 먹어 주는 사람도 없으니 cooking 을 할 의욕도 동기 부여도 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아주 가끔씩은 무얼 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이 번개불 처럼 스치면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해 보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은 근사하게 무얼 만들어 내고 싶은데, 부엌안의 재고 상황이 몹시 빈약하다는 현실을 cooking 을 이미 시작한뒤에 깨달을 때입니다.
큰 마음먹고 지난 번에 사다 놓은 무우를 큼직막 하게 썰어 소금에 절여 놓고, 씻어 건져 이것 저것 양념을 섞은 뒤에 액젓을 찾았는데 ..... 없습니다. 그렇다고 차를 타고 당장 한국 마켓으로 30 분 운전해서 가서 사올 수도 없고, 망연 자실한 마음으로 손을 놓고 있자니 옛날 생각이 납니다.
옛날 같으면 전화 한통화 면 해결 될일인데...
같은 동네 옆옆집 살던 이웃 사촌 기웅이네와 우리집은 아이들의 나이도 같고, 사는 것도 이 모양 저 모양 비슷하니 시시 콜콜 여러가지로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 였었습니다.
라면 먹다가 찬밥을 찾는데 없을때, 반찬 만들다 꼭 필요한 양념 똑 떨어 졌을때, 사러 가자니 귀찮고 빼놓고 만들자니 용납되지 않는 것들.... 당장 꼭 필요한것들이 생기면 우리는 서로에게 먼저 확인하고 나서 서로 얻어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기곤 했었습니다.
파 한뿌리만 빌려줘.... 달걀 하나만 빌려줘.... 감자 하나만 빌려줘....
사실 말이 빌리는 것이지 어느 누구도 돌려 받을 생각도 안하고 다시 갚을 생각도 하지 않는,
받을것 기억 못하고 본인의 권리 주장을 포기한 멍청한 채무자와, 줄것 까맣게 잃어버리는 뻔뻔한 채권자의 관계.
서로의 필요한것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로의 마켓이고, 서로의 재고 자재 창고였던 우리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이 내게도 마침 없어서 도움을 주지 못했을때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에 오히려 더 미안해 하곤 했었습니다.
별식이라도 만든 날이면 서로의 몫으로 따로 넉넉히 담아 서로의 집으로 배달하기를 당연히 여겼고, 그래서 내 집과 그 집의 접시와 남비는 항상 이리 저리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그 집 반찬 내 집 반찬이 별반 다르지 않았고, 쓰려고 찾는 접시가 없으면 당연히 기웅이네집 부억에서 찾으면 되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생활과 물질은 옛보다 더욱 풍요해지고, 인터넷과 페이스 북, 트위터 와 같은 소셜 네트 워크의 활용으로 서로와의 거리는 휠씬 가까와 지고 개인의 정보나 생활도 훨씬 개방 되어진것 같은데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음식과 더불어 나누던 정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 이웃과 비만 > 의 관계를 조사한 어느 미국 대학의 연구 결과가 있는데 자신들의 주거 지역 주변에 오랫동안 왕래하며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있으면 비만의 위험이 남성은 13 % , 여성은 8 % 떨어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오래된 이웃들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곳은 자가용을 이용하기 보다는 이웃과 함께 걸어 다니며,
이웃을 만나 함께 산책을 하거나 야외 활동을 할 기회가 많아 지고, 반대로 새로 이사 온 이웃은 걷기 보다는 혼자 자가용으로 단독 이동 하게 될 확률이 많으니 이웃 사촌과 단절된 생활은 건강에도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 遠水不救近火(원수불구근화) 먼 곳의 물은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 없다. >
먼 곳에 아무리 물이 많이 있더라도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화재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 는 뜻으로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뜻의 한자 성어입니다.
그러고 보니 미국 이나 중국이나 사람사는 모양은 가까이 사는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인가 봅니다.
< 땅끝까지 가서 주님의 복음을 전하라 > 하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는 커녕 내 집 담장 너머에 누가 사는 지도 모르며 무관심 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 이웃 사촌 > 이란 의미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오늘날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나 저나 < 액젖 > 빠진 저희 집의 깍뚜기는 과연 어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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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신지연님의 댓글
신지연 작성일
아 ~ 어제 주일 맛있던 그 우동이 donkey 님 목장 솜씨 였군요?
식당 봉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남의 목장이 해준거 먹을 때는 참 좋은데 나의 목장 순서가 돌아오면
" 교회에서 항상 꼭 밥을 먹어야 하나 ? " 이런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할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본래 가정주부가 하는 살림이 꼭 필요하고 힘들지만 눈에 띄는 작업이 아니듯,
교회 식당 봉사 작업도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이 많이 필요한 힘든 섬김인것 같습니다.
주일 예배후 충분한 < 영의 양식 > 을 공급받은 성도 들에게
< 육의 양식 > 까지 공급해 주는 기쁘고 보람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섬김이란 단어 < 디아코니아 > 가 원래 헬라어로 < 식탁에서 시중드는 일 > 을 뜻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맞나요?

donkey님의 댓글
donkey 작성일
오랫만에 올라온 신작가님의 글을 반갑게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이웃을 두고 살았었다라는 추억만이라도 자매님의 현재 삶에 활력소가 되겠지요.
어제 우리 목장이 식사당번이었는데 그런 비슷한 따스함이 교회 부엌에 전수되었지않나 싶습니다.
물론 재료는 풍성한 요즘이지만 그 화기애애함에서 말이지요.